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2건
작산단군전
본 사당의 창립자인 이진탁은 41세 되던 1900년에 백두산에 입산하여 단군의 영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구월산과 지리산, 계룡산 등을 돌아다니며 기도수련을 하였으며,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에서 나철과 정훈모 등에 의해 단군교(대종교)가 창립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1913년에는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으로 자택에 단군전을 세우게 된다. 작산단군전은 1913년에 설립되어 1930년에 정훈모에 의해 설립되는 시흥단군전보다 17년 앞선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 한국 단군전의 효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진탁은 단군을 모시면서도 동시에 황제와 공자까지 모셨으며 ...
2025-10-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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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
대종교
신규식은 1879년 1월 13일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부친 용우(龍雨)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895년 서울로 유학하여 1898년 관립 한어학교(漢語學校)에 입학하였다. 2년 뒤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임관되어 참위(參尉)·부위(副尉)까지 진급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에는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등 애국계몽단체에 참가하였으며, 중동학교·청동학교·문동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09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광산경영도 하였다. 1910년 망국의 소식을 듣고 음독자살을 기도하였으나 나철에 의해 구조되었고, 이때 오른쪽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1911년 지교(知敎) ...
2025-10-0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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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
단군교
백봉은 성명과 신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는 태백산(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여 단군신명의 묵시를 받았으며 백두산 석실에 비전되어 오던 단군의 교전 『삼일신고』와 『단군실기』 등을 얻게 됨으로써 신도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1904년부터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백전(伯佺)을 비롯하여 두일백 정숭모 등 13명이 백두산 대숭전 고경각에서 모여 백봉의 교지를 받들어 단군교를 포명하였으며 이 포명식에 참석한 13명 외 20명 등 총 33명이 단군의 성역인 만주 몽고 일본 등으로 포교를 떠났다고 한다. 백봉의 단군교에 연원하여 이후 나철이 ...
2025-07-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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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
대종교
대종교 총본사에 속하는 삼일원이 도원이다. 삼일원은 종문의 교리와 수도수행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중추적인 도원으로서 교리의 통달과 삼법수행의 생활화를 토대로 대중을 교화하여 철인으로 만드는 사명을 지니고 시교와 선도 성직자 양성 및 교리와 종사의 연구를 실시한다. 산하에 종리원 선도원 수도원을 두고 있다.
2025-07-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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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총본사
대종교
대종교총본사는 교단의 중앙기구로 대일각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산하에 도본사 시교당 및 수도원을 두고 있으며 연구기관으로 종학연구원을 두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 2동 13-7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2025-07-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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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본사
대종교
대종교에서는 창립 후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도본사를 두도록 하였다.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담당: 강우)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담당: 서일) 서도본사를 상해(담당: 신규식 이동녕)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담당: 이상설)에 설치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한을 관할하는 남도본사만이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대종교에서는 남1도 남2도 남3도 남4도로 구역을 나누어 각 곳에 도본사를 설치하였고 부여와 성주 부산 광주 밀양 상주 공주 등에 지사(支司)를 두었으며 각지에 시교당을 두고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5-07-0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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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대종교
인물
2025-06-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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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기념일
대종교
대종교는 김항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하상역(河相易)이 창립한 교단으로 본교의 신앙의례로는 현무선생 탄강기념일(1월 13일) 용화세존출세일(5월 5일) 용화세종탄강일(7월 4일) 일부선생탄강일(10월 28일) 개벽기념일(3월 13일) 등이 있다. 대종교의 기념일은 대부분 이운규로부터 김항 하상역으로 이어지는 교단의 법맥을 이어 온 인물들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대해 개벽기념일은 하상역이 대종교를 창립한 창교기념일이며 교단에서는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하여 경축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다만 대종교에서 기념일에 어떠한 의식을 진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해오지 않으므로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 ...
2025-05-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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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단군탑
청동단군탑의 창립자 이백임은 1910년생으로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갔으며, 거기서 천리교(天理敎)의 신자가 되었다. 해방 후 귀국하였는데, 연산(連山)의 개태사(開泰寺)와 기독교회 등을 방문해 설교를 들었으나 교리상 조상숭배가 무시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 나라 국조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신봉하는 교단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국조를 숭배하는 종교가 없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우연히 논산군 상월면에 사는 이창녕(李昌寧)이라는 사람이 단군을 신봉한다는 소리를 듣고 방문하여 『삼일신고』의 교리를 들었으며, 작은 단군소상(檀君塑像)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이 소상을 품에 넣고 다니며 기 ...
2025-10-1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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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역사
신종교학
일반적으로 한국 신종교의 효시는 1860년 발생한 동학(東學)을 말한다. 이후 한국에서는 수많은 신종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생하여 왔다. 동학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사회해체 상황과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민중의 종교적 욕구와는 상관없이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체제의 기본이념으로 삼으면서 유교국가를 지향해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나타난 국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성리학의 사회통합 기능이 약화되면서 급속한 사회해체 상황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 민중의 삶은 극도로 약화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덧붙여, 19세기에 ...
2025-10-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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