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2건
단
단학(丹學) 대종교
선도인 봉우 권태훈(權泰勳1900~1994)이 구술한 것을 바탕으로 작가 김정빈 씨가 1984년에 정리하여 발간한 소설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 최대 화제작의 하나였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한국의 역사 선도(仙道) 권태훈의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선도에 대한 서술의 비중이 제일 크다. 이 소설은 우리 고대사와 선도수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였으며 민족적 자부심 고취와 함께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80년대부터 기수련 열풍이 불고 오늘날 단전호흡이 자연 건강법으로 각광받으며 200만의 기수련 인구가 형성된 것은 이 소설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한편 소설 ‘단’의 실제 주인 ...
2025-07-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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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1923년 11월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사망(조천:朝天)한 직후,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1924년 1월에 영안현 남관(寧安縣 南關)에서 제3대 도사교로 취임하지만 1925년 6월에 한인(韓人) 취체(取締·단속)에 관한 조약인 삼시조약(三矢條約, 일명 미쓰야협약)이 체결되어 대종교는 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길림성장 겸 독군(督軍)인 장작림(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삼시조약에는 한인독립운동가의 인계와 보상금에 관한 사항 외에 부대조항에 대종교의 포교 금지 또는 해산에 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1928년 1월에 총본사 ...
2025-10-09 00:28
47
신리대전
대종교
대종교 제1대 교주 나철이 『삼일신고』의 신훈편(神訓編)에 대해 따로 해석을 한 것이 『신리대전』이다. 모두 4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216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나철 사후에 서일이 한문으로 된 주를 달았고, 1923년 제2대 교주인 김교헌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후 제3대 교주 윤세복이 한글로 번역하여 ‘한얼리치’라는 이름으로 『한검바른길』이라는 책에 포함시켜 1949년 발행하였다. 각 장의 구성은 신위(神位)·신도(神道)·신인(神人)·신교(神敎)로 되어 있다. 신위는 한인(桓因)·한웅(桓雄)·한검(桓儉)의 삼위(三位)로 각각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의 자리를 말하며, 이 세 자리는 유일무이한 하느님 한 ...
2025-10-03 22:54
47
보천교운동
보천교
1910년대에 강일순과 고판례의 기행이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차경석이 조직하였다. 이들을 세간에서는 선도교(仙道敎) 또는 태을교(太乙敎)라 하였다. 비밀리에 모여 주송수련에 진력하던 선도교를 예의주시하던 일제가 1914년에 차경석을 대사상(大思想)을 갖고 있다는 혐의로 여러 차례 체포 구금하였다. 그러나 차경석은 1916년에 전국의 교인을 24방주제로 조직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때부터 지상선경 건설을 위한 주송수련이 본격 시작되었다. 일제 헌병대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는 차경석의 외처유람(外處遊覽)도 이때 시작되었다. 선도교의 교세가 급속히 확산되던 1918년 가을에 제주도 중문 일대에서 선도교 조직과 불교계 승려들이 항일무장 ...
2025-07-09 02:15
47
단군전
단군계
문헌상으로는 조선 세종 때 평양에 단군 사당을 지어 동명왕(東明王)과 함께 제사를 지냈고 그 뒤 이 사당을 수리하여 향사를 계속했다는 기록과 구월산 삼성사에 위토(位土)를 두어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1913년에 계룡산에 이진택(李鎭澤)이 세운 작산단군전(作山檀君殿) 이민걸(李敏杰)이 충남 서산에 세운 아촌단군전(芽村檀君殿)이 가장 오래된 단군전에 속한다. 이진택은 구월산·지리산·계룡산 등지에서 기도수련을 하고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의 단군교 창립을 보자 1913년에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을 얻어 자택에 단군전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
2025-07-0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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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민족주의
신종교학
단군민족주의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 속에 존재해오면서 한국사를 민족 ․ 자주 ․ 통일 ․ 민주 ․ 정의 ․ 복지의 방향으로 진전시켜온 동력의 하나로 기능해 왔었다. 특히 한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시키고자 한 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단군민족주의는 그 기여도가 크다 하겠다. 단군민족주의는 전근대시대를 통해서는 분열됐던 삼국-삼한의식을 단일의 역사의식 밑에 통합하는 기제로 작동했었다. 또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그 기능을 다하였다. 예컨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기 단군은 다시 민족의 구심점으로 등장하였고 구한말에는 민족성원 전체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통합하려했던 민족적 대가족론의 근거가 되었으며 삼일운동 때는 종교 ...
2025-07-01 22:31
47
영가무도교
김항은 생존 당시 많은 제자를 두었는데 대표적으로 40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이후 ‘대종교’를 창립하고 김항을 신격화하면서 윷판이론을 전개하며 포교하였는데, 교세가 확장되면서 다른 제자들과 교통을 둘러싼 분란이 일어나 교단이 분열된다. 이때 이희용도 자신을 따르는 제자 및 신도들을 모아 분파하여 독립적으로 교단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 따로 교단의 명칭을 내세운 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당시 이 교단을 다른 일부계 교단과 더불어 통칭 영가무도교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희용이 사망하게 되자 교단은 유야무야가 되었으며, 사실상 해체되고 ...
2025-10-07 16:59
45
삼일원리
대종교
삼일(三一) 관계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 또는 八理訓)』, 『신사기(神事記)』, 『회삼경(會三經)』, 『삼법회통(三法會通)』, 『신리대전(神理大全)』 등 대종교 경전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원리이다. 구체적으로, 조화경에 해당하는 『천부경』에서는 일(一)에서 삼(三)으로, 삼(三)에서 일(一)로 가는 관계로 ‘조화’를 설명하고 있다. 교화경에 해당하는 『삼일신고』의 ‘삼일신고서(三一神誥序)’에는 한배검이 큰 덕(大德)·큰 슬기(大慧)·큰 힘(大力) 세 가지를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다는 내용, ‘어제삼일신고찬(御製三一誥贊)’에는 삼일의 진리를 닦아 가달을 돌이켜 참에 이른다(卽三 ...
2025-07-12 00:28
45
천일교
본교는 이필례가 1944년 김제 만경에서 창립하였다.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그의 10대 제자 중 하상역이 제2대 교주가 되었으나, 김항을 상제로 모시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윷판원리’로 정역을 해석하는 등 다른 제자들과 대립을 일으키게 되어, 따로 분립하여 ‘대종교’를 창립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김영곤은 하상역의 대종교 창립에 동참하여 함께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곧 대종교에서 독립하여 하상역의 대종교와 대결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인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으며, 포교망을 확장하는 등 교세를 키워 교단의 명칭을 ‘중앙대종교’로 정하였다. 1950년 ...
2025-10-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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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립
커발한개천각
이유립은 1907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부친 관집과 모친 태인 백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를 불렀으며, 이기(李沂)가 창도한 단학회에서 주관하는 배달의숙(倍達義孰)에 입학하여 계연수(桂延壽)·최시흥(崔時興)·오동진(吳東振) 등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조선독립소년단의 단장이 되어 이름을 채영(采英)으로 바꾸었다. 이후 의민사(義民社)·천마산대(天摩山隊) 등 항일단체의 소년통신원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1924년 삭주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해 1927년에 졸업하였고, 한동안 만주에 머물다가 193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이기의 신교육종지를 실천하기 위해 삼육사(三育社 ...
2025-10-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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