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월계
단군조선종천회
단군조선종천회(檀君朝鮮宗天敎)의 산행수행(山行修行)방법.
2025-10-08 17:52
15
원불교 초기교서
원불교
박중빈은 대각 이후 창립인연들을 규합하고 방언공사와 법인기도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경제적·정신적 기틀을 다졌다. 아울러 1918년 10월에 창립한도를 발표하면서 ‘제2회 12년에 해당하는 1928년부터 1939년까지는 교법을 제정하고 교재를 편성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그리고 전북 부안군의 봉래정사로 거처를 옮겨 1919년 4월부터 1924년 2월초까지 머물면서 교리에 관한 구상과 초안에 전념했다. 그 기간 동안 전통불교를 시대에 맞도록 하여 대중 교화를 하자는 내용을 담은 『조선불교혁신론』(1935)과 전문 수양의 방법과 각 항 연구조목을 지정함으로써 수양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교리를 담고 있는 『수양연구요론』(192 ...
2025-10-08 01:23
15
원각현원교
본래 임제종(臨濟宗)의 신자였던 김영호(金永琥)는 1929년 불법대회(佛法大會)라는 조직을 만들지만 재정난으로 해산되었고, 다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원각현원교(圓覺玄元敎)를 창설하고, 1933년 3월 30일 발회식을 거행한다. 사무소는 당시 경성부 무교정(京城府武橋町)에 두었다. 원각현원교의 종지는 불세존(佛世尊)을 숭신하여 일반인들에게 자비심을 함양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단운영에 있어서 재정이 뜻대로 모이지 않아 발기인 가운데 탈교(脫敎)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상계(喪契)를 조직하고, 당시 이태원 공동묘지 부근에 순국군경충혼위안원당(殉國軍警忠魂慰安願堂)의 건설을 계획하고 ...
2025-10-08 00:58
15
요강교
요강교의 창립자인 이원영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병대장인 이석용(李錫庸)이었는데, 그는 아버지 때문에 일제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충의를 창명(彰明)하려는 뜻으로 고생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생활로 방황할 때 김항의 『정역』원리를 접하였고, 오음주의 수련에 의해 신비한 체험을 한 후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때는 수백 명의 신도를 거느린 교주가 되기도 하였다. 이원영의 교단은 따로 교단명칭을 내 걸지 않았는데, 한때 이원영이 아버지의 충의비를 세우고자 질요강을 만들어 교인들로 하여금 이를 매각하도록 했 ...
2025-10-07 23:57
15
오일오성회
여화와 새일교단
새일교단의 창교자인 이유성 목사는 1964년 9월 24일 계룡산에서 새일교단의 출발점이 되는 새일수도원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5월 15일 수도원을 완공하고 헌당식을 가졌는데, 오일오 성회는 바로 새일수도원이 완공되어 새로 출발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렇지만 5월 25일 하루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5월 15일을 기준으로 한 주를 기념하여 갖는 의례 모임이다.
2025-10-07 23:14
15
연정원
1925년부터 권태훈은 계룡산 기슭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련했는데, 그 장소를 연정원이라 불렀다. 그가 1984년 소설 『단』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권태훈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백두산족으로 보고 고대 민족의 정신문화를 회복하고 계승하는 것을 강조했다. 연정원에서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지감, 조식, 금촉의 수련법 가운데에서 조식에 중점을 두고, 수련을 통해 우주와 합일된 존재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2025-10-07 16:39
15
신태제
정도교, 각세도서관
각세도의 도주인 이선평은 교단을 창립한 후 교세의 확대와 더불어 사관제도를 운영하여 교단조직을 정비하게 된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위로 두었으며, 각 관에는 자신의 10대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4명을 선발하여 도주로 임명하였다. 당시 각세도 서관의 도주로 임명된 것이 신태제이다. 그러나 1956년 이선평 사후 신태제는 서관을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자적인 교파를 형성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다가 조화정부(造化政府) 사건의 조작혐의를 받아 구속된 후,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 ...
2025-10-07 00:11
15
신인동맹사건
보천교
신인동맹(神人同盟)은 보천교 신도들이 종교적 결합을 바탕으로 일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38년 당시 전라북도 정읍을 활동무대로 조직된 비밀 결사 조직이다. 신인동맹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국권 회복을 위해 대원 50여 명으로 조(組)를 편성하여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등 항일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1940년 12월경 신인동맹이 일본경찰에 발각되면서 정창묵, 정휴규, 정공일, 김재영 등 주도자들이 검거되었다.
2025-10-03 23:30
15
신사사변
금강대도
2대 도주 청학(靑鶴) 이성직(李成稙)은 창도주 이승여의 정신을 계승하여 단군을 숭상하며 배일사상을 고취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금강대도를 배일단체(排日團體)로 규정하고 사찰을 시작했다. 금강대도에 대한 일제의 1차적인 억압책은 간도 강제 이민정책이었는데, 도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 금강대도를 일본 불교 정토진종에 병합시키고자 이성직을 일본에 초청하는 등 갖은 회유를 동원하였지만 이성직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히려 환국 후에 대도의 교리와 의례를 체계화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흥기도덕가’를 짓고 ‘가무’를 추게 하여 도인의 사기를 북돋았다. 일제는 이를 예의 주시하였고, ...
2025-10-03 23:10
15
신리종교
1922년 윤주성이 무격으로 하여금 단군 및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대덕을 존숭케 하려고 신사봉축회(神社奉祝會)를 창립하였다고 한다. 그 후 교명을 신사교풍사(神社矯風社)라고 바꾸었고, 1922년에는 신리교 교정회(矯正會)라 하다가 1923년 신리종교로 개칭하였다. 개칭 당시 교도수가 5천여 명 이었다고 하지만 이렇다 할 활동 없이 재정곤란에 빠져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3 22:55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