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
회당 손규상의 대각으로 시작된 대한불교진각종(현재)은 교단의 확장과 더불어 몇 차례 교명을 변경하였다. 최초에는 1947년 8월 17일 포교지를 영일군 기계면 계전동으로 옮기고 교명을 교화단체 참회원(懺悔園)이라고 정한다. 1948년에는 대구 남천동에 교당을 세우고 교명을 밀교금강승심인불교재가보살정도회(密敎金剛乘心印佛敎在家正道會)라고 정하였고 1949년 12월 4일에는 경북도청에 교명을 심인불교(心印佛敎)로 개칭하여 등록하였다. 그러다가 1953년 8월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 헌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2월에 오늘날과 같은 대한불교진각종(大韓佛敎眞覺宗)으로 교명을 개정하였으며 이듬해 1월 27일 재단법인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 ...
2025-07-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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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법상종
대한불교법상종(大韓佛敎法相宗)을 창립한 유제봉(柳濟鳳 1870-1954)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출생했다. 1921년에 김형렬이 서울에서 ‘미륵불교진흥회’를 만들 때 참석했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교명을 ‘용화계’로 고쳐 활동했다. 그러다가 1951년 12월에 최선호(崔善湖)를 만나 ‘미륵불교’를 부흥시킬 것을 상의하고 최선호집에 머물면서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대한불교법상종지(大韓佛敎法相宗旨)』라는 책을 보면 ‘김형렬이 유제봉에게 법계를 전하고 사망한 뒤에 2대 화상이 된 유제봉은 계속하여 불사를 하다가 1954년 최선호의 부인 최선애(崔善愛)에게 선사로부터 받은 법계를 전하고 사망했다’고 되어 있다. 최선애 ...
2025-07-0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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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관음종
조직으로는 종정 산하에 예경실과 원로원을 두고 종무기관으로 총무원 포교원 교육원 호법원 그리고 입법기관으로 중앙종회를 두고 있다. 총무원 산하에는 각 교구 종무원을 두고 있으며 말사의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그 외 조직으로는 전국비구니회와 중앙신도회 일제강점기한국인희생영령환국봉환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교육과정으로는 습의(習儀)교육 구족계(具足戒) 교육 정기 교육과정을 통해 승려의 자격을 갖춤과 동시에 승려로서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법계(法階)는 훈덕(訓德) 대덕(大德) 법사(法師) 선사(禪師) 종사(宗師) 대선사(大禪師) 대법사(大法師 또는 大宗師)로 구성되어 있다. 총본산은 낙산묘각사이다. 부설기관으로는 사회복 ...
2025-07-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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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삼종사묘역
대종교
대종교의 초기 삼종사(三宗師)인 홍암 나철 무원 김교헌 단애 윤세복의 묘역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용성향(龍城鄕) 청호촌(淸湖村)에 있다. 용성향 청호촌 청호종산의 조그만 황토 구릉 위에 3위의 무덤이 서쪽 화룡시 건너 청산리를 향하고 있다. 봉분은 중국식으로 만들어 봉분이 삼각형태로 되어 있다. 나철의 묘비에 ‘대종교대종사홍암나선생신해지장(大倧敎大宗師弘巖羅先生神骸之臧)’이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 『죽은 자의 숨결 산 자의 발길(하)』(강용권 장산 1996) 『국외독립운동사적지실태조사보고서(2000-2001) - 중국 만주지역』(국가보훈처 2001)
2025-07-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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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교
박성호는 1919년에 천도교에 입도하였지만 1922년 수운교로 옮겨 중요 간부가 되었다. 이후 1932년에 수운교에서 나와 ‘수운교별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다가 1934년에 본부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긴 후 교명을 ‘대동교’라 고치고 활동하였다. 이후 원용문이 박성호를 계승하여 교명을 ‘동학회중앙본부’로 바꿔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신앙대상이나 사상은 동학사상과 같다. 특히 최제우의 심(心)은 영부(靈符)인 동시에 만법의 왕이요 천성(千聖)의 어머니라 말하고 심법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수도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 ...
2025-07-0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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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근대기 단군신앙은 김염백의 대신교와 백봉의 단군교로 대표되는데 단군교의 전통은 백봉에서 비롯된다. 백봉의 교지를 받아 단군교를 포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전은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단군실기』를 나철에 전해주고 나철은 다시 33인 중 한 사람인 두일백으로부터 ‘영계(靈戒)’를 받아 단군교인이 되어 단군교를 중광하나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교명을 ‘대종교’로 개명한다. 이후 단군교의 명칭을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정훈모 등이 1910년 단군교를 창립하여 분립하게 되지만 1930년까지도 본부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조선유교회’를 주관하던 안순환(安淳煥)의 도움으로 본부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교단의 내 ...
2025-07-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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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룡
청심등대
김백문의 1917년 양력 10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 448번지에서 김광조와 문아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령파였던 김남조 여인를 만나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남주와 인연이 되었다. 백남주를 보필하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남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같이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백문은 1937년과 1946년에 걸쳐 두 번의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193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신비체험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고 1946년의 체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
2025-06-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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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연
무법대
김구연은 1938년 경기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자신이 조선조 김종서장군의 후손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는 8세 때에 도에 뜻을 두고 입산해서 찬운도사(餐雲道士) 도석선생(道石先生)이라는 분의 지도를 받아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석선생은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 신비의 존재로 그에게 계시만 내려주었는데 계시에 의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후천의 새 시대가 개벽될 것이며 이때 김구연이 개천궁(開天宮)의 영도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김구연은 자신이 천자(天子)의 직성(直星) 자미성(紫微星)의 정기를 받았다고 해서 무자(戊字)를 따다가 ‘무법대(戊法臺)’를 짓고 자신의 호를 무송(戊松)이라고 했다. 김구연은 때로 소 ...
2025-06-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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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
대종교
1868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구포에서 부친 창희(昌熙)와 모친 풍양 조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 교단에서는 무원종사(茂園宗師)로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대종교 도사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였고 대표위원이 되어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에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일본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 신민 ...
2025-06-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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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을회
=> 인희선도태백원 참조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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