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도
한자명
출신지
성별
출생-사망
항목체계
정의
생애 및 활동
한자명
金沃載
출신지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주중리
성별
남
출생-사망
1913~1960년
항목체계
인물
정의
성덕도의 창립자.
생애 및 활동
성덕도(聖德道)를 창립한 김옥재(金沃載 1913-1960 호 月根)는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주중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차경석의 제자가 되어 전라북도 정읍군 대흥리로 이사하였으나 그의 가르침이 헛된 꿈임을 뒤늦게 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김봉남이 득도함을 보고 다시 김봉남을 추종하자 김옥재는 아버지의 처사에 실망하는 한편 김봉남을 혼내주기 위해 1949년 김봉남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리하여 그의 물법치료를 시험해 본 결과 신기하게도 심신에 신묘한 증상이 나타나며 오래 동안 고통 받던 위장병이 치료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신비를 체험한 그는 김봉남을 추종하는 신자가 되었다. 그는 심수법(心水法)의 원리를 터득하고 열심히 교화활동을 전개한 결과 봉남으로부터 월근(月根)이라는 도호를 받기도 했다. 그는 특히 대구지방에 근거를 두고 포교활동을 했다. 1952년 5월 27일에는 도학주(都學姝 여)를 만나 자기는 도주(道主) 도학주는 법주(法主)가 되어 대구 윤치도(尹致道)의 집에 ‘성덕도교화원’이란 간판을 걸고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김봉남은 자기를 도각에 이끌어준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1954년에는 김윤재ㆍ윤명수ㆍ김동이ㆍ김영옥을 사주(四柱)로 임명하여 교단을 이끌도록 하는 한편 교세발전에 노력하다가 1960년 음 3월 4일에 사망했다.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생의 근본인 유·불·선 삼교의 교법을 이어받아 수학하는 것과 심수법(心水法)에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