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수심정경
원불교
1927년 5월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에 수록된 『정정요론』은 원래 『정심요결(正心要訣)』로 불리는 독립된 서적으로 전래의 도교계통 수련서였다. 부안사람 이옥포(李玉圃)가 1900년대에 기술한 것으로 전하는데, 송규가 스승을 찾아 전라도를 순력하던 1917년 증산교단(甑山敎團)을 방문했을 때 강일순(姜一淳)의 여식 강순임(姜舜任)을 통해 수집하여 원불교에 수용되었다. 이를 박중빈의 감수 아래 1924~1925년에 이춘풍(李春風)이 번역하고 도교적인 수양방법을 불교적인 흐름으로 조정하여 『수양연구요론』의 1~2장에 수록함으로써 초기교단의 수양 보조교재로 활용되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정산은 이의 원전을 전후 8장으로 ...
2025-10-0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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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연혁사
보천교
『보천교연혁사(상·하)』는 차경석의 지시로 간부 이영호(李英浩)가 1935년에 편술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에서 1948년에 발간하였다. 『보천교연혁사(속)』는 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에서 1958년에 발간하였다. 앞의 『보천교연혁사(상·하)』는 1909년부터 1934년까지의 교단사이며 『보천교연혁사(속)』는 1935년부터 1936년까지의 교단사이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보천교연혁사(속)』(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58) 『도훈(道訓)』(민영국 편, 보천교총정원 전문사, 1987)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 ...
2025-07-0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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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금산사지(金山寺誌)≫에 따르면 본디 높은 산을 의미하던 ‘엄뫼’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하여 ‘모악(母岳)’이라 했고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구전에는 모악산 꼭대기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다.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통일 후 신라 불교의 5교9산(五敎九山) 중 하나가 되었으며 국보 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을 비롯하여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 ...
2025-07-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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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봉회
선불유야각의 창립자 계월주는 근대 이후 신종교 중 각세도계 증산계 단군계 등의 교단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군계 신종교인 무법대의 창립자 김구연과 만나 각세도남관에는 원방각단군탑을 세웠으며 1966년에는 증산교계 인물인 성조영을 만나 선불유야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녀는 1967년 증산교계 교단인 정읍의 진동학제화교와 연합하여 단군숭봉회를 세웠다. 따라서 단군숭봉회는 단군계 신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성격면에서 증산계와 관련성도 밀접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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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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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해도
보화교
구해도(金龜海圖)는 보화교(普化敎)의 3대교주 김명환(金明煥)이 교주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의 유지를 받아 하도(河圖) 낙서(洛書) 이후 김일부(金一夫)가 새로 발견한 역(易)의 도판을 완성한 것이라 한다. 김일부는 아이들이 ‘삼각산 제1봉에 봉황이 날아 춤을 추고 한강수 깊은 물에 용마하도(龍馬河圖)가 다시 나네’ 라고 동요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한강에 가보니 거북 등처럼 생긴 평판(平板)의 돌에 환영적(幻影的) 점이 음각처럼 나타나있었다. 일부는 이것을 보고 득리(得理)하여 마침내 낙서(洛書) 이후에 어떤 신리(新理)의 세계가 올 것을 예지하였고 또 연구 끝에 낙서에 있어서 인월세수(寅月歲首)를 묘 ...
2025-06-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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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십조
선도교
선도교(仙道敎)를 세운 고판례(高判禮 1880-1935 별명 高夫人)가 차경석의 보천교와도 관계를 끊고 이상호의 동화교(대법사)에서도 물러나와 독자적으로 김제 조종골에서 교단을 운영하던 때에 이 계명을 제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의 역사와 가르침을 정리하여 고민환이 저술한『선정원경(仙政圓經)』에 나타나있다. ①물위투도(勿爲偸盜) 도둑질 하지 말라. ②물위간음(勿爲姦淫) 간음을 하지 말라. ③물위작척(勿爲作戚) 척을 짓지 말라. ④물위시기(勿爲猜忌) 시기를 하지 말라. ⑤물위망언(勿爲妄言)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 ⑥물위기어(勿爲綺語) 말을 꾸며서 하지 말라. ⑦물위자만(勿爲自慢) 자만심을 갖지 말라. ⑧물위도박(勿 ...
2025-05-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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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삼요체
태극도
조철제(趙哲濟, 1895~1958, 호 鼎山)가 창립한 태극도(太極道)의 교리 요지(종지)는 신조(信條)·사강령(四綱領)·삼요체(三要諦)로 집약되며, 삼요체는 성(誠)·경(敬)·신(信)이다. ①성: 도(道) 곧 나요, 나 곧 도라는 경지에서 마음과 혼령을 통일하여 만 가지 조화로써 중생제도에 이바지 하여야 할지니, 마음은 한 몸에 군림하여 모든 기틀을 이끌고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몸의 생각과 염려와 움직임과 고요함이 오직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 마음에 있으면 있고 마음에 없으면 없는 것이니 항상 끊임없이 조밀하며 틈과 쉼이 없이하여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라. ②경: 마음과 정신의 움직임과 작용을 받아 몸이 예 ...
2025-10-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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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원존위증산도성
동도법종금강도
강승태의 단군성주교를 이어받아 교주가 된 김승례(金承禮)는 교명을 동도법종금강도라 바꾸고 교리를 다듬으며, 교서를 간행하고, 도체를 다시 짜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같은 계열인 강승태-김근보-강봉옥으로 이어지는 단군성주교(신앙대상 명칭은 통일신단: 증산을 중심으로 한), 강승태-김순옥으로 이어지는 무극대도(신앙의 대상은 옥황상제: 증산)와 차별성을 갖기 위함 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승태-이백환-김승례로 이어지는 이 교단은 신앙의 대상도 같은 증산 강일순의 명칭을 이같이 바꾼 것이다. 천지원존(天地元尊)이라 함은 ‘천지에서 으뜸가는 자리에 계신 어른’이라는 뜻이요, 도성(道聖)이라 함은 유·불·선(儒佛 ...
2025-10-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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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서상근파
증산교서상근파(甑山敎徐相根派)는 1945년경에 서상근(徐相根, ?~1962)이 창설하였다. 보천교의 노동단체인 기산조합장(己産組合長)을 역임 한 바 있는 서상근은 보천교를 탈퇴하고 입산수도를 한 후 신명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증산교를 포교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위에 집을 짓고 산전을 이루어 생활하였는데 그를 도인이라고 하여 따르는 사람들이 교단을 이루었다. 서상근이 1962년 사망한 후에 김기태(金箕泰)가 계승하였는데 별스런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최근봉(崔根奉)이 금산면 청도리 동곡약방 자리를 사들여 이곳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증 ...
2025-10-0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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