승리제단

2025-10-03 20:09:14

한자명

이칭/별칭

계통구분

설립일시

창교자

주소

항목체계

집필자

정의

개설

역사

교리

의례

경전

한자명

勝利祭團



이칭/별칭

영생교 승리제단 하나님의 성회



계통구분

기독교계



설립일시

1981년 10월 10일



창교자

조희성



주소

경기도 소사구 역곡동 74-141번지



항목체계

교단명



집필자

김종석



정의

‘영생교 승리제단 하나님의 성회’를 줄여서 부르는 교단 명칭.



개설

조희성이 1981년 10월 10일 경기도 소사구 역곡동 74-141번지에 설립한 신종교 단체이다.



역사

전도관 전도사 출신 조희성이 1978년 경 특별한 영능으로 밀실에서 기도하던 전도관 신도였던 홍업비를 만난 후 약 3년간 그녀의 지도하에 연단(鍊斷)을 받았다. ‘연단’이란 한계를 넘는 노동과 자기를 부정하는 고된 생활, 즉 “자유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뜻한다. 조희성은 이 연단을 통해 자신의 피가 바뀌었고 신인합일의 신비체험을 했으며 불사불멸의 이긴자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 후 조희성은 밀실을 나와 주로 전도관 이탈자를 모아 독자적인 교단 설립을 했다. 조희성의 화법이나 주요 교리 등은 박태선의 그것과 유사했고, 교단 설립 초기 조희성의 영능은 전도관 이탈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승리재단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981~1994년까지 전국에 설립되어 자리를 잡아 가던 승리재단은 교주 조희성이 1차 구속·수감 과정을 겪었다. 조희성의 1차 구속·수감 이후 1994~2000년까지는 승리재단의 시련기라고 할 수 있다. 2000~2004년까지는 승리제단의 재기 노력과 조희성의 2차 구속과 사형 언도 시기이다. 2004~현재까지를 조희성의 사망과 승리제단의 정비 및 육신영생 신앙의 변화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2004년 6월 19일 안양 교도소에서 조희성이 사망하자 승리제단은 혼란에 빠졌다. 조희성 사망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육신영생을 확신했던 상당수 신앙자들이 이탈하였고, 어떤 이는 자신이 조희성의 대신자(代身者)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신자들의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외면 당했고, 결국 조희성의 처 ‘해와주님’이라고 불리는 이영자를 중심으로 재단은 정비되었다. 현재 승리제단은 조희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 없이 적극적인 전도활동과 신앙생활을 전개하고 있다.



교리

핵심 교리는 나라는 의식을 부정하고 형제를 내 몸처럼 여기는 “자유율법”과 썩는 피가 영생의 피로 변한다는 피의 원리, 이를 통해 육신이 죽지 않고 영생하는 “육신영생”의 교리가 있다. 조희성 사망 후 “육신영생”의 교리가 ‘육신은 죽지만 신의 모습(빛)으로 보광(普光)한다’는 교리로 변화되었다. 조희성 사망 직후 일부 신앙자들이 조희성의 재림을 기다리기도 했다.



의례

조희성의 생전 설교 비디오 영상과 격렬한 박수로 의례가 진행되며 일요일 예배, 새벽기도 예배가 주된 의례이다. 이슬성신절, 어버이날, 성탄절, 승리절, 메시아절의 5대 절기를 지킨다.



경전

조희성의 설교를 제외하고 공식적인 경전을 편찬하지 않았다. 2008년 11월 조희성의 설교를 묶어 『승리제단 진경』을 신도회장 김상욱이 발간했지만 승리재단의 경전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참고문헌>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제3권』(김종석, 청년사, 2010)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