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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는 담담한 물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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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성훈통고』는 이토암 선생의 핵심적 가르침이 나타나 있어서 중요한 전적이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완역(完譯) 하지 않고 토암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추려 내어 총 15장 342절로 편역(編譯)해 내었다. 제1장 도성보(道聖寶) 제2장 의성(義誠) 신앙 제3장 도덕 제4장 수도 제5장 대겁운의 임박 제6장 구원관 제7장 포교-시행방편(時行方便) 제8장 충・효・성경 제9장 가화 제10장 청결 제11장 언행중여산(言行重如山) 제12장 남녀평등 제13장 예법 제14장 약사여래 제15장 대지명당(大地明堂)이다. 너무 요점만 추려내다 보니 방대한 자료가 ...

2025-07-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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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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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

『대경전(大經典)』은 김명환(金明煥 1896-1954 호 淸江) 저 1965년 보화교에서 발행했다. 내용은 전5편으로 되어있는데 제1편 조판(肇判) 제2편 복소(復蘇) 제3편 신천경(新天經) 제4편 신지경(新地經) 제5편 신인경(新人經)으로 되어있다. 3편 신천경은 동학의『동경대전』을 비롯한 여러 경전 4편 신지경은 증산의 천지공사와『현무경』 및 증산의 법언 등을 보화교적으로 해석한 내용 5편 신인경은 후천제도를 설명하면서 2대 교주 남씨부인의 교설 해도론(海圖論) 교주 청강의 신도행사 내용을 법도로 정하고 있다.『대경전』을 발간할 때 서문에서 ‘갑오년(1954) 2월에 청강대선사께서 대경전 원문을 주시면서 발간하라 하 ...

2025-07-0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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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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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룡과 그의 아내 김판례가 1946년 대전 보문산에서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

2025-07-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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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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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은 단군사상을 선양하고자 1964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단군사상에 조예가 깊은 김일권(金一權)과 결속하여 ‘정수회(正守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였다. 이들은 단군사상을 고무하는 강담회를 수시로 개최하였는데 얼마 후 김일권이 이탈하고 대신 대종교에 있던 신철호(申哲鎬)가 주간이 되어 1965년 10월부터 『정수회보(正守會報)』를 간행하여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러나 1967년 이춘상이 정수회에서 손을 떼게 됨으로써 단체는 활동이 정지되었다. 그 뒤 단군숭령회에 소속되어 있던 강대길(姜大佶)이 다시 ‘단군정수회’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종로구 공평로에 회관을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 ...

2025-07-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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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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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유래에 대해서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임금 13년에 후단군조 사절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과 단군실기를 임금께 드렸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이암(李嵒)이 저술했다고 하는 『단군세기』에서는 『단군실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의 강세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을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근대기 백봉(白峯)이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고 단군신명으로부터 묵시를 받은 후 백두산 석실에서 『신단실기』와 『단군실기』를 얻었으며 이후 제자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

2025-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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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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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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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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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854년 수운 최제우는 10년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가가 있는 울산 여시바윗골로 이사했다. 여기서 최제우는 1855년 금강산 유점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라는 책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최제우는 3일을 두고 그 뜻을 생각하여 진의를 파악하고 이후로 결심한 바 있어 더욱 수도에 힘썼다. 그는 그 이듬해 1856년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 들어가 49일을 작정하고 견성공부(見性工夫)에 힘썼다. 그러나 47일 만에 문득 마음에 생각되기를 “이제 숙부가 환원하였으니 가히 공부를 마치지 못하리라” 하고 산을 내려와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에 ...

2025-07-0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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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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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했다가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1958년 계룡산에 주택을 세우고 동쪽 산 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경비 부족으로 중도에 중단하였다. 이것을 광명도의 창립자인 정요순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내부시설과 외부환경을 정리해 주어 1964년 3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도의 정요순이 이곳을 거점으로 광명화운동을 전개한다고 단군 앞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염파방송을 하자 이를 물리쳐 버렸다. 따로 신도를 ...

2025-07-0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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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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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체의 1960년 조용승(趙鏞丞)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본 단체에서는 천지만물과 화해하면 천지만물이 한편이 되고 무엇으로부터도 상해를 입거나 병균이나 악귀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 화해와 감사를 강조하다. 그러한 감사의 생각 속에서 신과 불의 모습을 보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신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곧 신이고 부처라고 하여 신앙의 대상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특별한 경전은 없다. 그리고 국은(國恩) 부모 아내․남편 자식 부리는 사람 모든 사람 천지만물에 감사하라고 강조하고 그러한 감사생활은 만병과 재앙을 물리친다고 가르친다. 1945년에 조용승이 종래 믿었던 가톨릭으로부터 나 ...

2025-07-0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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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남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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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목사는 1979년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기독교한국침례회’교단에 소속되어 성락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이단 시비에 연루되었다. 1982년에는 김기동 목사의 마귀론을 문제삼아 교단의 일부 목사들에 의해서 각서제출을 요구받았고 당시 요구받은 각서의 내용은 보통의 침례교단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귀신 불신자 사후존재설과 아담 이전 사람 선재설 등을 전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6년 현대종교 3월호에 또 귀신론을 문제 삼는 글이 실리면서 파장이 생기자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제 77차 연차총회에서 교단 탈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기독교남침례회’라는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기독교남침례회’는 ...

2025-06-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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