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병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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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증산 강일순은 선천 이후로 홍수와 가뭄의 난리가 그칠 사이가 없었으나 질병으로 인한 대란은 크게 없었다고 말하고 선천말기 후천선경이 오기 전에 질병이 온 세상을 뒤엎는 천하개병(天下皆病)의 참상이 이 세상을 괴롭히게 된다고 했다. 증산의 병겁설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회의 병적 현상이요 또 하나는 세상의 병겁이다. ①사회의 병겁은 사람들의 도의관념의 타락을 병원(病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병지약 안심안신(大病之藥 安心安身)’이라 하여 신앙의 수립에 의한 안심입명과 ‘대인대의무병(大仁大義無病)’이라 하여 도의를 수행하는 사람이 천하의 병을 치료하는 유일의 성약이 된다는 것이다. ②세계의 병겁은 이 세상 전체가 ...

2025-07-0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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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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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가 1942년에 전라남도 광산군동에서 창립한 증산계 신종교.

2025-07-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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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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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증산교의 초기 교단인 고판례의 선도교(仙道敎), 차경석의 보천교(普天敎) 등의 교단을 교단 밖에서 일반인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신자들이 태을주(太乙呪)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태을주의 첫머리에 나오는 ‘훔치 훔치’소리를 듣고 이렇게 부른 것이다. 태을주는 ‘훔치훔치태을천상원군훔리치야도래훔리함리사바하(吽哆吽哆太乙天上元君吽哩哆耶都來吽哩喊哩裟婆訶)’인데 ‘태을천상원군훔리치야도래’는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고, ‘훔리함리사바하’는 불교의 것이다. 그런데 ‘훔치훔치’는 증산 강일순의 조어(造語)로 보인다. 훔치(吽哆)는 소 울음 훔, 소 울음 치자이다. 소 울음이 나오는 것은 선천인 양(陽)의 세계가 다하고, 후천인 음(陰)의 세계가 ...

2025-10-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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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반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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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원시반본(原始返本)은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고도 한다. 주역(周易)의 태(泰)괘 셋째 효사에 나오는 무왕불복은 ‘갔던[往] 것이 되돌아오지 않는[不 復]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원시반본에서 ‘반’은 돌아오다, 바꾸다, 새롭게 하다 등의 뜻이 있다. ‘본’은 뿌리, 근원, 근본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원시반본은 ‘되돌아 근본으로 감’이다. 반이 돌아가는 과정이라면 본은 돌아가야 할 목적을 뜻한다. 반의 과정을 거쳐서 완전한 근본으로 도달한다는 것이 강일순의 원시반본이다. 원시반본은 종교나 종파에 따라서는 시원을 살핌으로써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또는 천지인 삼계가 원래의 위치나 상태로 회복함과 동시에 새롭게 된다, 또는 ...

2025-10-0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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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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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일반적으로 한국 신종교의 효시는 1860년 발생한 동학(東學)을 말한다. 이후 한국에서는 수많은 신종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생하여 왔다. 동학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사회해체 상황과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민중의 종교적 욕구와는 상관없이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체제의 기본이념으로 삼으면서 유교국가를 지향해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나타난 국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성리학의 사회통합 기능이 약화되면서 급속한 사회해체 상황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 민중의 삶은 극도로 약화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덧붙여, 19세기에 ...

2025-10-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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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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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를 설립한 최위석(崔偉錫 ?-1963)은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여 보천교 6임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보천교를 탈퇴하고 서울에서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 이상호(李詳昊)ㆍ이정립(李正立) 형제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최위석의 집)에서 대법사를 만들 때 이에 적극 가담하여 기획부장이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상호 형제가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로 피난 갔다가 거기에서 대법사(증산교본부) 간판을 걸자 자기도 서울에서 서울대법사로 간판을 걸고 분립하였다. 그러나 그가 1963년 사망하게 되자 와해되어 버렸다. 서울대법사의 신앙의 대상과 사상은 대법사(증산교본부)와 ...

2025-07-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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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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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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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신대도덕강성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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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교

무극신대도덕강성상제(無極神大道德姜聖上帝)는 허욱(許昱 1887-1939 호 南松)이 창립한 삼덕교(三德敎)의 신앙의 대상 즉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이다. 약하여 강성상제라 부른다.『삼덕교사(三德敎史)』에서는 증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증산대성사께서는 새 운수를 맡은 천지신명의 신왕(神王)으로서 새 수기(數氣)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으로 원대(願戴)되시었다. 원대를 받으신 증산상제께서는 새로운 인도(人道)를 생화(生化)시키려는 동방의 원시문명인 신교(神敎)를 다시 밝혀 홍익인간케 하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셨다.’ 따르는 신도들이 허욱에게 증산의 존칭에 대해 묻자 ‘신도로 보면 신왕이요 인도로 보면 증산대성사가 ...

2025-07-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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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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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

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 1890~1940, 호 龜岳) 는 1890년 1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 비금면 지당리에서 채두호(蔡斗鎬)의 아들로 태어났다. 25세 되던 1914년 장형 규일(圭一)과 함께 보천교에 입교하여 중요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22년 보천교를 떠나 증산의 탄생지인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객망리에 성전을 짓고 천인교(天人敎)라 이름하여 독립했다. 이후 수도정진 하다가 1931년 6월 1일 득도했다고 한다. 그는 인자하면서도 엄격하여 그를 따르던 신자나 간부들이 경외심을 가졌으며, 탁월한 지혜와 불굴의 의지는 신도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1936년 4월 조선총독부는 증산계 각 교단 ...

2025-10-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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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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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도

장기준(張基準, 1880~1922)은 1880년 1월 11일 전라도 승주군 쌍암면 평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총명하여 6세부터 한문을 읽기 시작했고 19세에는 쌍암면장이 되었다. 26세 되던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두문불출하기 3년에 울분으로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한 지경에 이르렀다. 33세 되던 1912년 증산교인 김화숙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하느님의 화신이신 증산께서 내신 태을주(太乙呪)를 독송하면 모든 병이 물약자효(勿藥自效) 하리라’했다. 그 후 그는 제왕봉에 수련막을 치고 태을주를 독송한 끝에 신병을 완치하고 대령(大靈)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13년 9월 그는 차경석(車京石)을 찾아가 ...

2025-10-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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