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제

태극도, 대순진리회

2025-10-09 20:34:01

한자명

이칭/별칭

출신지

성별

출생/사망

항목체계

집필자

정의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한자명

趙哲濟



이칭/별칭

조정산



출신지

경상남도 함안



성별



출생/사망

1895~1958년



항목체계

인물



집필자

김홍철



정의

무극도(無極道: 태극도)의 창시자.



개설

일찌기 만주에 건너가 구국운동을 하던 중 ‘속히 환국하여 나의 본소를 찾아 진법(眞法)의 주인이 되라’는 강일순의 계시를 받고 귀국했다. 안면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전라북도 태인에 본부를 정하고 무극도를 창립했다. 그의 가르침의 강령은 도지·사강령·삼요체로 집약된다. 그의 사후 태극도와 대순진리회에서는 옥황상제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조철제(趙哲濟, 1895~1958)의 호는 정산(鼎山)이다. 1895년 12월 24일 경상도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한문서숙에 들어가 사서오경(四書五經)을 해득하고 한번 배운 것은 다음날 강에 막힘이 없었다. 15세 때 항일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 심양으로 가서 구국 운동에 가담했다. 이 무렵 그는 만주에서 보천교인 김혁(金赫)으로부터 강일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사(大事)에는 도력(道力)이 필요함을 절감, 입산수도 하던 중 23세 되던 1917년 2월 10일 강일순의 ‘태극도리(太極道理)’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고 한다. 이때 그는 ‘이제 그대의 만주공부는 마쳤다. 속히 환국하여 나의 본소를 찾아 진법의 주인이 되라’는 강일순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강일순의 도술만 가지면 만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그 해에 가족과 동지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안면도를 근거지로 증산교를 포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강일순 가르침의 계통인 교통전승의 연맥을 얻기 위해 강일순의 매씨 선돌부인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1921년 전라북도 태인면 태흥리에서 무극도(無極道)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자 많은 신도가 모여들었다. 그 뒤 수년 동안 120여 칸의 교당을 지으니 도솔궁(兜率宮)·영대(靈臺)·포정부(布正府)·정침(正寢) 등이었다. 이와 같이 거대한 건물의 낙성식을 끝내고 새로운 취지강령과 도규를 제정 공표하여 포교를 하니 신도가 10만으로 늘어나 대 교단을 이루었다. 당시 세상에서는 보천교의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그를 조천자(趙天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6년 일제에 의하여 교단이 해체되고 본부가 철거당하게 된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종교 활동을 다시 시작하여,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동에 정하고 태극도(太極道)라는 이름으로 교명을 바꾸어 포교를 했다. 1955년에는 본부를 부산시 감천 2동 105로 옮겨 3천 세대 1만여 명에 달하는 신도를 집단 이주시킴으로써 대규모 신앙촌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다 1958년 3월 6일 사망했다.
사망 후 그를 태극도주옥황조성상제(太極道主玉皇趙聖上帝)로 받들어 증산(無極主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가르친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로서의 강일순이었으며, 교리강령은 도지(道旨)·사강령(四綱領)·삼요체(三要諦)로 집약된다. 도지는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이며, 사강령은 안심(安心)·안신(安身)·경천(敬天)·수도(修道)이고, 삼요체는 성(誠)·경(敬)·신(信)이다. 이외에 무자기(無自欺)-정신개벽, 지상신선실현-인간개조, 지상천국건설-세계개벽 등이다.

<참고문헌>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범증산교사』(홍범초, 범증산교연구원, 1988)
태극도 홈페이지(http://www.tg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