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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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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81년 3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호는 우천(藕泉), 일찍이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0년 시교사(施敎師)가 되었고, 참교(參敎)와 지교(知敎)로 승질(陞秩)되면서 규칙기초위원(規則起草委員)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1914년 상교(尙敎)로 승질되었다. 1915년 대종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북간도 용정으로 이주하였으며, 1916년 총본사 부전리(副典理)로 있으면서 순명한 제1대 교주 나철의 유해 봉장(奉臧)에 조력하는 등 3년간 포교활동 및 교단 일에 종사하였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선포하자 이동녕·이시영·조성환·김동삼·조영진 등 30여 명과 같이 상해로 건너갔으며, 1 ...

2025-10-0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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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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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삼신도, 환중교

단군계 신종교에서는 삼법수행으로 조식법(調息法), 지감법(止感法), 금촉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삼일신고』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삼법수행은 각 교단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①대종교에서 윤세복은 『삼법회통』에서 삼법수행은 감정을 그치고(지감법), 호흡을 고르게 하며(조식법), 부딪힘을 금하는 법(금촉법)이라고 하였다. 이 해석은 이후 삼성궁 등에서도 수행법으로 수용한다. 다만 삼성궁은 조식법을 삼법수행 중 근원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②삼신도의 삼법수행에 있어 지감법은 근본적 관법으로서 원방각(○□△)의 수행법이며 신령함을 공부하는 것이다. 조식법은 용을 완성하는 원방각(○□△)의 수련법이며, ...

2025-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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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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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재유는 1878년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풍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백람(白嵐)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10년 동안 한문사숙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3년 동안 활약하였다. 192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하였고, 북일도시교원(北一道施敎員)과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등을 역임 하였으며,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와 천전건립주비회(天殿建立籌備會)에도 헌신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 때에 일경에 체포 ...

2025-10-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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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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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運度)란 우주자연·천지의 주기적 변화가 음양상승(陰陽相勝)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진급·강급의 도수에 따라 이행되며, 이에 따라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가 변화된다고 보는 관점을 나타내는 말이다. 주로 천지자연의 변화 도수를 운도라 한다. 최제우 사상의 전편을 흐르는 사상적 맥락은 바로 이 운도관념이다. 최제우는 개벽 후 5만년 만에 천도(天道)를 얻게 되었고 이 천도에 기반한 동학(東學)의 운수가 5만년을 가리라했다. 이제 선천의 시운이 다하고 상원갑(上元甲)의 새로운 후천의 오만년 대운이 열린다는 우주론적 변혁의 묘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일부 김항이나 강일순 그리고 대종교의 사상 속에도 운수·운 ...

2025-10-0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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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무도교(하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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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역이 창립한 대종교의 별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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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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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삼성궁에서는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삼화경(三化經)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대종교에서 이 세 경전을 조화경·교화경·치화경이라고 한 것에서 명칭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궁에서는 신앙 실천을 행할 때 삼법수행을 마치고 해맞이 경배를 드리는데 이때 천수 천향 천촉 고천 등의 식순을 마치고 이 경전을 독경하도록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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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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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삼일원은 대종교의 도원(道園)으로서 종문(倧門)의 교리와 수도수행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중추적인 도원이다. 삼일원에는 세 기구를 두는데 수도원(修道院)·선도원(宣道院)·종리원(倧狸院)이 그것이다. 삼일원의 주된 역할은 교리에 의한 신앙생활과 수도정진을 지도하며 종리(倧理)연구 및 선도(宣道)사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며 성직자 양성 및 교리와 종사(倧史)의 연수를 실시한다. 본원에는 원장이 있고 그 밑으로 대덕(大德) 및 선도사(宣道師)가 있으며 준직원(準職員)에 해당하는 원사(園士)를 두기도 한다.

2025-07-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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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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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사상의 근간은 삼일원리로 하나는 셋으로 작용하며 셋은 하나인 근본으로 귀일한다는 즉삼즉일(卽三卽一)의 원리이다. 이 삼일원리를 삼일사상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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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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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철은 1909년 대종교를 중광(重光)하고 1910년 대종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京城)에 설치하고 강우(姜虞)에게 맡도록 하였고 동년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에 설치하고 담당을 서일(徐一)에게 맡겼으며 상해에 서도본사를 설치하고 담당을 신규식과 이동녕에게 맡겼고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에 설치하고 담당을 이상설에게 설치하였다. 이 네 곳 본사를 4도본사라 한다. <참고문헌> 『대종교중광육십년사』(대종교종경종사편찬위원회, 대종교총본사, 1971)

2025-07-0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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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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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단군굴

박효달은 함경남도 신흥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종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 여러 종교를 드나들며 교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집안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신봉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데, 1942년 서울 필동에 있던 자기 집에 박혁거세 영상을 봉안하였다. 1943년에는 박혁거세 영상 옆에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단군신앙을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박효달은 민족의식의 발로로 국조인 단군을 신봉해야겠다는 신념으로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상교(尙敎)급(級)까지 올라갔고 일시적으로 삼일원(三一園)의 대덕(大德)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후 그는 일제가 신사를 만들어 참배를 강요하였던 것에 대해 국조를 모시는 단 ...

2025-07-0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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