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대종학원

|

대종교

나철에 의해 중광된 대종교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주된 거점을 만주로 옮기게 된다. 이때 대종교 시교사로 만주에서 포교활동을 전개하던 윤세복은 환인현의 동창학교 무송현의 백산학교 북만주 밀산현의 대흥학교 영안현의 대종학원을 세우고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간다. 그러나 1920년대 일본군의 경신토벌과 지속적인 탄압으로 대종교의 포교활동이 위축되면서 교육사업도 재개하지 못하다가 1934년 3월 하얼빈에 선도회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발해의 고도인 영안현 동경성에 총본사를 이전하면서 1936년 3월 총본사 안에 대종학원을 설립하였다. 대종학원은 초등부와 증등부 여자야간부가 설치되었으며 교과과정은 정규학교과정 이외에도 종 ...

2025-07-05 19:20

31

대원사

|

증산교

대원사(大院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학천곡 모악산 동쪽 기슭 해발 420m에 자리 잡고 있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인 보덕(普德)의 제자 일승(一乘)ㆍ정심(心正)ㆍ대원(大原) 등이 창건하였으며 1866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ㆍ명부전ㆍ산신각ㆍ객실 등이 있다. 일찍이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이 절에 거처한 바가 있었다. 특히 증산 강일순과는 인연이 깊은 절이다. 증산은 1901년 5월 중순부터 대원사에 가서 그 절 주지승 박금곡(朴錦谷)에게 조용한 방 한 간을 치우게 하고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불식의 공부를 계속하니 금곡 ...

2025-07-03 17:24

31

농림촌

|

대한불교진각종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회당 손규상이 대각을 이룬 장소이다. 일찍이 불교경전의 연구와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불법을 궁구하던 손규상은 1946년 가을 이곳 농림촌에 이르러 수행도량을 마련하고 49일 100일 정진 등의 수행을 계속하다가 1947년 5월 16일 육자진언(六字眞言)의 대지(大智)를 얻어 대각을 이룬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4일 이곳에서 진각종단의 개종을 선포한다. 현재 이곳에는 대한불교진각종의 최정심인당이 자리하고 있고 2003년 건립된 약 4m 높이의 ‘진각성존회당대종사대각지’ 표석이 있다. → 금강원 → 이송정 → 불승심인당 참고문헌 : 대한불교진각종 홈페이지(htt ...

2025-07-01 02:00

31

기독교대한복음교회

|

최태용이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무교회주의를 역설하며 귀국한 후 1925년에 잡지 『천래지성』(天來之聲)을 창간하고 의식이나 전례 그리고 교회건물 등의 교회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성서만을 강조하고 구원은 신앙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천래지성』은 4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간되고 1929년에는 『영과 진리』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그는 줄곧 신앙은 복음적이며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사람 자신의 교회이어야 함을 역설하며 새로운 교회의 창설이 시급하다고 선언하며 1935년 2월 ‘기독교조선복음교회’(基督敎朝鮮福音敎會)라고 이름 짓고 최태용 자신이 초 ...

2025-06-30 00:58

31

국제도덕협회선언

|

국제도덕협회

1953년 9월 1일 서울 인덕법단에서 신숙희를 회장으로 국제도덕협회가 재설립되고 이때 한국일관도의 선언문·강령·종지를 선포하였다. 선언은 3가지로 국제도덕협회가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 본회는 전인류의 도덕생활 영역에서의 평등함과 공존의 권리가 있다는 진리에 입각하여 도덕 사회조성에 이바지한다. 二. 본회는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생래적(生來的)인 향성의 진리를 사회생활에 구현함으로서 덕화사회 건설을 실현코자 한다. 三. 본회는 불이법문(不二法文)의 진리에 입각하여 국문 도덕을 계몽앙양 실천케 함으로서 고유도덕을 만방에 떨치고 파륜의 세도를 호륜정도(護倫正道:윤리강상을 보호하고 도를 ...

2025-06-01 23:24

31

교정회

|

교정회는 신리종교의 초기 교단명이다. 교정회에서는 무녀의 생활불안을 구제하고 천조대신 및 단군을 제신으로 한다. 이 교의 신조는 경신, 박애, 시대순응에 두었으며 생활의 향상 개선을 꾀함과 동시에 종래 무녀기도에 따르는 폐해를 교정하고 자선사업을 행할 것을 표방하였으나 재정 곤란에 처하여 유명무실화 되었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5-31 23:50

31

관성교지부

|

토암 이승여가 처음부터 ‘금강도(金剛道)’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이름은 포덕을 시작하고 12년이나 지난 1922년에 일본불교의 이름을 빌려서 진종동붕교(眞宗同朋敎)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1926년에 이르러 ‘관성교지부’ 간판을 걸고 관성제군의 소상을 봉안하였는데 제자들이 주장하기를 “우리 대성사부님(토암)께서 천명을 받으신 이래로 관성이 음조하는 일이 많으니 마땅히 진종동붕교 간판을 폐하고 관성교지부 간판을 거는 것이 옳다.”하여 서울 관성교 본부에 연락하고 그 간판을 걸었다는 것이다. 1910년 남천포덕 이후 토암은 주로 관성신앙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포덕을 하였다. 1912년에는 제자를 시켜 전주 ...

2025-05-29 00:37

31

고남규

|

태화교

태화교(太和敎)를 창립한 고남규(高南圭 생몰년 미상)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26세에 일본에 건너가 약학을 전공 한의원을 경영하다가 1940년에 귀국하여 전라북도 정읍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1945년 김봉남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물법을 조소하였다. 1948년 12월 시험 삼아 봉남의 청화산 수련에 참여하였다. 이 수련에서 뜻하지 않은 신비를 체험한 그는 봉남을 수종 봉남이 가장 신망하는 제자가 되어 봉남의 태화진리(太和眞理)와 특수수련의 방법까지 받았다고 한다. 봉남이 사망하고 난후 봉남교단본부 설치가 이루어졌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와해되고 제자들이 각기 한 교파를 세우자 고남규도 문필송(文弼松)과 함께 고향에서 ...

2025-05-24 18:03

31

각세도남관(전태성)

|

각세도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고 제자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여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선평의 생존 당시부터 각세도는 각 관을 중심으로 분란이 있었으며 당시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천인교’를 만들어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선평에 의해 천암(天庵)이라는 도호를 받은 장명성(張名聲)이 남도주로 바뀌게 된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남도주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장명성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여 독자적인 교단 ...

2025-05-14 10:19

31

해인

|

해인은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법계도(法界圖), 해인사의 연기설화, 『임진록』, 『정감록』, 『격암유록』, 정만인 스님 이야기 등에 나타난다. 한국 신종교에서 해인은 세상을 구원할 보물, 한국적 이상사회 건설의 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한국 신종교에서 해인은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의미보다는 세상을 구원할 신이한 힘을 지닌 실체적인 보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해인에 대한 신앙은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국토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대순전경』에는 “잘 믿는 자에게 해인을 전해주리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증산계 신종교에서는 의통과 해인을 동일 범주로 보고 해인이 의통에 ...

2025-10-11 22:07

30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