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2건
대명역
대종교
『정역(正易)』에 대한 해석서.
2025-07-0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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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신종교
홍익인간과 이화세계
2025-07-0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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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인
도봉산삼성전
김흥인은 1924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11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데 이때부터 어떤 신명(神明)이 접하여 모든 것을 지시해 주었다고 한다. 25세에 그 신명의 지시에 따라 개성에 있는 사직단에 삼성각을 짓고 화공(畵工)을 불러 신상(神像)을 그려 모셨는데 어느 날 대종교인이 찾아와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신명이 단군신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천에서 한약종상을 경영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영적 능력에 의한 치유에 의해 무당으로 더 유명해져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56년 10월에 서울 도봉산 암석 아래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
2025-07-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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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역
대종교
호는 계월(桂月), 별호는 심부(心夫). 하상역의 출생연대 및 지역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김항이 득도한 후 1885년경부터 제자들을 모아놓고 정역사상을 가르칠 때, 그 문하에서 수학한 것은 분명하다. 이때 함께 수학한 인물로 이복래(李復來 )·김계화(金桂花)·김용봉(金龍鳳) 등 40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이후 대부분이 각자의 후계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분파하게 된다. 그는 김항에게 정역을 배운 후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선치동에서 홀로 수도하다가 도를 깨쳤다고 한다. 1909년 하상역은 김항의 정역사상을 토대로 서울 선동에서 대종교를 창립했으며, 『종교취지서』와 『대명역』 등을 간행하여 ...
2025-10-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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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김항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 등과 함께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여 종교활동을 본격화하였으며, 한때 수만에 이르는 신도가 모이기도 하였다. 교단이 커진 후 김항의 제자들은 각자가 후계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분열하였고, 김영곤은 하상역에 맞서 연산과 공주지방에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따로 교단명칭을 정하지 않고 김항이 생존시 부르던 ‘무극대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고, 전북지방까지 포교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임도봉은 계룡산 신도안에 ‘중앙대종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고, 무극기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 ...
2025-10-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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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임
청동단군탑
이백임은 1910년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청동(靑銅)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5세에 심한 안질에 걸려 실명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천리교(天理敎) 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 고베[神戶]에 있는 천리교 지부에 가서 기도치료를 받아 완치한 후 천리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20세에 일본에서 결혼하여 생활하면서 불교로 개종하기까지 20년간 천리교 신앙생활을 하였다. 불교로 개종한 것은 아들의 신병 때문인데, 그녀가 36세 때 큰아들이 일어설 수 없는 병이 생겼고, ‘아들의 병이 조상의 지은 죄 때문에 생긴것이니 속죄기도하라’는 한 여승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일본인 공동묘지를 ...
2025-10-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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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1894~1895년 청일 전쟁의 승리 이후 한반도를 독점하려던 일본은 러시아 주도의 삼국 간섭으로 계획이 저지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영일동맹(英日同盟)과 미국의 지원을 발판으로 1904년 선제공격으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대한제국 정부는 미리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 2월 9일 인천항의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키고 한반도를 군사거점으로 삼았다. 일본군은 1905년 1월 뤼순 항을 함락하고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퇴하여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를 단독 점령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열강의 개입으로 영국은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을 맺는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 러일전쟁의 결과 한반도는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 ...
2025-07-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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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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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남침례회
김기동 목사는 1979년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에 소속되어 성락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이단 시비에 연루되었다. 1982년에는 김기동 목사의 마귀론을 문제삼아 교단의 일부 목사들에 의해서 각서제출을 요구받았고 당시 요구받은 각서의 내용은 보통의 침례교단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귀신 불신자 사후존재설과 아담 이전 사람 선재설 등을 전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6년 현대종교 3월호에 또 귀신론을 문제 삼는 글이 실리면서 파장이 생기자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제 77차 연차총회에서 교단 탈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기독교남침례회’라는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기독교남침례회’는 ...
2025-06-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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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종
최희규는 1941년 일본 유학 당시 재일유학생 조선농촌연구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추방당한 후 천도교에 입문한다. 1951년 민족청년당을 조직하여 정치운동을 시작하여 1955년 진보당에 합류하게 된다. 1963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을 마지막으로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1964년 대종교에 들어가 교무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정일회(正一會)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1년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여 진법종을 창립하게 된다. 본교의 법단은 동편에 진법신도(眞法神圖)를 봉안하고 그 밑에 신단을 설치하여 중앙에 한얼의 위를 정하고 좌우에 신령선관(神靈仙官)을 모셨다. 본교에서는 종교의 진화과정을 4단계로 보았다. 1단 ...
2025-10-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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