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삼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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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1923년에 설치된 중앙집행기관인 총정원(總正院)과 외교기관인 총령원(總領院) 그리고 1931년에 설치된 협의기관인 협정원(協定院) 등을 삼원(三院)이라고 한다. 1927년에 총정원 내에 육사(六司)를 설치하고 육사장(六司長)을 임명하였다. 육사는 문서 일체를 담당하는 전문사(典文司) 포교 일체를 담당하는 포정사(布政司) 예의 일체를 담당하는 전의사(典儀司) 재정 일체를 담당하는 경리사(經理司) 섭외 일체를 담당하는 수호사(修好司) 법도 일체를 담당하는 사도사(司度司) 등을 말한다. 보천교 신파는 구파와는 달리 총령원이 없는 이원육사제(二院六司制)를 채택하고 있다. <참고문헌>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 ...

2025-07-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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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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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강일순은 하늘을 뜯어 고쳤을 뿐만 아니라 땅의 운로를 고쳐 후천선경의 새 틀을 짜는 많은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상제의 권능으로 일기의 조정, 수로의 변경, 산하대운 조절, 산혈공사(山穴公事), 해류조절, 명당공사(明堂公事), 기후조절, 박토조절, 지축조절 등 지개조공사를 하는가 하면 땅에 있는 온갖 신명을 부려 지운공사를 하는데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양지에 저수지와 수구(水溝)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고는 운암강 물줄기를 만경강으로 돌렸다 고도 하고, 세계를 재로 만들지도 모를 변산 같은 큰 불덩어리를 땅에 묻어 버리기도 하며, 말라버린 천하의 수기를 돌려놓기도 하고, 아무리 박전(薄田)이라도 옥토(沃土)가 되게 만들 ...

2025-10-0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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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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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

인도교(人道敎: 초기에는 天人道)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는 창립초기인 1922년경부터 교단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삼계·오잠을 제정 발표했다. 오잠은 ①불은악(不隱惡), ②불피혐(不避嫌), ③불숙원(不宿怨), ④불식비(不飾非), ⑤불절기(不折氣)로 신도들로 하여금 이를 계율로 정하여 조심하게 한 것이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蔡慶大의 人道敎」(김홍철, 『원광』, 1990년 6월호)

2025-10-0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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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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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국한문 혼용의 보천교의 교리 해설 전문 잡지인 『연진(硏眞)』 제1호(1958년)는 보천교연진편찬위원회에서 1958년 11월에 발행하였다. 『연진』 제2호(1959년)는 보천교총정원내연진소에서 1959년 음력 3월에 발행하였다. 『연진』 제3호는 1959년에, 『연진』 제4호는 1960년에, 『연진』 제5호는 1960년에 각각 발간하였다. 연진(硏眞)이란 ‘진리를 연구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연진』 제2호에는 보천교의 사대강령(四大綱領)과 무진훈사(戊辰訓辭), 사무례(四無禮), 집지훈사(執贄訓辭), 이기문답(理氣問答), 보천교연혁사(普天敎沿革史), 상례(喪禮), 보천교교약(普天敎敎約) 등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

2025-10-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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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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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서상근파

증산교서상근파(甑山敎徐相根派)를 창립한 서상근(徐相根 ?-1962)은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보천교의 노동단체인 기산조합장(己産組合長)을 역임했다. 힘이 장사로서 차경석(車京石)을 호위하던 사람인데 차경석과 의견이 맞지 않아 보천교를 떠나서 입산수도 끝에 수운 최제우의 신명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비밀리에 증산교를 포교하였다. 8.15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위에 집을 짓고 산전을 이루어 생활했는데 그를 도인이라 하여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을 세칭 증산교서상근파라고 했다. 1962년 사망했다. 뒤를 이은 김향님이 ‘증산성지동곡약방’이라 개명했다. 그의 신앙의 대상은 상제로서의 증산 강일순이었다. ...

2025-07-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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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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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호동리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칭도인인 증산교인을 만나 도를 들은 후 그 뒤 혼자 5년간 도 공부를 했다. 22세 때 객지로 나와 갖은 고생을 하며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에 신(神)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4월 5일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 ...

2025-10-0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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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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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1930년대에 보천교의 『교조약사(敎祖略史)』나 『보천교연혁사(普天敎沿革史)』 (상·하·속) 등을 편술했던 보천교의 간부이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보천교와 한국의 신종교』(김재영,신아출판사, 2010)

2025-10-0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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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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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교

미륵교(彌勒敎)를 창시한 유동윤(柳東允, 1899-?, 일명 철수·양숙)은 1899년 11월 13일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탄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증산교에 입도하여 신앙생활을 했다. 한때 만주에 가서 방랑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전주 기린봉 밑에서 6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였고 산과강으로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였다. 또 증산교파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는 특히 병이 들어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라북도 남원에 살고 있던 강춘산이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강춘산은 과부였는데 기도생활을 하던 중 1955년 1월 2일 미시에 상제께서 천명이 내렸다. ‘ ...

2025-10-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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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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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누군가에 못 당할 일을 당하여 분통이 터지고 한을 품어 맺힌 것을 말한다. 원(怨)은 이것이 맺혔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앙갚음하려는 성향이라면, 한(恨)은 스스로 체념하고 자기 내면에서 삭혀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寃)은 이 양자를 겸한 것으로 보인다. 원은 자기의 욕구나 의지의 좌절에 따른 삶의 파국과 그에 따른 내면의 상처이다. 우리 민족은 특히 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계속되는 내우외한으로 인한 불안과 위축의 역사, 남녀·적서·반상 등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로 인해 많은 원이 쌓인 민족이다. 그래서 민간신앙, 속담·설화·민요·판소리 등에는 이 원이 주제가 된 내용이 많고, 문학작품 역시 원한이 주제 ...

2025-10-0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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