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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도리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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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도리원파(甑山敎桃李園派)를 설립한 김광찬(金光贊, 1869~1917, 본명 俊湳)은 1869년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전라북도 익산군 함라면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성격이 거칠어 남과 싸우기를 잘 하였다고 한다. 참봉을 거처 황등면장을 지냈다. 강일순의 종도가 되고는 강일순의 천지공사에 적극 참여 하였다. 『대순전경』 등 증산계 경전에 광찬의 기록이 30여회나 등장한다. 강일순이 ‘도리원서문(桃李園序文)’을 천 번 읽으면 도에 통한다고 한 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도리원서문을 많이 읽게 하였기 때문에 이 교파를 세상에서 도리원파라 했다. 김광찬이 옥중에서 사망하자 이 ...

2025-10-0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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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김자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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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김자현파(甑山敎金自賢派)는 증산 강일순의 종도인 김자현(金自賢, 1875~1927)의 아들 태진(泰振)이 이끌던 증산계 교파이다. 김자현은 김형렬의 사종(四從)으로서 김형렬과 함께 미륵불교(彌勒佛敎) 창립에 참여하여 저극 협력하였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그의 교통을 이어 포교하였다. 그러나 김자현이 사망한 후로는 김자현의 아들 태진과 태봉(泰鳳)이 이를 계승하였는데 이들을 증산교김자연파라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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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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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李正院, 1935~?)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출생했다. 객지로 나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도에 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도에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1988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으로 이전하여 정도교라 하였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하느님 즉 증산천사이다. 천상 ...

2025-10-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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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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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계

최제우는 1860년 득도 후 모여드는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접주제(接主制)라는 조직을 활용했다. 최제우는 여러 곳에 접소(接所)를 두어 접주가 교화와 포덕을 하였다. 접주제는 지역이나 기구 중심이 아니라 교인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속인제(屬人制)이다. 2대 교주인 최시형 당시에는 교세가 늘어남에 따라 포제(包制)를 실시하여 포의 책임자를 대접주(大接主), 그 밑에 군을 담당하는 수접주(首接主), 면을 담당하는 접주, 이동을 담당하는 접사(接司)를 두어 신자들을 관리했다. 1905년 천도교로 바뀌면서 이 조직은 폐지되고 서울에 중앙총부, 지방에 각 교구가 설치되는 기관제(機關制)가 도입되었다. 이 조직은 연원제(淵源 ...

2025-10-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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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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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천도교)

전봉준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곤궁한 생활에 보탬을 주기 위해 훈장도 했다. 아버지는 고부군의 관리였으나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하여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곤장을 맞고 사망했다.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1892년 무렵에 최시형에 의하여 고부지방의 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그는 1893년 3월 동학의 보은취회에 참가하여 그 집회를 반봉건·반부패·반침략의 정치적 운동으로 확대시키고자 하였으나, 보은 집회가 4월 3일 해산됨에 따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이끈 동학농민혁명의 직접 불씨는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재물을 빼앗는 등 학정 때문이었다. 전봉준을 ...

2025-10-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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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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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수된 적산자산을 귀속재산이라고도 한다. 1945년 당시 귀속재산의 총 가치는 우리나라 총 자산가치의 약 80%에 이를 정도였다. 그 일부는 미 군정청에 의해 민간에 불하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는 1948년 건국이후 한국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8년까지 불하되었다. 이때 불하가격 자체가 시가 1/4~1/5 정도였으며 상환 기간도 최고 15년 분할 상환이었다. 당시 높은 인플레로 인해 불하 자체가 하나의 특혜였다. 종교의 귀속재산은 같은 계통의 종교단체에 불하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으나 미군정이 임의로 불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던 개신교 목사였던 한경직(韓景職), 송창근(宋昌根), 김재준(金在俊) 등이 ...

2025-10-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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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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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쓰여 있는 명칭은 ‘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이다. 임신서기석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길쭉한 형태의 점판암제(粘板巖製)로 한 면에 5줄 74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고, 내용 중에는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자주 보인다. 한자를 받아들여 우리의 표기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유일한 금석문이다. 특히, 세속 5계 중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의 표상물(表象物)이기도 하다.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도 자형과 획법, ...

2025-10-0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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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평화건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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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주평화국

2016년 현재 교단 홈페이지(http://www.ydc1440.com.ne.kr/title_2.htm)에 실린 ‘우주일주평화국 헌장’에는, 성민원·성례원·성의원·성정원·성법원의 5대기구와 일주이념연구원·일주평화건설단·일주생활공생조합의 3대기관이 교단의 기구로 소개되어 있다. 이들 기관은 모두 1명의 기구·기관장을 둔다. 일주평화건설단은 교단의 3대 기관의 하나로 옛 명칭은 통일평화건설단이다.

2025-10-0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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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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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 의하면 552년 백제의 성왕에 의해 일본에 불교가 공전되었다고 한다(통설은 538년). 초기에는 불교의 도입에 관한 숭불파와 배불파의 대립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의 유입으로 고대 왕권국가의 확립을 목표로 했던 숭불파의 승리로 끝났다. 쇼토쿠[聖德] 태자는 「17조헌법」에 삼보를 경배하라는 가르침을 제시하여 불교를 통해 민중을 계도하고자 하였다. 이로부터 불교는 국가를 진호(鎭護)하기 위한 관리체제에 편입되었다. 국가의 비호 아래 소위 남도6종(南都六宗)인 법상종·삼론종·율종·구사종·성실종·화엄종이 학파로서 성립했다. 고대 후반기에는 사이초[最澄]에 의한 천태종과 쿠카이[空海]의 진언종이 확립되었다. ...

2025-10-0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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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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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인희선도태백원에서는 1984년『인희보감』 상·하권을 출간하였고, 본교의 중점사업으로 『인희보감』의 강론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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