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기층신앙

2025-07-01 23:02:55

한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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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의

내용

한자명

檀君神話



항목체계

교리/사상



집필자

이찬구



정의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신화(建國神話)이자 고조선사(古朝鮮史)를 신화의 형태로 기록한 문헌을 총칭해서 일컫는 말.



내용

단군신화의 서두를 환국(桓國)이나 환인(桓因)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그 신화가 저 멀리 상고시대부터 민간에서 구전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말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제1권 고조선 조(條)에 실려 있다. 책 이름에 유사(遺事)라는 말이 들어간 것으로 보거나 『위서(魏書)』나 고기(古記) 등을 인용한 것을 보더라도 일연 자신은 역사적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한 것이지 전설이나 가공적인 이야기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신(神)은 숭배의 대상인데 오직 신화(神話)라는 말만은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가공과 허탄(虛誕)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역사를 부정하기 위한 표현이라 하여 강하게 거부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군신화를 가공한 이야기로 흠집을 낸 사람은 1894년에 「단군고」를 쓴 일본 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이다. 최남선(崔南善)도 ‘환웅신화’라는 말은 썼어도 단군에 대하여는 조선인문의 조조(肇祖)로 서술하고 ‘단군신전’(檀君神典)이라고 표기하여 높이고 있다. 또 정인보(鄭寅普)도 “조선의 시조 단군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주장하여 일제의 신화론에 반대하였다. 우선 『삼국유사』의 원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서(魏書)』에는 2천 년 전에 단군 임금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하니 중국 요(堯)와 같은 시대라고 되어 있다. 또 고기(古記)에 의하면 환국(桓國 또는 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아버지가 그 뜻을 알고 삼위 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아 홍익인간(弘益人間)할만 한지라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정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하였는데 곰은 삼칠일(三七日)을 참아내 사람이 되고(熊女)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뒤에 아사달에 천도하여 150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의 단군 신화는 상고(上古)의 민간 신앙에서 나온 천신숭배와 천손의식 천지인 3사상의 일단을 알려주고 있다는 면에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단군 숭배 사상은 고려 말기에 원(元)에 대한 자립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조선 초의 임금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단군에 대한 제사를 끊이지 않게 했다. 또 강화도 마니산에 단군을 모시는 제단이 있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고 황해도 구월산에 단웅천왕․ 단인천왕․단군천왕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세종실록』이 언급하여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말에는 『규원사화(揆園史話)』처럼 찬란한 단군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비서(秘書)들에 관심이 높아졌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 흐름은 역사로 들어가 신채호(申采浩) 등의 고대사연구로 이어졌고 다른 흐름은 종교로 들어가 나철(羅喆)의 대종교(大倧敎)가 출현하기에 이른다. 1909년 단군을 교조(敎祖)로 숭배하는 대종교의 창시는 고대 단군의 건국신화가 근대적 민족종교의 민족신앙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대종교에서 시작된 개천절 의식은 임시정부로 다시 대한민국정부로 이어졌고 전통적인 삼신신앙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으로 부활하며 민족신앙으로서의 단군은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 민족의 수호신이 된다. 여기서 단군민족주의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해방 후 단군신화의 연구는 김재원(金載元)이 산동성에 있는 무씨사당의 화상석을 토대로 『단군신화의 신연구』(1947)를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이루었다. 그 뒤에 김정학(金廷鶴)은 “삼신사상의 표현과 태양신화와 토테미즘의 혼재”(1954)로 보았고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신화가 아닌 민족의 태고의식을 강조한 황패강(黃浿江 1967) 문헌과 고고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신석기시대의 문화와 고아시아족의 곰숭배와 샤머니즘을 연결한 김정배 (金貞培 1972) 고대 조선의 천신신앙과 지모신 신앙을 표시하고 있는 창조신화로 본 류동식(柳東植 1975)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1985년 단군성전 건립문제를 놓고 학계와 시민사회는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가공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과 신화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 재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 예컨대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화라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그것은 곰부족과 범부족의 세력관계의 역사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 외래종교와 식민사학까지 가세하면서 “단군은 우상이며 허구다” “조상은 우상이 아니며 사실이다”로 양분된 채 화해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편 단군을 꾸며진 신화로 비난하던 북한은 1994년에 평양의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고대 역사로 기술하고 있고 개천절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적봉(赤峰 Chifeng)지역에서 홍산옥기가 출토되면서 이 홍산문화(红山文化)를 주도한 곰토템족의 후예가 누구냐로 한중간에 예민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곰토템족의 일파가 중원지역으로 내려가서 중국의 황제족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요서지역에서 그대로 머물다 발해만 인근으로 남하한 사람들을 단군신화의 웅녀족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단군신화에 대해 새롭게 조명을 시도한 곳은 기독계이다. 1929년 최병헌(崔炳憲)의 『만종일련( 萬宗一臠)』의 출판이후로 윤성범(尹聖範)의 「환인 환웅 환검은 하느님이다」라는 논문이 1963년 5월호 『사상계』에 발표되면서부터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다. 이런 기독교의 토착화 논의는 감신대 박종천(朴鍾天)의 『상생의 신학』으로 이어졌다. 그는 강일순(姜一淳)의 해원상생의 이념에 따라 단군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아 미래신학을 전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육당 최남선 전집』(현암사1973). 『단군:그 이해와 자료』(윤이흠서울대1994). 『단군신화의 연구』(이은봉 온누리1986). 『상생의 신학』(박종천 한국신학연구소1991).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우실하 소나무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