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해도
보화교
해도(海圖)란 보화교(普化敎)의 교주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이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원리를 본받아 제행제법과 후천24방위, 24절후, 28수, 8괘 변위 등 누락 없는 천지공사를 행하는 그림(圖)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해도 또는 ‘금구해도’라 한다. 금은 천지운회의 변복(變復)이 창조 이래로 내려와 지금 이 추운(秋雲)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따온 글자요, 구는 해도 중에 낙서이기(洛書理氣)를 이어온 바 있기에 신구(神龜)의 구를 따왔으며, 해는 하수(河水)와 낙수(洛水)가 가는 곳은 바다라는 데서 따왔고, 도는 하도(河圖)의 도와 같은 뜻이다. 1959년에 김명환이 해도(海圖)를 들고 나와 신비 ...
2025-10-1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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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종교의 신비주의
신종교학
루돌프 오토(R. Otto, 1869~1937년)는 그의 저서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에서 성스러움과 마주했을 때의 인간은 ‘떨림, 두려움, 황홀함’을 수반하는 ‘누미노제’(numinose)경험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종교는 이러한 누미노제의 종교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신종교의 창시자들은 여러 가지 신비경험들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였다. 그러한 신비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공동체가 커지면 이 신비경험들은 교리라는 이론적인 측면, 공동체라는 사회적인 측면, 의례와 윤리라는 실천적인 측면들로 표상화(表象化)된다. 그러나 오늘을 살고 있는 종교인들은 창시자들 ...
2025-10-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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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인도교
인도교(人道敎: 초기 天人道)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는 창립 초기인 1922년경부터 교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사명당(四明堂)에 응한 교직 조직을 했다. 순창 회문산오선위기(回文山五仙圍基)는 기당(棋堂) 무안 호승예불(胡僧禮佛)은 불당(佛堂) 장성 옥녀직금(玉女織錦)은 금당(錦堂) 태인 군신봉조(君臣奉詔)는 조당(詔堂)이라 하고 기당에는 강원도 사람 불당에는 경상도 사람 금당에는 충청도 사람 조당에는 평안도 사람을 배치하여 효과적인 통솔을 하게 하였다. 본부를 만주에 옮기고 나서는 교화기구로 팔원(八院)을 두고 각기 원사(院司)를 두어 신도들이 교리에 맞는 신앙생활을 하게 했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초, ...
2025-07-0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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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종지
보천교
1934년 5월에 차경석이 전문사(典文司)를 통해 발표한 강령과 주의 목적 등을 말한다. 교리는 인의(仁義) 강령은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 등이며 주의는 상생(相生) 목적은 대동(大同)이다. <참고문헌> 『대도지남(大道指南)』(임용순, 보천교중앙협정원·총정원, 1952)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보천교」(이강오 『전북대학교논문집』 제8집, 전북대학교, 1966)
2025-07-0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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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
증산대도갱신연구회
증산대도갱신연구회(甑山大道更新硏究會)를 창립한 박상래(朴相來 1920-1990)는 192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탄생했다. 한때 개태사 김광영 밑에서 수도하다가 증산교를 알아 증산교본부의 이상호ㆍ이정립 밑에 들어가 공부했다. 그러나 이들과 뜻이 맞지 않아 1960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골에 움막을 짓고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1986년에『한민족의 진로인 증산교 좌표』라는 책을 발간 이 책속에서 증산 강일순에 대하여 잘못 이해되고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합리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증산의 가르침인 병겁ㆍ의통 등 불합리한 것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증산사상을 해석하는 역할을 하다가 1990년 사망했다. 참고 ...
2025-07-0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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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대도회
증산계
1955년 3월 증산교단 13개 교단 대표들이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 증산교대법사(증산교본부)에 모여 정부의 종교정책에 따라 연합체를 구성했다. 여기에 참가한 교단은 삼덕교(三德敎)·보화교(普化敎)·선도(仙道:安乃成)·태을교(太乙敎:朴公又)·순천교(順天敎:柳春來)·약방파(藥房派:崔根奉)·미륵계(彌勒契:崔善好)·임무교(壬戊교:金鍾烈)·용화교(龍華敎:徐白一)·순천교(順天敎:朱鍾允)·무을교(戊乙敎)·선도(仙道:如處子)·증산교대법사(甑山敎大法社:李祥昊) 등 이었고, 위원장에 이정립(李正立)이 추대되었다. 강령은 ①새로운 민족종교 건설. ②새로운 국민도덕 확립. ③새로운 민족문화 건설이다. <참고문헌> 『甑山敎槪說』(홍범 ...
2025-10-0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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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단친목회
1970년 동도교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홍범초의 발의로 90여명의 각 증산교 교단 대표들이 보천교에 모여 결성했다. 회장에 박기백, 부회장에 이종호, 배동찬 등이었다. 증산교단친목회 결성 동기는 동도교가 그 조직체나 이념이 순수한 증산교단 전체를 대표하여 건전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뒤 증산교단협회로 명칭을 개칭했다. 1971년 음력 11월에 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선하여 회장에 이시발(李時潑)하고 1972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상생』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2025-10-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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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김사모파
증산교김사모파(甑山敎金師母派)는 김태봉(金泰鳳, ?~1964)이 창립했다. 김태봉과 함께 이 교파를 만들고 주도했던 사람은 김점옥(金點玉)이다. 김점옥의 꿈에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하기 위해 죽음 얼마 전에 맞이했던 세 번째 수부(首婦) 김사모(金師母)가 나타나 증산가에서 원통하게 죽은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봉은 김점옥과 함께 1959년에 김사모의 시체를 발굴하여 자기 집 뒤에 콘크리트로 지은 소옥(小屋)에 넣어놓고 치성을 드렸다. 여기에 김사모의 영감이 있으리라 믿고 모여드는 신자들이 있어 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1964년 김태봉이 죽고 김점옥이 강일순과 김사모의 영체를 석불(石佛)로 ...
2025-10-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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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불교향도회
증산계
용화불교향도회(龍華佛敎香徒道會)는 서준용(徐俊容)이 국내의 미륵불을 신봉하고 당시 미신 또는 사교와 같이 비난을 받은 사람들을 통합하고 공인된 종교 활동을 이끌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서준용은 부여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주지 황태호와 손성한, 이갑술 등과 협의하여 1964년 4월 서울에서 제1차 회합을 하고 같은 해 8월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이 창립한 ‘증산교오동정이파’와 기타 종교단체의 신도를 포함한 300여명을 규합하여 1965년에 ‘용화불교향도회’를 결성하였다. 총장 황태호, 고문 김낙원을 추대하고 총무는 서준용이 맡았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 ...
2025-10-0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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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
증산계(증산교본부, 증산도, 증산법종교, 인도교)
증산교의 신자들이 지켜야할 계명으로 대다수의 증산교파에서 사용한다. “①마음속이지 말라. ②척 짓지 말라. ③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④남 잘되게 하라. ⑤한술 밥의 은혜라도 반드시 갚으라.”이다. 증산교본부 2대 종사인 이정립(李正立)은 ‘이 다섯 가지 계잠으로 일상생활의 규범을 삼아 일심으로 실행하여 성격에 합화(合化)하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안세찬의 증산도에서도 이 오계잠을 그대로 쓰고 있다. 증산법종교에서는 오계명(五戒銘)이라 하여 증산교본부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있다. 인도교의 채경대(蔡慶大)는 오잠이라 하여 불은악(不隱惡)·불피혐(不避嫌)·불숙원(不宿怨)·불식비(不飾非)·불절기(不折氣)를 말하기도 했다. <참 ...
2025-10-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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