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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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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장유순은 1877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결성(結城), 자는 호문(浩文), 호는 야은(野隱)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서울로 가서 신민회(新民會)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벌였다. 1909년 신민회에서 만주에 독립군을 양성할 무관학교를 세우려는 계획에 따라 만주로 파견되었으며, 1911년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전신인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의 설립에 조력하였다. 이후 독립군의 독립운동자금 모금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3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해방 후 대종교 경의원(經議院) 참의(參議), 총본사 전리(典理)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에는 원로원 부원장이 되었으며, 대일각(大一閣) 전교 ...

2025-10-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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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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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범석은 1900년 12월 12일, 부친 문하(文夏)와 모친 연안 이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철기(鐵驥)이다. 1913년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15년 여운형을 만나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6년 운남성 육군강무당(陸軍講武堂)에 입학하였고, 1918년 수석졸업하였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장교직을 사직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찾았으며, 독립군을 양성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고 신흥무관학교 교원이 되었다. 1920년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과 김좌진의 요청으로 북로군정서로 옮겨 사관훈련과 보병부대를 조직했으며, 그 ...

2025-10-0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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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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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삼문일답』은 1921년에 백포 서일이 삼사생(三思生)의 물음(問)과 일의자(一意子)의 답변(答)식으로 대종교의 교리를 타 종교와 비교 강론하고 ‘대종교의 진리’를 독특하게 논술한 것이다. 그는 『삼일문답』상·하편을 저술하였으나 1942년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 때에 일경에게 압수되었고 현재 그 서언만이 전해지고 있다.

2025-07-0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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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본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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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철은 1909년 대종교를 중광(重光)하고 1910년 대종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京城)에 설치하고 강우(姜虞)에게 맡도록 하였고 동년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에 설치하고 담당을 서일(徐一)에게 맡겼으며 상해에 서도본사를 설치하고 담당을 신규식과 이동녕에게 맡겼고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에 설치하고 담당을 이상설에게 설치하였다. 이 네 곳 본사를 4도본사라 한다. 동도본사는 당시 중국 길림성 왕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 유수하(流水河) 덕원리(德源里)에 있었다. 왕청시내를 거쳐 곧장 대두천을 따라 내려가면 강 건너 동북쪽으로 춘명향 서대파(西大坡) 덕원리가 나타난다. 이 일대는 192 ...

2025-07-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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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삼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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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김흥인은 이때부터 신명이 접하여 모든 것을 지시했으며 25세 때 개성 사직단에 삼성각을 짓고 화공(畵工)을 시켜 신상(神像)을 그려 모셨는데 어느 날 대종교인이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과 비슷하다 하여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신명이 단군신명임을 알았다. 1956년 10월 서울 도봉산 암석 아래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단군신명이 나타나 암석 밑의 약수가 선약(仙藥)이니 이 물로 포덕천하(布德天下)하라는 지시에 따라 약수를 발굴하고 1964년 약수터 옆에 수련원을 짓고 그 안에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했다. 1965년에는 수련원 뒤쪽에 대성전이라는 전각을 지어 단군소상을 봉안하였다. 또한 그 옆에 칠성각을 지 ...

2025-07-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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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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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은 단군사상을 선양하고자 1964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단군사상에 조예가 깊은 김일권(金一權)과 결속하여 ‘정수회(正守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였다. 이들은 단군사상을 고무하는 강담회를 수시로 개최하였는데 얼마 후 김일권이 이탈하고 대신 대종교에 있던 신철호(申哲鎬)가 주간이 되어 1965년 10월부터 『정수회보(正守會報)』를 간행하여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러나 1967년 이춘상이 정수회에서 손을 떼게 됨으로써 단체는 활동이 정지되었다. 그 뒤 단군숭령회에 소속되어 있던 강대길(姜大佶)이 다시 ‘단군정수회’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종로구 공평로에 회관을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 ...

2025-07-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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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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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권일청의 속명은 종하(鍾夏)이다. 다만 그의 출생 및 사망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그는 정역계 신종교의 주요한 인물로 활동하였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도교사』에 보면 한말에 동학과 더불어 발생한 신흥종교에 남학이라는 것이 있어 혹은 ‘영가무도교’라 하고 혹은 ‘대종교(大宗敎)’라고 하였는데 그 1세 교주는 이운규이고 2세 교주는 김항 3세 교주는 권일청(청주 사람)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그 다음 신도에 김정현(金貞鉉) 하상역(河相易) 염명(廉明)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술대로 본다면 권일청은 남학의 3세 교주로 김항의 후계를 이은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능화의 이 기 ...

2025-06-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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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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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동은 대학 졸업 후 수도생활을 지속했으며, 계룡천진전에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봉독한 후, 우주의 창조원리인 태극을 한울로부터 받게 되었으며, 신앙의 대상을 한얼님으로 하고, 교조를 단군 한배검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감법, 조식법, 금촉법의 삼법을 터득하였고, 이어 문신기·견신기·행신기·지신기의 사대신기를 체득해서 상통천문과 하달지리의 경지에 이르는 삼일철학의 대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체득한 신기는 특히 성명학에 탁견을 보여 학교성적에 관계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명문대에 무난히 합격시키곤 하여,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978년 처음 교당을 개설하고 ‘대종교영암시교당’의 ...

2025-10-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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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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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중교

이선동은 1942년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시적으로 바둑에 빠져 있다가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수차례에 걸친 백일기도와 5년간의 전문 입산수도 등을 통해 피나는 수행을 하였고, 계룡천진전에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봉독하고 우주의 창조원리인 태극을 한울로부터 받고, 신앙의 대상을 한얼님으로 하며, 교조를 단군 한배검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지감법, 조식법, 금촉법의 3법 수행과 문신기, 견신기, 지신기, 행신기의 4대 신기를 체득하여 삼일철학의 대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는 일월도사인 권명희와 문경 주흘산에서 만난 전기각 처사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 ...

2025-10-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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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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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단군전

이남성은 1918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했다. 고향에서 상업에 종사하다가 해방 후 남하하여 서울에서 숙부에게 사상의학을 배웠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대전으로 이사하여 한약상을 경영하였다. 그는 대전에 살면서 도덕기초회의 신자가 되었고, 단군에 관심이 깊어진 그는 다시 대종교에 입교하여 단군을 신앙하다가 1955년 대전시 부사동에 전각을 세우고 천단을 만들어 대종교충남도본사라는 간판을 걸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자신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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