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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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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교

이필례는 1905년 5월 23일 전북 옥구군 임피면 미월리에서 출생하였다. 20세에 결혼하였으나, 24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험을 보지 못하다가 39세 때 계룡산 청학사에서 온 한 여승을 따라 입산하여 임도봉(林道峯)의 영가무도교에서 1년간 치병을 위한 수련을 하였다. 이때의 수련법은 오음성(五音聲:음아어이우)을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련을 시작한 얼마 후, 오색찬란한 광명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해졌으며, 10여 년간 고통받던 병이 완치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임도봉이 사망한 후 스스로 교통(敎統)을 물려받았다고 주장 ...

2025-10-0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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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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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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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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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신수영은 1878년 경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출가하여 중이 된 뒤 삼정산 유하사(遊夏寺)의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10여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동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1946년 계룡산 신도안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이어 제자봉 밑에 법룡사를 세웠다. 그리고 1948년에는 법룡사 바로 위에 단군전을 짓고 천진전(天眞殿)이라 했다. 그는 미륵불을 주불로 신앙하였는데 가까운 시기에 미륵불이 주도하는 후천용화세계 운수가 개벽된다는 것을 믿었다. 이 용화세계는 유불선(儒佛仙)의 삼도(三道)가 합일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처럼 삼도가 합일되는 ...

2025-10-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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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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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81년 2월 26일에 함경도 경원군 안농면 금조동에서 출생하였고 10세에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경성함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계몽운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로 건너갔다. 1911년부터 두만강을 넘어오는 의병 잔류 병력을 규합하여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취임했다. 청년들에게 민족정신과 한학을 가르쳐 정신교육에 힘썼으며 명동중학교를 설립했다. 1912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교리연구와 포교활동에 주력하여 총본사 전강(典講)을 지냈고 교단의 교력(敎歷)을 나타내는 교질(敎秩)은 사교(司敎)에 이르렀다. 1917년 대종교 총본사가 화룡현(和龍縣)으로 옮 ...

2025-07-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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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오대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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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①교규준수(敎規遵守) ②교리연구(敎理硏究) ③교인광천(敎人廣薦: 사람들을 많이 교화하고 대종교에 입교시키는 것) ④경일각수(敬日恪守: 매일요일(每日曜日)을 경일(敬日)이라 하고 오전 11시에 시교당(施敎堂) 위에 집합하여 경배식을 거행함) ⑤천곡성헌(天穀誠獻: 천곡은 가족 수대로 매 끼니에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서 신전에 바침)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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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신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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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이 창립한 단황전의 다른 이름.

2025-07-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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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선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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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는 홍암 나철이 중광한 이후 일제의 탄압에 의해 만주와 연해주 중국 본토 등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군의 무력항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일제는 중국 동북삼성의 정권 담당자였던 장쭤린[張作霖]과 삼시조약(三矢條約)을 체결하고 만주의 조선인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였으며 당시 독립군의 주동세력이었던 대종교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1926년 12월에는 길림성장 겸 독군인 장쭤샹[張作相]이 조약을 이행한다는 명목하에 ‘대종교포교금지령’을 발포하면서 만주에서 대종교의 포교활동은 불법이 된다. 그러다가 1933년 1월 당시 대종교의 도사교였던 윤세복은 포교사업의 재개를 선언 ...

2025-07-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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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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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 총본사는 대일각과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며 그 산하에 도본사 시교당 및 수도원을 두고 있다. 대일각은 대종교의 모든 교정을 통솔하는 최고기관으로 총전교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전교가 한 뜻으로 천진전을 수호하며 수도청사를 하는 집무기관이다. 참고문헌 : 대종교 홍범 제37조

2025-07-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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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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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정문은 1891년 11월 28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일도(一島).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원산농공은행에서 2년 성진척식은행에서 6년간 근무하였다. 1909년 부친 나철에 의해 대종교가 중광되었을 때 입교한 이후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되면서 총본사에서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 총무 천전건축주비회(天殿建築籌備會) 발기인 등 중책을 맡았다. 1942년 일제의 대종교 탄압을 위한 조작에 의해 발생한 임오교변으로 11월 19일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영안현서(寧安縣暑)를 거쳐 목단강경무처에 구금되어 15 ...

2025-07-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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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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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용태는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으로 일경에 의해 체포된다. 그는 일본의 패전으로 조국이 해방되면서 출감하였고 이후 임오교변에 의해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였던 일들과 옥중에서 겪은 고통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여 남겼다. 이에 의해 임오교변으로 사망한 임오십현의 옥중에서 있었던 일들과 일제의 만행이 세세하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부기(附記)로 이적(異蹟)이라고 하여 자신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며 고문했던 담당자들이 급사하는 등의 일에 대해 3가지를 기술해 두었다. 참고문헌 : 『구금고황』(이용태 1946)

2025-06-0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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