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군바른님
한얼교
본서는 단군의 존재에 대해 역사적인 서술방식으로 그 실재성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그 역사성이 현재의 한얼교로 이어진다는 정통성을 증명하는 것에 주안을 두고 있다. 구성은 두 개의 서문이 있는데 각각 곽상훈(郭尙勳)과 안호상(安浩相)이 썼으며 제1부 사적편 제2부 진리훈고편 제3부 단군바른님의 얼을 이어받은 후손들로 되어 있다. 제1부 사적편의 제1편은 단군바른님의 거룩한 발자취이며 제1장 태백산과 신시 제2장 탄세와 어천 제3장 건국과 치화 제4장 통치강역 배달족으로 되어 있고 제2편은 단군바른님에의 우러름이며 제1장 삼신·신교·제천 제2장 신위의 봉안과 개천절이 실려 있다. 제2부 진리훈고편에는 제1편 천부경 제2편 ...
2025-07-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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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계의 삼대지침
東方敎
동방교에서 노광공과 두 아들을 삼위일체를 이룬 절대 신(神)으로 신봉하였고
2025-07-0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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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단
천도교
천도교는 초기부터 인내천의 여성관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성 의제개량에서부터 생활개혁 및 의식의 각성 여권신장 교육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펼쳐오다가 1924년 천도교 청년여성들은 최초로 여성단체인 내수단을 조직하여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내수단 위원은 주옥경 이정희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주로 강연과 야학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5년 내수단 강연 주제를 보면 “완전한 인격(김미리사)” “혁신의 급선봉(유각경)” “부인문제(주옥경)” 등으로 여성계몽을 도모했고 1929년 5월 동아일보 후원 하에 “보육법(차사백)” “어린이의 심리생활(방정환)” 등 아동보 ...
2025-07-0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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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북선
보천교
사회단체의 보천교 박멸운동에 이어 내부의 혁신운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차경석이 1926년 2월에 60방주 전원을 해직하고 대신에 전국의 교인 조직을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이라는 이름으로 양분하였다. 당시에 북선을 ‘선북교인연합회’라 하고 그 책임자를 임치삼(林致三)으로 남선은 ‘보천교남선총무소’라 하고 그 책임자를 김정곤(金正坤)으로 임명하였다. 남·북선 체제는 같은 해 5월경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폐지되었다. 1927년 6월에 60방주제가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민중과 유토피아』( ...
2025-07-0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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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종
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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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련
대종교
나정련은 1882년 9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염재(念齋).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가업에 종사하다가 1905년 경성 초동으로 이사하였다. 1910년 부친이 대종교를 중광하자 입교하였고 부친을 시봉하였다. 1911년 영계(靈戒)와 참교(參敎)를 받았다. 1914년 만주 연길현 의란구로 이주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6년 지교(知敎)를 받았다. 1920년에는 구룡(九龍)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1941년에는 당시 대종교총본사가 있던 옛 발해수도 영안현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했으며 경의원 참의(參議)에 피임되었다. 1942년 ...
2025-07-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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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세계종교 환조교 선덕학회
김정희는 1944년에 출생하였으며 호는 달선(達仙)이다. 1982년 3월 신철호 등 21명과 함께 태백산 기도를 가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태백산 제천당에서 기도를 드렸으며 이후 신철호와 함께 마리천산 제천단에서 세계종교를 중창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1989년 세계종교를 창립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1995년 강화도 강화읍 신문리 175-2(갑곳)로 교단을 옮겨 교명을 ‘환조교(桓祖敎)’라고 하여 활동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단군마니숭조회의 창립자인 황우연과 손잡고 ‘선덕학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 ...
2025-06-3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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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포
천조단군국교
김일포는 1903년 전북 정읍군 정우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에는 보천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삼위신위(三位神位)의 위패를 자택에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에는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 위패의 중간에 모셔놓고 천제를 지냈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였으며 1948년에는 국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김일포는 1949년 5월 3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발생한 국민계몽회 주도의 유성갑(柳聖甲)의원 폭행사건에서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당시 국민계몽협회는 1949년 5월 24일 국회 ...
2025-06-3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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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규
천도교
송암 김완규는 구한말 관직에 있다가 1910년 손병희 등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여 봉도(奉道)·법암장(法庵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8월 15일 『천도교회월보』를 간행하고 문명개화운동을 주도하는 언론활동을 전개하였고 1910년 9월 1일 일제의 한일 강제 병합을 반대하다가 일본헌병에 체포된 바 있다. 1919년에는 3.1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동의하고 민족대표로서 참가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로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하였고 1923년 10월 조선의 최초 노동단체인 노동단대회 집행위원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1945년 12월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있으면서 독 ...
2025-06-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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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열
삼신도
김석열은 1912년 1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대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으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대전시 중구 오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였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말살되어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84년에 삼신도를 창립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였던 정근철과 손을 잡고 『일신경(一神經)』을 간행하는 등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근철과 함께 ‘하느님 명호도용 및 단군성조의 경칭 침해 배제 청구의 소’(92가합 71999호 사 ...
2025-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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