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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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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교

이영의는 오태환 등과 함께 1926년 대천교를 창립하였으며, 교주가 없는 대천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성사(제1대)가 되어 활동하였다. 다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관료로서 단군교에서 활동하였던 이영의라는 인물과 동일인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8. 1. 4.)

2025-10-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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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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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이슬성신’은 기독교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을 근거로 전도관의 박태선이 주장하는 육신영생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적 모티브이다. 6.25 전쟁 중 박태선은 피가 바뀌는 체험을 하였는데 이것을 이슬 혹은 ‘이슬성신’을 체험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전도관에서 ‘이슬성신’은 구원과 영생의 주체이며 육신영생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체험으로 믿어지고 있다. 박태선 자신을 ‘이슬성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전도관 초기 이슬성신이 사진으로도 촬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슬성신’은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의 승리제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봉되고 있다.

2025-10-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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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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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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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정리제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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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사람이 병이 나는 이유가 상승하는 기운과 하강하는 기운이 조화롭지 못해서 그런 것처럼 세상이 병이 드는 이치도 마찬가지임을 밝혀놓은 경전이다. 즉, 하늘[天]은 상승하는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행(五行)으로 말하면 목(木)과 화(火)가 이에 해당한다. 땅[地]은 하강하는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행으로 말하면 금(金)과 수(水)가 이에 해당한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이 상승하는 기운과 하강하는 기운이 조화로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병을 다스리는 방법도 하강하는 기운은 위에 있고, 상승하는 기운은 아래에 있어야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천상일기가 인간 세상에 하강하는 세상이 평화롭고 복된 세상임을 말하고 있다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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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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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주송의 수련에 의해 종교적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강조한 일부계 분파의 신종교.

2025-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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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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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총명으로 5세에는 한시(漢詩)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13세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독하여 철리(哲理)에 밝았다. 23세에는 8개군 합동 유림강회에서 『주역』을 강론하여 유주역(柳周易)이라는 별칭까지 받았다. 젊어서는 민족광복에 뜻을 두어 독립지사들과 모임을 갖고 상해에 건너가려하였으나 부친의 열반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3세부터 영광보통학교 교원으로 13년간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일체 자유 활동을 제지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와 방해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교원직을 사임했다. 이후 몇 년간을 울분에 휩싸여 좌절하며 지내다가 1932년 10 ...

2025-10-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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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회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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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 입각한 예교(禮敎)국가로 출범한 조선 초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으며 서로 회통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己和)가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이 대표적인 저술인데, 이는 정도전 등 유학자들의 배불론(排佛論)에 대하여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불교를 대질하여 자문자답식으로 논술한 책이다. 유교와 불교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교법이므로 공존함이 마땅하니 서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펼치고 있다. 이후 배불론과 불교옹호론 및 절충론 등의 논쟁이 이어졌으나,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유불회통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5-10-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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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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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

→ 손정우 참조.

2025-10-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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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도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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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도

1931년 별도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포교활동을 하던 김선군은 홍우창(洪祐彰)의 원융도(圓融道)에 합류한다. 그리고 당시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新堂里) 139에 당우를 건립하여 ‘원융도별원(圓融道別院)’이라고 하고 이곳에 머문다. 그러나 1933년 관장(管長)인 홍우창이 별원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듬해 김선군은 포천군(抱川郡) 소흘면(蘇屹面) 송우리(松隅里) 443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이주한다. 1934년 당시 김선군의 별원에 다소의 신도가 있을 뿐, 홍우창의 본원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융도의 실질적인 본부의 역할을 이곳 별원이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 원융도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 ...

2025-10-0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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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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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순은 1901년부터 1909년까지 평소에 ‘공사(公事)를 본다’는 말을 하면서 불가사의한 언행을 남겼다. 조화(造化)정부의 천지신명과 함께 새 역사의 이정표를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이름으로 다시 설정하였다고 선포한다. 이 천지공사는 세운(世運)과 도운(道運)으로 대별된다. 천지인의 삼계는 천지도수(天地度數) 또는 운도(運度)에 따라 운행되며, 이 운도는 과거의 원혼을 해원하고, 음양상수(陰陽象數)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천지간의 변화 원리라고 설명한다. 김홍철은 천지공사에 나타난 사상과 이념을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만고원신과 만고역신들의 맺힌 원혼(冤魂)들의 기운을 해소하려는 해원이념, 모든 신명들을 ...

2025-10-0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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