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2건
정심교
강일은 정심교를 창립하여 부여군 중화면 만지리에 본부를 두고 포교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고 한다. 본교는 유불선 삼교합일의 대도를 표방하여 신앙대상은 미륵불과 단군과 신명이다. 본교는 단군신명의 계시를 받으면서 주송하는 도통과 치병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교의 경전은 강일이 단군신명의 계시를 받아 저술 하였다고 하는 『천국지로표(天國指路票)』와 『천국혼(天國魂)』 등이다. 정심교의 대를 이은 조일광(曺一光)은 1961년 대종교인 강용구를 만나 신앙을 대종교로 돌려 본부에 대종교지선시교당(大倧敎智善施敎堂)이라는 간판을 걸고 부여지역의 전무(典務)가 되었다. 그래서 본부에는 단군영상을 봉안하는 천진전(天眞殿)을 건립하게 ...
2025-10-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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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
대종교
박달나무로 만들었고 불교의 염주나 가톨릭의 묵주와 같은 기능을 한다. 366개로 된 대단주(大檀珠) 216개로 된 중단주 72개로 된 소단주가 있으며 36개와 12개로 된 단주도 있다. 이와 같이 단주를 사용하는 것은 대종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에 “교인들은 반드시 신고(神誥)를 읽되 먼저 정한 방을 잡아서 진리도(眞理圖)를 벽에 걸고 세수하여 몸을 깨끗이 하며 (중략) 366개의 큰 단주를 가져서 한 마음으로 읽되 본문 366말의 참 이치를 위아래로 통하여 단주로 더불어 합치되도록 하라”는 내용에 근거한다. 단주의 구슬 수는 『삼일신고』의 진리훈과 이를 풀이한 『회삼경』 속의 삼회편(三會篇)에 근거하고 ...
2025-07-0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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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
계연수는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며 본관은 수안(遂安) 자는 인경(仁卿) 호는 운초(雲樵)·일시당(一始堂)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종 때의 실학사상가이자 민중계몽운동가였던 이기(李沂)의 문인으로 이기가 ‘단학회’의 창립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한 뒤 그 뜻을 이어받아 남만주 관순현 홍석립자에 본부를 두고 단학회의 2대 회장이 되어 『단학회보』를 8집까지 간행하였다. 이후 그는 홍범도(洪範圖)·오동진(吳東振) 등의 지원을 받아 1911년 『환단고기』 30권을 편찬하였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한데 묶어서 편찬한 것으로 단군조선을 대통일 민족국가로 서술하 ...
2025-05-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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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영성
현대사회에서 ‘영성’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맥락에서 진전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일반적으로 영성을 물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물질에도 영성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만 한정할 수 없다. 또한 영성을 종교보다 덜 제도화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성을 종교의 핵심이나 최고의 이상으로 간주하여 신비주의적 경험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성은 제도종교의 독점적 산물이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현상으로만 한정할 수도 없다. 한국적 영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성들이 통합되고 실용적인 성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2025-10-1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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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실기
대종교
신인(神人) 단군의 실제 기록이라는 뜻의 본서는, 김교헌이 단군에 대한 사적과 고신도사상에 대한 문헌을 찾아 우리 민족의 뿌리와 대종교의 역사적 연원을 밝힌 책이다. 1914년 2월 제1대 교주 나철 당대에 토를 단 한문체 단행본으로 발행되었고, 1923년 6월에 재판되었다. 본문은 총 20개 조항 103면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삼신일체사상에 바탕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①역사적 계보(系譜), ②삼신(三神)의 교화, ③신교(神敎) 사상의 자취, ④우리나라의 고대 강역(疆域), ⑤고대 사료가 망실된 연유 등 5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저술은 당시 신흥무관학교 등 만주 일대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독립운동가와 ...
2025-10-0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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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령전
대종교
숭령전(崇靈殿)은 현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 평양학생소년궁전 옆(옥류관 인근)에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에 동명성제사(東明聖帝祠), 조선조에서 단군묘(檀君廟)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영조 원년(1725)에 숭령전이라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른다. 고려 시대에는 때때로 왕의 특사가 파견되어 제사를 지냈으며,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현지 관원이 제사를 지냈는데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가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조선조 세종 11년에 처음으로 정전 4칸과 동서행랑 각 2칸을 지어 봄·가을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 지냈으며, 세조 원년 7월에 위판을 바꾸어 ‘조선시조단군지위(朝鮮始祖檀君之位)’라 했고, 세조 5년 10월에 세자를 ...
2025-10-0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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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대종교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에서 부친 용호(用浩)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 그는 동네 훈장을 하던 부친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880년 실학과 성리학을 공부했다. 1885년 모친의 간청에 따라 향시에 응시해서 특선으로 뽑혔고 1888년부터 6년간 능참봉을 지냈다.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으며 그 해 11월에 만민공동회에서 문교부장급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 『황성신문』이 창간된 후 장지연과 함께 주필 논설기자가 되었다. 1900년부터는 경학원 강사와 한성사범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자 양기탁의 추천으로 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1905년 을사조 ...
2025-07-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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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정훈모)
대종교에서는 근대기 이후 단군신앙이 백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백봉이 백전에게 전했다고 하는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및 『신사기』 등을 나철이 받아서 단군교를 중광하였다고 보고 있다. 정훈모는 나철이 1908년에 단군교 신자가 될 때부터 함께 하였고 1909년 단군교를 중광하고 대종교로 개명할 때에도 중요 간부로 함께하였다. 그러나 나철이 대종교로 개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당시 대종교의 북부지사교(北部支司敎)의 명을 무시한 채 단군교의 교명을 고수할 것을 내세워 1910년 8월 15일 이유성(李裕聲)·유탁(兪鐸)·서창보(徐彰輔) 등과 더불어 대종교에서 이탈한다. 이후 그는 단군교라는 이름으로 도 ...
2025-07-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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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협의회
1965년 다종교 상황에서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대화와 화합이 필요하다는 인식 위에 6개 종단의 협의기구로 ‘한국종교연구협회’가 결성되었다. 1966년에 ‘한국종교인협회’로, 1972년에 ‘한국종교인협의회’로 개칭하였으며, 198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초기에는 한국종교인들의 공통과제를 검토, 협의하여 실천하기 위해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의 관련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협력과 상호이해를 도모하였으나, 1999년에 천주교가 탈퇴하고 개신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2015년 현재 회장은 유경석(세계평화가정연합)이며 참여 종단은 금강대도, 대종교, 성균관, 원불교, 한국불교태고 ...
2025-10-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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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종교의례
종교에서 교리와 사상이 이념적 체계를 의미한다면, 의례는 그것을 시간의 절차에 따라 공간에서 펼쳐지는 행위이다. 종교의례는 참여자로 하여금 인식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성·속(聖·俗)이 역동적인 상호 관계 맺도록 하는 행위 양식이며, 종교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의 현재성과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신종교의례는 그 의미와 종류가 다양한데, 신앙과 수행이 하나의 의례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성 때문에 의례의 범주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의례의 종류로는 크게 신앙의례·수행의례·통과의례·기념의례가 있고 이외에도 복을 기원하는 기복의례와 병을 치유하는 치병의례 등이 있다. 먼저, 신앙의례는 절대적 존재 ...
2025-10-1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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