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칠성교
김용배(金庸培)가 창립한 금강불교(金剛佛敎)에서는 신도들은 가정마다 집 뒤에 칠성단을 만들고 밤마다 칠성님께 정화수를 올리고 속죄·해탈·소원성취를 기도한다. 그래서 금강불교의 여신도들은 칠성계를 조직하여 단합했는데, 이들이 금강불교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칠성교로 활동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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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향대제일
성덕도
매년 음 9월 9일에 성덕도에서 춘향대제일(春享大祭日)과 같이 제향(祭享)을 행함. 성덕도 도주(道主)인 월근(月根) 김옥재(金沃載)는 음 3월 3일, 법주(法主) 법해(法海) 도학수(都鶴姝)는 음 12월 19일이 기일(忌日)이라 이 날로 제향을 지내다가 1994년도부터 춘추 향사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5-10-1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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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
대한불교진각종
대한불교진각종을 총괄하는 최고 기관의 명칭.
2025-10-1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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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도인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본명은 이송운(李松雲)이다. 고경민은 12살 되던 해에 해선암에 머물 때 심부름을 가다 청운도인을 만나 그를 따라가 속리산에서 수련법(단전호흡)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그곳에서 만물은 흐르고 유전(流轉)한다는 ‘돌’의 법칙을 전수 받았다고 주장한다. 청운도인은 고경민이 하산할 때 사람을 위한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라는 인체주의(人體主義), 모두가 하나같이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일화통일(一和統一),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정명완수(定命完遂)를 가르쳤다고 한다.
2025-10-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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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위정론
신종교일반/기타
척사위정론은 맹자(孟子)가 유교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불교와 도교를 배격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 후 중국 송대(宋代)에 이르러 여진족을 비롯한 이민족들의 침공으로 중화문화(中華文化)가 위기를 맞게 되자, 주희(朱熹)가 한(漢)민족의 정체성과 유교문화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민족적 ‘화이의식’(華夷意識)을 근간으로 이를 체계화하였다. 한국에서는 17세기 초 유입되기 시작한 천주교 서적과 서양문물에 위협을 느낀 보수적 유학자들과 정치세력들이 성리학적 정통성과 그에 기초한 왕조체제의 유지를 위한 명분을 강화하려는 의식에 따라 등장하였다. 따라서 조선조의 척사위정론은 유교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천주교 사상을 반국가적 반사회적 ...
2025-10-1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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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종
최희규는 1941년 일본 유학 당시 재일유학생 조선농촌연구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추방당한 후 천도교에 입문한다. 1951년 민족청년당을 조직하여 정치운동을 시작하여 1955년 진보당에 합류하게 된다. 1963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을 마지막으로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1964년 대종교에 들어가 교무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정일회(正一會)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1년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여 진법종을 창립하게 된다. 본교의 법단은 동편에 진법신도(眞法神圖)를 봉안하고 그 밑에 신단을 설치하여 중앙에 한얼의 위를 정하고 좌우에 신령선관(神靈仙官)을 모셨다. 본교에서는 종교의 진화과정을 4단계로 보았다. 1단 ...
2025-10-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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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수
한국 문화의 이면적, 근본적인 현상의 하나가 풍수라는 저자의 일관된 견해로, 10수세기 동안 한국 민속 신앙 체계에서 그 지위를 점해 온 풍수 사상에 대한 방대한 자료 집이자 연구 입문서. 양기풍수와 음택풍수를 총망라하여 문헌 및 현지 조사 자료를 기초로 정리, 기술하였으며 80여 장의 사진을 실어 현장성을 높이고 있다.
2025-10-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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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정양
증산교
인류역사는 지나친 차별제도가 강조 되었고 그중에도 특히 남녀의 차별은 두드러진 것이었다. 그러나 강일순은 후천세계가 됨에 따라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남녀관계가 균등하게 구성되게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한때 후천음양도수(後天陰陽度數)를 본다고 하면서 종도(從徒)들에게 갖고 싶은 부인의 수만큼 종이에 점을 찍으라고 하였다. 이에 종도들이 여러 점을 찍었으나 문공신은 한 점밖에 안 찍는지라 그 연유를 물었다. 공신이 대답하기를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고 일음일양이 원리인줄 안다’고 대답하자 네 말이 옳다고 하면서 칭찬했다. 강일순은 “이때는 해원시대라 몇 천 년 동안 깊이깊이 갇혀 있어 남자 ...
2025-10-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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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파
이상룡은 호를 십청(十淸)이라 했고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역원리 연구에 전심하여 김일부의 제자 가운데서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활동은 청양과 공주지방에서 이루어져 널리 알려졌는데 이들을 정역파라 불렀다. 십청이 사망하자 청탄(淸灘:金永坤)의 제자였던 주정갑(周正甲)이 뒤를 이어 공주 이인지방에서 포교했으나 교세는 미약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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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도교
구체적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조선중기 명종 연간에 서울, 송도(松都, 오늘날의 개성) 일원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인(奇人)이자 도술가(道術家)이다. 『지봉유설(芝峰類說)』·『대동기문(大東奇聞)』·『어우야담(於于野談)』·『오산설림(五山說林)』 등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나타난다. “한양에서 하급관리 생활을 하다가 사직하고 송도에 은거하였으며 신광한(申光漢)·송인수(宋麟壽) 등과 우의(友誼)가 깊었다.”, “환술(幻術, 둔갑술)과 기예(技藝)에 능하고 귀신을 잘 부렸다.”, “밥알을 내뿜어 흰나비를 만들고 하늘에서 천도(天桃)를 따 왔다.”, “옥에 갇혀 죽은 후 친척들이 이장(移葬)하려고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
2025-10-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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