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삼신전경
삼신교
삼신교를 창립한 서상태는 교단의 주요 경전으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과 함께 『삼신전경』과 『삼신진언』 등을 주요경전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삼신교에서는 『천부경』을 조화경(造化經) 『삼일신고』를 교화경(敎化經) 『참전계경』을 치화경(治化經)이라 하여 중시하면서도 본서가 서상태에 의해 삼신(三神:환인·환웅·단군)의 뜻을 밝힌 경전으로서 중시하고 있다. 2003년 삼신신앙제단대본사의 출판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삼신전경』(서상태, 삼신신앙제단대본사, 2003)
2025-07-0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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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수원
국제도덕협회 일관도
삼불(三佛)이란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말하며 수원(收圓)이란 일관도의 이상향인 이천(理天)에 왕생(往生)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삼불수원은 삼불에 의해 구제되어 이천에 왕생한다는 뜻이다. 일관도에서는 명명상제(노모)가 인류문명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자식인 96억 명의 불자(佛子 原子)를 지상에 내려 보냈는데 이들의 노력으로 문물은 발전하였으나 악인들의 영향으로 원자들이 본래의 선한 영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명명상제는 삼불로 하여금 이들을 청양기(靑陽期) 홍양기(紅陽期) 백양기(白陽期)의 3기에 걸쳐 구제하게 한다. 청양기에는 연등불이 2억 명을 홍양기에는 석가모니불이 2억 명을 그리고 백양기에는 ...
2025-07-0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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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주
시천교
시천교의 모든 의식에 사용되는 초학주 강령주 본주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이를 21단주와 105염주에 맞추어 염송함.
2025-07-0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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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성덕도
사주는 성덕도 도생들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 결재를 해주고 일정 기간 동안 수도한 도생들에게 교화생 교화사 자격을 수여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성덕도의 법통은 도주 김옥재와 법주 도학수에 이어 성도사로 승계되는데 사주 4명이 제1세 성도사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2025-07-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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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기념일
한얼교
한얼교에서 행하는 주요 행사는 6대 교절과 4대 기념일 등이 있다. 4대 기념일은 ①교조 신정일이 성도(成道)한 날인 성정일(成正日: 12월 4일) ②교조 신정일이 탄생한 날인 정탄일(正誕日: 4월 4일) ③개천절(開天節: 10월 3일) ④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인 만성절(萬聖節: 2월 1일)이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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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령각
수운교
봉령각은 1929년에 건립되었으나 1939년 화재로 소실되어 1947년에 재건된 남향의 목조 건물이다. 봉령각은 도솔천 법회당과 더불어 수운교의 삼단(三壇)중 하나이다. 좌우 퇴칸을 제외하고 정면 5칸의 목조기와 건물로 벽체는 긋기단청의 조촐한 맛을 부연개판이나 서까래부리 퇴보 등에서는 화려한 단청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내부 중앙에는 1937년에 봉안된 아미타불 목조입상을 좌측에는 성덕군(나옹불사)을 우측에는 순덕군(수운천사출룡자)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마루 동쪽에는 신중단을 모시고 있다. 봉령각은 초기에 교주가 정양처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공부도량이라 하여 지혜발원의 상징으로써 영적인 감응을 많이 받았던 기도처였다. ...
2025-07-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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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신파
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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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환
1948년 취직한 제련소를 그만두고 평양 성화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미국의 드류대학교 신학부와 스위스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967년부터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유학시절 그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80년대 이르러 개방과 대화를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제창하게 되었다. 개종을 전제로 한 제국주의적인 선교론이 아닌 대화적 선교론을 주장했다. 이에 한국적 신학의 과제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서구적 편견으로 인한 종교적 차별 타파 둘째 배타적 교회중심주의를 극복 마지막으로 종교다원론의 수용이었다 그는 1990년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논문 ...
2025-07-0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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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
단군교
백봉은 성명과 신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는 태백산(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여 단군신명의 묵시를 받았으며 백두산 석실에 비전되어 오던 단군의 교전 『삼일신고』와 『단군실기』 등을 얻게 됨으로써 신도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1904년부터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백전(伯佺)을 비롯하여 두일백 정숭모 등 13명이 백두산 대숭전 고경각에서 모여 백봉의 교지를 받들어 단군교를 포명하였으며 이 포명식에 참석한 13명 외 20명 등 총 33명이 단군의 성역인 만주 몽고 일본 등으로 포교를 떠났다고 한다. 백봉의 단군교에 연원하여 이후 나철이 ...
2025-07-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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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덕
증산진법회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부친 배운경(裵雲卿)과 모친 박운녀(朴云女)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3세 되던 1938년에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학과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이 해 10월에 이덕희(李德姬)와 결혼했다. 1946년부터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는 증산교단연합운동 부위원장을 지냈고 1971년에 결성된 증산신도친목회 부회장 1972년에 증산교단통일회 부회장 1974년에 ...
2025-07-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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