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자생신종교
기타
자생신종교는 1930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의 유사종교』에서는 60여개, 1965년 장병길 조사에서는 121개, 1968년 내무부 조사에서는 67개, 1970년 문화공보부 조사에서는 58개, 1970년 이강오 조사에서는 160개, 1974년 문화공보부 조사에서는 183개, 1985년 한국종교학회 조사에서는 77개, 1988년 이 경우 조사에서는 230개로 나타나는 등 그 수효를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현재 자생신종교의 교단은 이칭·별칭을 포함하여 약 381개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11가지 계통으로 구분하여 그 성격과 계통의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각세도계는 이선평이 창립한 각세도가 분파된 것으로, 귀임도, ...
2025-10-09 15:00
125
이정립
증산교본부
이정립(李正立, 1895~1968)의 호는 남주(南舟)이다. 1895년 2월 19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출생했다. 목포 영흥소·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해남보통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4년 선도교(仙道敎)에 입교한 후, 일본에 건너가 1915년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 『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 《시대일보》주필을 맡기로 하였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형 이상호와 함께 보천교 개혁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보천교를 탈퇴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중국 ...
2025-10-08 21:57
122
동학계신종교
동학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립되었다. 이후 최시형(崔時亨)과 손병희(孫秉熙)로 도통이 전수되면서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동학계신종교는 1895년 동학농민혁명이 진압된 후 최시형은 처형되고 손병희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귀국하여 동학교도를 다시 규합하는 과정에서 천도교의 종교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손병희와 정치운동을 강조하는 이용구의 분열에서 본격화 한다. 1906년 이용구(李容九)는 천도교의 정당색채를 경계하는 손병희와 결별하여 시천교(侍天敎)를 창립한다. 이용구는 동학의 장로 김연국(金演局)을 맞이하여 교세를 굳건히 하면서도 정계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용구 사망 후 1913년 김 ...
2025-07-07 17:13
122
천지도수
증산계
도수(度數)란 일반적으로 거듭되는 회수, 또는 온도 각도 등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운도의 법수를 의미한다. 천지가 한번 크게 바뀌는 것. 성주괴공(成住壞空)이 한번 이루어지는 것.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크게 한번 바뀌는 것이다. 이 도수의 변화는 자연의 진강급(進降級)의 원리와 음양상승(陰陽相勝)의 이치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화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증산 강일순은 상제의 권능과 힘으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선후천의 도수(度數)를 조정하여 낡은 선천을 마감하고 새로운 후천선경이 곧 돌아오게 했다고 한다. ‘선천에는 천지도수와 음양이 고르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천지도수를 ...
2025-10-10 22:58
118
이상호
전라남도 해남
이상호(李祥昊, 1888-1967)의 호는 청음(靑陰)이다. 1888년 음력 2월 27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해남 미산중학을 마친 뒤 중국 상해·북경 등지에서 3년간 외유하다가 1915년에 귀국하여 증산교를 알게 되었다. 이때는 고부인(高夫人: 高判禮)이 차경석(車京石)의 도움을 받아 태을교(太乙敎)를 세운 얼마 뒤였다. 1919년 차경석이 보천교(普天敎)의 60방주(六十方主)를 조직할 때 중앙 8교령 중의 하나인 서방주(西方主)에 선임되었으며 동생 이정립(李正立)과 함께 《시대일보》를 인수 경영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한 때 보천교 총령원장까지 피임되었으나 차경석과 ...
2025-10-08 21:09
114
고판례
선도교
일찍이 결혼했으나 과부가 된 그녀는 1907년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을 만나 수부로서 그와 혼인하게 된다. 강일순은 고부인에게 천지대업을 맡기는 등 신임이 두터웠다. 강일순 사망 후 선도교를 창립했으나 차경석에게 밀려나 김제군 조종골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다 사망했다. 그의 신통력은 강일순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생애 및 활동 : 고판례(高判禮 1880-1935)는 고부인(高夫人)ㆍ고수부(高首婦)라고도 불렀다. 1880년 3월 26일 전라도 담양군 무면 성도리에서 부친 고덕삼(高德三)과 모친 박씨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을 믿었고 정읍군 입압면 대흥리에 이사하여 신씨(申氏)집에 출가하였으나 2 ...
2025-05-24 19:00
106
이치복
제화교
제화교(濟化敎)를 창립한 이치복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에서 부친 이석기(李碩璣)와 모친 임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강일순의 종도가 되어 강일순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할 때 참여하여 『대순전경』 등 증산교의 여러 경에 수차례나 그 이름이 등장된다. 이치복이 강일순을 처음 만났을 때 이름이 치화(致和)라고 하자 화(和)는 화(禍)와 같은 음이라 사람은 복이 있어야 하나니 치화(致和)를 치복(致福)으로 하라고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강일순이 사망한 후 차경석의 보천교(普天敎)에 참여하여 교단건설에 협력했으나 의견이 맞지 않아 거기서 물러나 1916년 김제군 금산면 원평에서 제화교라는 교파를 따로 세워 포교했 ...
2025-10-08 22:21
101
신종교실태조사
신종교학
신종교에 대한 실태조사는 대체로 신종교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한다거나 해당사회의 종교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파악하거나 국가의 종교 정책을 수행을 위한 자료를 확보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대부분 실태조사는 신종교의 교조와 연역, 교리와 의식, 교단 조직, 사회활동 등에 관한 실제의 상태나 사정, 운영 따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신종교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신종교단체들은 자신의 실상과 자료를 사회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신종교 실태조사가 쉽지 않은 편이며, 조사의 성공은 신종교 단체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신종교 실태조사를 순 ...
2025-10-06 23:47
94
시국대동단
보천교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은 1924년 말에 직업적 친일분자인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의 채기두 일파와 보천교의 임경호, 문정삼 등이 설립하였다. 시국대동단에서 ‘대동’은 보천교의 계명(誡命)인 ‘대동친목(大同親睦)’에서 딴 것이며 ‘시국’은 황석산 고천제에서 고천한 ‘시국(時國)’의 음을 딴 것이다. 1925년 1월 6일에 취지 강령을 선포하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보천교의 이념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보천교 박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925년 6월에 차경석은 임경호를 질책함과 아울러 시국대동단을 전격 해체하였다. “대동양을 한 가족과 같이함으로써 인종 사이의 전쟁 참살을 피하고 서세의 침해를 방 ...
2025-10-03 20:14
92
수부
증산계
1907년 12월에 강일순이 차경석에게 수부(首婦)를 요구하였다. 이에 차경석은 자신의 이종사촌 동생인 미망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강일순에게 추천하였다. 정읍 차경석의 집에 머문 강일순은 1908년에 고판례를 천지공사에 끌어들였다. 드러누운 강일순의 배에 올라 탄 고판례에게 칼로 자신을 겨누게 하는 음양공사를 행하였다. 선천시대에는 남성의 시대였다면 후천시대에는 더 이상 남성의 시대가 아니라는 상징적 행위를 당시에 고판례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강일순은 고판례를 수부라 하고〔수부택정〕 그녀의 처소 역시 수부소(首婦所)라 하였다. 더불어 강일순은 천지대업(天地大業)을 고판례에게 맡겼다고 한다. 강일순이 ...
2025-10-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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