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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수행십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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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체불교

대일체불교에서 수행자가 도를 이루기 위해 앉지 않아야 할 10가지 생각으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모든 만상(萬像)이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늘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②아무 것도 사랑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③아무것도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④사람은 죄가 아주 많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⑤먹는 것을 싫어하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⑥세간(世間)에는 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⑦모든 것이 필경에는 멸(滅)한다는 생각을 잊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며, ⑧이 몸도 마지막에는 죽는다는 생각을 잊지 ...

2025-10-0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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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붕불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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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일붕선교종

본 회관은 1987년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창종자 서경보의 주도로 건립된 것으로, 종로구 세검정의 기존 일붕선원(一鵬禪院)을 중축한 것이다. 대지 150평 건평 250평의 4층 규모로, 세계불교법왕청준비위원회 사무실, UN전권대사 사무처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매일경제신문》(1987.07.15)

2025-10-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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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살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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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교

서백일(徐白一)이 창립한 용화교(龍華敎)의 정월초에 진행되는 정기의례.

2025-10-0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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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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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단기간에 심리적인 안정과 정신적인 각성을 성취하려는 종교현상이다. 전통 종교의 수행과 명상의 의례에는 종단의 규율을 준수하면서 실천된다. 이에 비해 개인이 선택해서 참여하는 상품화된 명상 혹은 수련 프로그램에서는 종교적 신념과 규율의 부담을 지니지 않는 소비문화의 성격을 띤다. 또한 즉각적이고 단기간의 심리적 안정과 영적 각성을 성취하려는 점에서 인스턴트 해탈은 종교적 금욕과 규율에 바탕을 둔 전통 종교의 수행 혹은 명상과는 다르다. 인스턴트 해탈을 추구하는 프로그램들은 종교보다는 ‘영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 혹은 명상 수련센터는 영성의 상품화가 확산되면서 기업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2025-10-0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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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광명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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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순(鄭橈橓)은 1947년 충남 대덕군 산내면 호동에 ‘단군시대연역서호동학원(檀君時代演繹序虎洞學院)’를 설립하고 ‘인류광명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으며, 또한 충북 옥천의 옥천학원, 유성의 성동학원, 완주의 미산학원, 전주의 건산학원 등 각지에 광명생활강습소를 설치하고 강사를 파견하여 인류광명화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인류광명화운동원을 양성하기 위해 「물심인화고등학관(物心人和高等學館)」을 설립했고, 학관의 모든 학생들에게 ‘물심인화삼대서원(物心人和三大誓願)’을 실천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정요순의 광명도」(김홍철, 『원광』, 1990년 1월호)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 ...

2025-10-0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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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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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체불교

본 경전은 대일체불교에서 인생의 현재시점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1997년 3월 유법사에서 발행되었다. <참고문헌> 대일체불교 유법사 홈페이지(http://www.daeilche.or.kr/)

2025-10-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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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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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단군제단

한말 역학자(易學者)이며, 일명 달(達), 호는 야산(也山)이다. 이후영은 새로운 역리(易理)를 내세워 김일부(金一夫)에 비견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생활을 지배할 최고의 역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한민족은 국조 단군을 신봉하여야 보본(報本)의 의(義)와 민족의 도의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1951년 자신의 주거지인 부여군 은산면 옥가리에 소규모의 제단을 설치하고 개천절에 제향을 올리다가 1958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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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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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각교

이호필은 일제강점기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高陽郡崇仁面回基里)소재 연화사(蓮花寺)의 승려였다. 그는 연화사에서 8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919년 2월 친구인 이원승(李源承)과 협력하여 영각교(靈覺敎) 창립하는데, 교주로는 스승이었던 윤갑병(尹甲炳)을 추대한다. → 영각교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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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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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령진도전

이창순은 191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예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생활했다. 그는 1974년부터 자기가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면목 6동에 있던 서예교실 한쪽 벽에 정도령의 액자를 걸어놓고 정도령진도전이란 이름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정도를 잃으면 암흑이고 정도를 얻으면 광명의 세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우주는 상생의 도로서 구성되어있고 그 도에서 만유가 생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주만물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이재생존(利在生存), 자업자득(自業自得), 동업창조(同業創造)라고 가르쳤다.

2025-10-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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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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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진구는 188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위당(韋堂)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8년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항일투쟁 중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해외로 망명하였다. 1914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참교(參敎)가 되었다. 같은 해 신탁통치반대위원회의 한성지부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7년에는 지교(知敎)로 승질되어 경의원 참의(參議)로 임명되었고, 1950년에는 상교(尙敎)로 승질되어 남일도전무(南一道典務)의 직책을 맡았으며, 동년 11월 서일도순교원(西一道巡敎員)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대종교선무반(大倧敎宣撫斑)의 평양지부장을 역임하 ...

2025-10-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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