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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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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오태환 등이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의 하나.

2025-07-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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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삼종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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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의 초기 삼종사(三宗師)인 홍암 나철 무원 김교헌 단애 윤세복의 묘역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용성향(龍城鄕) 청호촌(淸湖村)에 있다. 용성향 청호촌 청호종산의 조그만 황토 구릉 위에 3위의 무덤이 서쪽 화룡시 건너 청산리를 향하고 있다. 봉분은 중국식으로 만들어 봉분이 삼각형태로 되어 있다. 나철의 묘비에 ‘대종교대종사홍암나선생신해지장(大倧敎大宗師弘巖羅先生神骸之臧)’이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 『죽은 자의 숨결 산 자의 발길(하)』(강용권 장산 1996) 『국외독립운동사적지실태조사보고서(2000-2001) - 중국 만주지역』(국가보훈처 2001)

2025-07-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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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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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중광절은 나철이 개천(開天) 4366년(1909) 대종교를 중광한 것을 기리는 날이며, 음력 1월 15일이다. 중광이란 한배검의 찬란했던 가르침의 교통(敎統)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이어져 빛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날은 대종교 본부를 비롯한 각 지부의 교당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참고문헌> 『대종교중광육십년사』(대종교종경종사편찬위원회, 대종교총본사, 1971)

2025-10-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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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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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단군신앙은 김염백의 대신교와 백봉의 단군교로 대표되는데 단군교의 전통은 백봉에서 비롯된다. 백봉의 교지를 받아 단군교를 포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전은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단군실기』를 나철에 전해주고 나철은 다시 33인 중 한 사람인 두일백으로부터 ‘영계(靈戒)’를 받아 단군교인이 되어 단군교를 중광하나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교명을 ‘대종교’로 개명한다. 이후 단군교의 명칭을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정훈모 등이 1910년 단군교를 창립하여 분립하게 되지만 1930년까지도 본부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조선유교회’를 주관하던 안순환(安淳煥)의 도움으로 본부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교단의 내 ...

2025-07-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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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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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68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구포에서 부친 창희(昌熙)와 모친 풍양 조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 교단에서는 무원종사(茂園宗師)로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대종교 도사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였고 대표위원이 되어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에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일본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 신민 ...

2025-06-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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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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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세력이 커지고, 일본군이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토벌하려 하였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의 실패 등으로 불안을 느낀 일본군은 간도지방의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간도에 3개 여단의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 소식을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독립군들은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백두산으로 옮겨가던 도중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유리한 지형을 선점, 매복하고 있던 독립군은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 측은 전사자 100여 ...

2025-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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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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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현은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1919년에 사망하자 전정운의 둘째아들 전용해(全龍海)와 상의하여 그의 죽음을 숨기고 암매장해 버렸다. 경찰 조사에 의해 전정예 사망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많은 신자들이 백도교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3년 우광현은 백백교로 개칭하고 전정예를 교조로 자신을 교주로 하여 새롭게 시작했다. 1924년 김공연(金公然)이 교주로 취임하였다가 1927년 차병간(車秉幹)이 다시 교주가 되면서 본부를 서울로 옮겼다. 이 당시 실질적인 교주는 전용해였다. 전용해는 간부 문봉조 등 18명과 함께 신도 346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1940년에 혐의자 모두가 체포되어 이중 12명이 사형 ...

2025-07-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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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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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광전은 1915년 8월 15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소태산과 모친 양하운(十陀圓梁夏雲)의 4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7세시에 한문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배재고등학교와 일본 동양대학(東洋大學)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원불교 중앙총부 교무부장·교정원장·재단법인 원불교 이사·학교법인 원광학원 이사·원불교 수위단 중앙단원·원불교 해외포교연구소장·원불교개교 반백년기념사업회 회장·원불교 사상연구원 원장·세계불교도회원 불교지부장 등 ...

2025-07-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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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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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광은 김항의 양자이다. 출생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김항의 사망 후 그의 의제(義弟)인 김두현(金斗鉉-김항의 아들)으로부터 김항의 유품 중 일부인 친필 수고본(手稿本) 『정역』과 『대역서(大易序)』를 받았는데 해방 직전인 1944년 일경에 의해 압수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김항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진두월(陳斗月)을 따르면서 오랫동안 정역을 연구하였고 정역이론에 대한 강론을 곧잘 하였다고 한다. 1950년대 이필례는 ‘중앙대종교합십괘철학’의 간판을 걸고 전북 김제 만경에서 포교활동을 전개할 때 김덕광을 지도자로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 교단의 신자들은 역학적인 교리 연구에 뜻을 두는 이들이 ...

2025-06-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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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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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에 이르러 서구열강을 중심으로 한 외세의 침입이 잦아지고, 민족자주성이 결여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일부 민족지도자들은 민족주체사상을 기반으로 교단을 설립하고 단군을 신앙하고 받드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염백(金廉白)의 ‘신교운동(神敎運動)’과 백봉(白峰)의 ‘단군포명운동(檀君布明運動)’이라 할 수 있다. 김염백은 경상북도 영천 사람으로 함경도 묘향산에 들어가 단군신명께 천일기도를 올렸으며, 마침내 단군으로부터 성령을 받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인도정의(人道正義)로서 척사부정(斥邪扶正)을 주지(主旨)로 교법을 지도하였으며, 그 문도가 수천 명에 달하는 등 김염백의 신 ...

2025-10-0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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