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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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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25세 때에는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26세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어 크게 활약하였다. 1905년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었다. 1910년 4월, 국권의 피탈이 확실시되자 애국지사들과 협의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에는 윤세복의 초청으로 서간도 환인현 홍도천에 머물며 동창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이때 국사 교재로 『조선사』를 집필하였다. 1919년 2월에 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

2025-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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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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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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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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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 운동’(new spirituality movement)은 일본의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島薗進)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그는 20세기 후반부터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특정한 의례나 교리 체계 및 수행 방식을 따르지 않고 결합방식이 느슨하며 리더십 또한 불분명하면서도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흐름이 확산되는 현상을 ‘신영성 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후에 ‘신영성 운동’보다는 ‘신영성 운동=문화’ 또는 ‘신영성 문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신영성 운동이 기존의 문화 환경과 긴장관계를 나타내면서 전개되지만, ...

2025-10-0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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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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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신수영은 1878년 경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출가하여 중이 된 뒤 삼정산 유하사(遊夏寺)의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10여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동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1946년 계룡산 신도안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이어 제자봉 밑에 법룡사를 세웠다. 그리고 1948년에는 법룡사 바로 위에 단군전을 짓고 천진전(天眞殿)이라 했다. 그는 미륵불을 주불로 신앙하였는데 가까운 시기에 미륵불이 주도하는 후천용화세계 운수가 개벽된다는 것을 믿었다. 이 용화세계는 유불선(儒佛仙)의 삼도(三道)가 합일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처럼 삼도가 합일되는 ...

2025-10-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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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도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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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1967년 9월 강순이(姜順伊, 1912-?)의 주도로 창교되었다. 강순이는 원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불교 집안과 결혼하여 30여 년간 불교를 신봉하였다고 한다. 남편인 김병모(金 炳模)의 도박과 외도로 가정불화가 일고, 자식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전에서 도덕회(道德會)에 가입한다. 그리고 18년간 충실하게 도덕회 활동을 하다가,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 계룡산에 입산하여 100일 기도를 시작한다. 100일 기도 중에 계룡산 할머니로부터 “나가서 억조창생을 구제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대전 유성 인근에서 4년간 무료로 병을 고쳐주고 서울 신공덕동으로 올라가 7년간 치료활동을 행한다. 그 ...

2025-10-0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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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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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계

산메기는 산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봄이나 가을에 날을 받아 가족, 친족 또는 주민들 단위로 산에 올라가 ‘산’을 대접하고 가정의 편안과 자손 발복을 기원하는 산간신앙 의례이다. 쉰움산은 삼척시 동쪽 15Km 지점의 두타산 북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이다. 태백산과 더불어 무속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산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제단, 돌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쉰움산은 정상에 둥글게 우물처럼 파인 것이 50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가운데 용신당이 있다. 쉰움산은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이상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 있는 은선암에서 망제(望祭)로 올리는 사람도 많다. <참고문헌> 「쉰움산 ...

2025-10-0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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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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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 석종(石鍾) 또는 석고(石鼓)라고도 한다. 1.6미터 크기의 누운 큰 소 형상으로 된 돌로서 작은 돌로 쳐도 쇠 종소리가 난다. 1926년 교인인 송종덕의 현몽에 의하여 발견된 석고(석종)를 교주의 지시로 수운교 도량에 안치하였다. 삼대원이 성취되어 세계 평화가 되는 날 자연이 울린다고 전한다. 현재 수운교 도솔천 경내에 안치되어 있는 이 석고는 ‘석종’이라는 이름으로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1989년 3월 18일) 이 이외에도 경내에는 유사한 모양의 석종이 두 개 더 안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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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성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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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의 삼학 수행에 있어서 ‘계문’과 함께 작업취사 공부의 중요한 방법이 된다. 종교가에서는 ‘하지 말라’는 금기의 가르침이 많은데, 솔성요론은 적극적으로 성품을 발현하여 생활 속에서 활용해 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①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②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 ③사생 중 사람이 된 이상에는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요, ④지식 있는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함으로써 그 배움을 놓지 말 것이요, ⑤주색낭유(酒色浪遊)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요, ⑥한편에 착(着)하지 아니할 것이요, ⑦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

2025-10-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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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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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세계 각 지역에서 새로운 종교들이 발생하였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발생 지역별로 이 신종교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양이나 미국에서 들어온 신종교에는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와 같은 기독교계 신종교가 대표적이다. 또한 뉴에이지와 연관된 하레크리슈나, 초월명상(TM), 그리고 사이언톨로지 등이 서양에서 유입되었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신종교들도 소개되었는데, 서남아시아에서 시작한 바하이교(바하이전국신성회), 중국의 파륜궁, 동방번개파, 일관도 등이 유입되었다. 일본의 신종교들도 많이 소개되었다. 천리교, 일련정종, ...

2025-09-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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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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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의암 손병희는 “후천개벽 시기에 처한 우리는 먼저 각자의 성신(性身)부터 개벽해야 함”을 주장하 여 “만일 자기 성신을 자기가 개벽하지 못하면 포덕 광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하였다. 그는 “성품 이 있고서라야 몸이 있고, 몸이 있고서라야 마음이 있다”고 하여 인간의 본래 성품과 몸이 분리될 수 없 음을 강조하였고, 성품과 몸의 쌍수(雙修)를 주장하 였다. “성품을 주체로 보고 닦는 사람은 성품의 권능 으로써 비고 고요한 경지를 무궁히 하고 그 원소를 확충한 불생불멸을 도라 말하고 몸을 주체로 보고 닦는 사람은 몸의 권능으로써 활발하고 거리낌 없이 현 세계에서 모든 백성을 함양함을 도”라 하였는데, 이 양자 모두를 ...

2025-08-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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