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2건
이시영
대종교
이시영은 1869년 11월 3일 서울 저동에서 부친 유승(裕承)과 모친 동래 정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호는 성재(省齋). 1895년 관직에 나가 형조좌랑·홍문관관리·승정원부승지·국내부수석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1895년 관직을 물러나 10여 년간 정치학·법학 등 근대학문을 공부했다. 1905년 외부교섭국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을사늑약 이후 물러났다. 1908년 한성재판소장·법부민사국장·고등법원판사 등을 역임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국권회복을 위한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했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가산을 정리하여 서간도로 망명했다. 1911년 신흥강습소의 설립을 주도했고, 1912년 신흥강습소를 신흥문관학교로 ...
2025-10-0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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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설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유동열(柳東說, 1877-?, 호 春郊)은 1877년 평안도 박천에서 출생했다. 1894년 일본에 건너가 성성학교(成城學校)를 거쳐,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근위사단에서 실무를 쌓았고,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에 종군하였으며,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부에 근무하다가 대한제국군에 복귀했다. 대한제국군 참령(參領)으로 승진하여 시위대 기병대장과 참모국 과장을 역임했다. 1907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산되면서 지하운동에 가담,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고, 서북학회를 통한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
2025-10-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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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비록
대종교
이용태는 대종교가 삼일철학과 삼법수행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대종교 교도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수행을 해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서적이 없음을 애석해 하면서 수진비록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제1장 지감설(止感說)은 정좌(靜坐)·수령(修靈)·현상(顯相)·통지(通知)·망아(忘我)·원각(圓覺)으로 구성되었으며, 제2장 조식법(調息法)은 총론·폐기(閉氣)·태식(胎息)·주천화후(周天火候)로 구성되었다. 제3장 금촉법(禁觸法)은 금정욕(禁情慾)·독신고(讀神誥)·성변화(成變化)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선생 문고』(박달재수련원, 동화서관, 1997)
2025-10-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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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교단내에서 무심대사(無心大師)로 불리는 신수영(申壽英 1878∼1961)이 경상북도 안동 삼정산의 유하사(遊夏寺) 주지로 있다가 1945년 11월 10여 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다음해 신도안에 입주하여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다시 그 아래에 법룡사(法龍寺)를 창건하였다. 앞으로 이 땅에 단군국조의 운수가 열릴 것이므로 단군국조를 숭배해야 한다고 믿고 1948년 천진전(天眞殿)을 세워 단군영정을 모셨다. 이곳을 계룡천진전이라 부른다. 1961년 신수영의 사망 후 지정영(池正永)이 팔모정을 지으라는 신수영의 영계(靈啓)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이수학은 신기수(申 ...
2025-07-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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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이보·개안
천일교
천일교의 신도들은 ‘오음주(五音呪)’와 『신화경(神化經)』 그 외의 영가(詠歌)에 속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수련을 하는데 이때 어떠한 양태의 무도(舞蹈)와 구보(口報) 이보(耳報) 개안(開眼) 등의 신비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구보는 갑자기 입이 열려서 여러 가지 언설이 무의식 중에 터져나오는 것으로 일종의 기독교의 방언(方言)과 같은 것이며 이보는 귀에 신의 계시와 같은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며 개안은 눈에 신 또는 천 리 밖에 있는 사상(事象)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중앙대종교합십괘철학은 정역의 계통을 계승하면서도 역리에 대한 해석보다는 신비현상에 대한 체험으로 더 유명해져 한때는 수천 명에 달하는 신도가 모이기도 ...
2025-06-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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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변도설
대종교
본 도는 서일이 원방각(圓方角)의 삼묘(三妙)를 응용하여 진망(眞妄)의 이치를 도해한 것이다. 이 도설은 천신(天神)과 인물(人物)을 각각 상단과 하단에 그려 놓았으며 이 둘의 관계를 도해하였음을 보여준다. 먼저 천신의 본체에서 정(精)·성(性)·명(命)의 삼진(三眞)이 나온다. 이는 사람과 만물이 모두 천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삼진은 사람이나 만물에 따라 치우침이 있어서 사람에게는 신(身)·심(心)·기(氣)의 삼망(三妄)이 나온다. 삼진과 삼망이 서로 맞서게 되어 촉(觸)·감(感)·식(息)의 삼도(三途)가 생겨나는데 이 삼도는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
2025-06-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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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식
대종교 개천경조회
①대종교의 의례에서 행하는 의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신의식(神儀式) 경하식(慶賀式) 경배식(敬拜式)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경배식은 매주 경일(慶日) 곧 일요일에 올리는 신앙의식이다. ②개천경조회에서는 매월 15일을 기하여 경배식을 올린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5-2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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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상제
1898년 김항이 사망하자 그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하상역이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고 김항을 신격화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같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영곤(金永坤)이 처음에는 하상역과 같이 대종교의 창립과 포교에 협력하다가 이로부터 독립하여 ‘중앙대종교’라는 독자교단을 형성하고 하상역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본 교단에서는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정근(精勤)과 후천개벽의 천명(天命) 집행을 신앙의 중심과제로 하였다. 이들은 신행(信行)에 있어 특히 영가무도를 강조하였는데 종래의 오음주송 외에 「신화경(神化經)」 등 가요와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앙대종교에서는 이러한 경문은 ...
2025-10-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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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정기도원
본교를 창립한 권명희(權明熙, 1931~?)는 1956년 대전 구봉산(九峰山)에서 태극사(太極寺)를 창립하였다. 이후 1973년 충남 대덕군 기정면 관저리 산75번지로 옮기고, 이때부터 ‘태극정기도원’으로 교명을 바꿨다. 그러다가 1984년 충북 괴산군 증평읍 연탄리 영천 1구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대전의 구봉산과 증평의 두태산(頭泰山) 중턱에 390여 개의 크고 작은 돌탑을 쌓아 놓고 있으며, 신앙의 대상을 영계(靈界)의 신(神: 玉皇上帝)에 두고 이 신을 사람의 마음(心)이라 하였다. 옥황상제 외에도 산신·용왕신·칠성신·일월신을 숭배하며, 유·불·선 삼도합일(三道合一)을 기본교리로 하였다. 불교의 인과(因果)를 강조 ...
2025-10-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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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1890년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육당은 1906년 도일하여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소위 ‘모의국회’사건으로 1907년 자퇴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육당은 1908년 신문관을 창설하고 『소년』지를 창간하면서 근대지식을 보급하며 신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주력한다. 1911년에 ‘조선광문회’를 조직하면서 그간 주력했던 근대지식의 보급보다는 한국 고전의 발간과 전통문화의 재발견에 정열을 기울이게 된다. 1910년대의 왕성한 출판과 저술 활동을 거친 육당은 1920년대에 이르러 특유의 ‘조선학’(또는 한국학)을 구성해 나간다. 그의 조선학은 고유성이라는 시간 축과 신성성이라는 공간 축을 마련하면서 구체화된다. 먼저, 육당 ...
2025-10-1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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