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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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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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사상
집필자
최중현
정의
예수재림 사상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는 구세운동(救世運動)들.
내용
예수재림운동은 메시아인 예수가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다시 재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개하는 종교운동을 일컫는다. 근대 이후 이상사회 실현운동은 세속적인 ‘유토피아운동’과 종교적인 ‘천년왕국운동’으로 구분된다. ‘천년왕국운동’의 부분집합으로 ‘메시아운동’을 들 수 있는데, 그 운동의 하위개념으로서 재림예수운동을 설정할 수 있다. 이 운동은 기독교가 주로 비기독교 문화권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구세주의 출현을 바라는 토착적 문화와 결합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서 출현한 ‘재림예수운동’은 오늘날 어림잡아서 대략 수십 건에 이르고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 다섯 개의 현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예수가 영체로서 특정 지상인에게 빙의했다고 주장되는 현상이 1927년경 원산에서 유명화 여인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이용도 목사조차도 그녀의 음성을 예수의 음성으로 인정하는 데까지 이르자 한국 기독교계에 큰 파장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특히 ‘원산 신학산’의 백남주에게 영향을 끼쳤고 백남주의 제자였던 김백문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 두 사람이 1934년 가을 무렵에 ‘원산 신학산’을 떠나서 평안북도 철산군의 김성도를 찾아가 귀의하는 데에도 예수재림사상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유명화 여인의 인적 사항이나 그 여생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고 있으나, 1935년 이후에는 그녀를 숙주(宿主)로 하는 예수의 빙의현상이 보고된 바는 없다.
둘째, 190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서 만주로 이주하여 성장을 계속하던 황국주가 오랜 기도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목이 “예수의 목으로써 갈아치워지는”신비체험을 겪고서는 수십 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를 거치며 서울까지 걸어서 “새 예루살렘 순례”를 행한 것은 1931년 후반기였는데 당시 그는 용모조차도 초상화 속의 예수와 아주 비슷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지속 가능한 조직체의 형성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한때에는 독립운동차 중국 내륙을 오가기도 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귀국하여 국내에서 체류하던 중 부산 동래에 피난 중이던 김백문을 찾아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사실도 있었고, 그후 1952년에 대구에서 타계하였다.
셋째, 1920년 2월 25일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났고 1935년 4월 17일 새벽 묘두산에서 영체로 나타난 예수와 대면했다고 알려진 문용명(뒷날에 “문선명”으로 개명)은 1945년 10월 김백문을 찾아가 만났고 1946년 6월 6일 평양에서 ‘여호와의 부인’이라는 호칭을 쓰던 박태영(1892년 8월 18일생)을 찾아가 만났으며, 한국전쟁 중에 부산으로 피난하여 육필로써 「원리원본」을 작성하였고, 1953년 12월 하순에 합류한 제자 유효원과 협력하여 1957년 8월에 출간한 『원리해설』에서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이란 소제목을 통하여 예수재림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 출간된 『원리강론』의 말미에서는 ‘재림론’이라는 장(章)을 통하여 자신이 예수의 대신자임을 더욱 본격적으로 암시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자면, 섭리적으로 예수재림의 때가 되면 하늘나라의 예수가 직접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심령 및 능력’을 갖춘 특정 지상인이 낙점을 받아 지상에서 예수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상이 바로 ‘예수재림현상’이라는 것이었고, 이러한 현상이 요구되는 까닭은 예수가 재세시에 목표로 했던 과업이 완수되지 못한 상태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겨져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그는 1970년대 초반에 장정순 여인을 예수의 신부로 세웠고 2004년에는 공개적으로 그 결혼식을 거행토록 하였다. 그는 만 92세 되던 해인 2012년 9월 3일에 타계하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에 위치한 천정궁 경내에 묘소가 마련되었다.
넷째, 1925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난 진진화는 자신의 전생(前生)이 바로 예수였음을 깨닫는다. 즉, 그에게 있어서 예수재림의 방법은 바로 ‘윤회환생’이란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재림예수로서의 본격적 등장에 앞서서 그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문선명을 주목하여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로 통일교에 입회하게 되었고, 거기서 뜻맞는 동지들의 규합을 비공개적으로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문선명이 세례요한으로서의 “분수를 지키지 않고 스스로 ‘재림주’로 자처”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진진화는 1960년대 상반기에 통일교와 결별하여 ‘우주기독일교생령안식낙원(宇宙基督一敎生靈安息樂園)‘이란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그 본부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두게 된다. 이 단체는 약칭 “생령교회”로도 불리면서 전국에 11개의 지부를 세우며 미국 뉴욕시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저명한 미술평론가 이용우를 단체의 대표로 세운 이래로 국제적 세미나를 유럽에서 개최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근간에 단체의 이름을 ‘생령단회(生靈團會)’로 바꾸었고 현재는 한국 본부를 서울 관악구 방배동에 두고 있다.
다섯째, 1942년 6월 22일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났고 계시에 따라 전도관, 장막성전, 등을 거쳤으며, 30세 무렵에 하나님 및 초림예수의 신(神)을 받음으로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경 신구약 66권을 짝과 짝을 맞추어 풀이하며 재림예수로 등장하여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라 주장한 구인회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지상인이나 저승의 영혼들마저도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으며, 천국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다가 기독교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구속되었고 1976년 만 33세로 옥중에서 타계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위치한 모란공원 묘지에 묻혔는데, 그는 포스터 등을 통하여 자신이 ‘재림예수’임을 가장 노골적으로 주장하였던 인물로 꼽힌다. 그의 타계 뒤에 제자들은 분열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최총일 계열(본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과 박인수 계열(본부는 충북 청주시 죽림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재림예수 현상들과는 분명히 다르면서도 더불어 견주어 볼 만한 경우들로서 보혜사 성신(또는 성령)의 지상현현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들과 절대자 하느님(또는 상제)의 지상현현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들이 있는데, 전자의 대표적 인물들로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안상홍(安商洪)과 신천지교회의 이만희를 꼽을 수가 있고 후자의 대표적 인물들로는 전도관의 박태선, 진선불교의 조성기, 승리제단의 조희성, 삼천년성의 이현석, 그리고 사단법인 대선의 김창규를 꼽을 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1(최중현, 생각하는 백성, 1999)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2(최중현, 생각하는 백성, 2009)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3(김종석, 청년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