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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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법종교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 2대 교주(초대회장)인 김병철(金炳徹 1905-1970 호 鳩岩)은 1905년 12월 3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철제의 무극도에 입도하여 수도해온 수도인 이다. 1937년 9월 이리시 목천포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강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증산의 도를 이어갈 동지로 결의하고 함께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다가 1941년 11월 전주 노송동에 포교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경상도 의성 장곡대로 이전했으며 1945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구릿골로 다시 1949년에는 금사면 오리알터로 본부를 옮겨 다니며 강순임을 도와 증산법종교를 발전시켰다. 195 ...

2025-06-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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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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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교

여처자(1887-1954)는 여본주(余本主)라고도 불렀다. 1887년 3월 19일 경상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동에서 태어났다. 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영천에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전혀 말을 하지 않아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일곱 살 때 말문이 터지면서 가끔 신기한 말을 하곤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년하여 혼담이 오고 갔으나 완강히 거절하여 독신으로 일생을 마쳤다. 차경석이 부부의 연을 맺으려 했으나 이도 거절했다. 1937년 겨울 전남 나주 사람 서상섭(徐相燮, 일명 正一)이 신명의 계시를 받고 여처자를 찾아와 그를 받들기 시작하자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어 이때부터 여처자를 중심으로 한 ...

2025-10-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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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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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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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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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오동정파

증산교오동정파를 창립한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은 1890년 2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서 김응보(金應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전라북도 부안군 해재면 송석리 속칭 봉리(峰里)가 길지(吉地)라 하여 그곳으로 이사하니 거기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치산을 잘하여 400여석을 받는 부농이었다. 김낙원은 지술(地術)을 잘 아는 김태수가 증산 강일순을 믿고 태을주를 읽어야한다는 말을 듣고 1915년 보천교에 입교했다. 1916년부터 손바래기에서 증산의 부인인 정부인을 3년간 모셨고 증산의 생전 제자들인 김형렬 등 5-6명과 친교를 맺으며 증산의 사상을 배웠다. 1918년 순천에서 안내성을 만나 함께 ...

2025-06-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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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대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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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교

선도교(仙道敎)를 세운 고판례(高判禮, 1880-1935, 별명 高夫人)가 신도들의 신앙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제정 발표한 것을 고민환이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①천지보은(天地報恩) 천지가 우주만유 가운데 오직 사람에게만 천품(天稟)을 주어 무궁무극무량(無窮無極無量)의 대복(大福)으로 생명을 지속 보존하는 은혜를 아는 것이다. ②일월보은(日月報恩) 일월이 사시질대(四時秩代)로 기후를 조절하여 만물을 생성케 하고 명암광휘(明暗光輝)케 하여 만사만리의 요도(要道)에 무량한 공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③부모보은(父母報恩) 부모가 나에게 만물의 영장(靈長)의 근본이 되는 형체를 주셨고 회건취습(回乾就濕)과 열고토감(咽苦吐甘)하 ...

2025-10-0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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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연구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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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중빈이 저술하였고 1927년 5월 발행했다. 『불법연구회규약』과 함께 최초의 교서에 해당하며 1931년 경전의 형태를 갖춘 『육대요령』이 발행되기까지 교리서로 통용되었다. 구성은 표지의 제자(題字) 옆에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이라 쓰고, 책머리에 소태산대종사의 진영과 서(序)를 밝혔다. 전권을 7장으로 나누었는데 1장 정정요론(定靜要論) 상, 2장 정정요론 하, 3장 연구의 강령, 4장 연구의 진행조건, 5장 연구의 취사조건, 6장 각항 연구문목(各項硏究問目), 7장 공부의 진행순서로 이루어졌다. 『정정요론』은 원래 『정심요결(正心要訣)』로 불리는 독립된 서적으로 전래의 도교계통 수련서였는데, 1917년 정산종 ...

2025-10-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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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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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인암파

증산교인암파(甑山敎仁菴派)를 창립한 박공우(朴公又 1876-1940)는 1876년 전주 교동에서 부친 박순문과 모친 오묘전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풍체가 당당하고 음성이 웅장하고 힘이 장사여서 전라북도 정읍 · 고창 · 흥덕의 세 장을 주름잡고 다녔다. 3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고창에서 야소교를 믿어 수십 명을 전도한 일이 있고 동학에 들어가 열성 있는 신도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수제자중 한사람이 되고 증산의 천지공사에 적극 협력하였다. 증산이 사망하고 난후 기운을 내려 줄 것을 증산상제에게 기원하여 신력(神力)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1 ...

2025-07-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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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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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회중앙본부

13세부터 동학에 입문하여 수운심법(水雲心法)과 동학사상 연구에 전념하였다. 원용문은 수운교 창립당시 이상룡(李象龍)을 적극 도와 준 박성호(朴性昊)를 만난 계기로 동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박성호가 계룡산 신도안에 들어가 수운교별파로 활동할 무렵 원용문은 박성호를 조력하며 활동하다가 1969년 박성호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계승했다. 원용문은 1970년 1월 16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에서 ‘동학회중앙본부’라는 새 명칭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1975년 ‘동학종단 협의회’를 결성하여 동학 뿐 아니라 증산교, 대종교(단군계)와도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취지로 증산교단의 각파 대표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 ...

2025-10-0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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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법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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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법상종(大韓佛敎法相宗)을 창립한 유제봉(柳濟鳳 1870-1954)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출생했다. 1921년에 김형렬이 서울에서 ‘미륵불교진흥회’를 만들 때 참석했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교명을 ‘용화계’로 고쳐 활동했다. 그러다가 1951년 12월에 최선호(崔善湖)를 만나 ‘미륵불교’를 부흥시킬 것을 상의하고 최선호집에 머물면서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대한불교법상종지(大韓佛敎法相宗旨)』라는 책을 보면 ‘김형렬이 유제봉에게 법계를 전하고 사망한 뒤에 2대 화상이 된 유제봉은 계속하여 불사를 하다가 1954년 최선호의 부인 최선애(崔善愛)에게 선사로부터 받은 법계를 전하고 사망했다’고 되어 있다. 최선애 ...

2025-07-0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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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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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증산계

태을주(太乙呪)는 증산교 교단의 공통 주문으로 ‘훔치훔치태을천상원군훔리치야도래훔리함리사바하’(吽哆吽哆太乙天上元君吽哩哆耶都來吽哩喊哩裟婆訶)’이다. 이 주문 수도의 구체적인 방법을 증산도에서는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주문에는 곡조가 있으니 항상 음절을 맞추어 읽으라. 곡조가 맞지 아니하면 신명들이 불쾌하게 여긴다. 지금은 우주생명이 선천 양운동에서 후천 음운동으로 대 전환하려는 때이므로 참선과 같은 정적인 방법보다는 소리를 내어 읽는 공부를 해야 한다. 자세는 단정히 앉은 모습으로 허리를 펴고 고개를 지긋이 당겨 24척추를 곧게 세우고 두 손을 가볍게 말아 쥐어 허벅지위에 얹어놓고 두 눈은 감은채로 정신을 인당에 집중한다. ...

2025-10-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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