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신종교연합운동
대표적인 신종교연합으로는 증산계 여러 종파들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위해 만든 증산종단연합회(甑山宗團聯合會)와 민족종교들 간의 유대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성된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들 수 있다. 먼저, 증산계 초종파 운동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이상호(李祥昊) 등이 발의하여 증산계 여러 종파들의 상호 협력을 위해 8개 파로 구성된 팔파연합회(八派聯合會)로 시작되었다. 이후 1949년에 유동열(柳東悅)의 주도하에 17개 교파로 구성된 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이 결성된 이래, 1955년에 13개 교파로 된 증산대도회(甑山大道會)가, 1960년에 동학계까지 참여한 민족신앙총연맹(民族信仰總聯盟)이, 1961년에 동학 ...
2025-10-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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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신앙
선도계
공자가 유교의 시조로서 닫힌 체계로 한국에 받아들여진 반면 관우는 도교의 신으로서 개방적인 신격을 띠고 한국에 수용되었다. 이는 한국에서 공자와 관우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데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중국의 관제신앙이 도교화된 체계 속에서 관우를 신격으로 받들어 숭앙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의 관제신앙은 독립적 체계와 포괄적 체계로 이원화(二元化) 되어 있다. 독립적 체계는 관우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반면 포괄적 체계는 여러 신을 모시면서 그 안에 관우를 포함해 숭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관제신앙이 도입된 시기는 정유재란(1597) 시기이며 이는 타의적으로 강요된 신앙이었기에 위정자들조차 신봉하지 않았었다. 그 후 국 ...
2025-05-2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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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고사모파
선도교(태을교)를 세운 고판례(高判禮)가 이상호의 동화교와 합작하여 약 2년간 용화동에 머물다가 1933년 겨울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면 오성산에 집을 짓고 이주하여 동화교회수양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나 고판례가 1935년에 사망하자 그를 추종하던 고민환·이용기·백윤화가 제각기 교통을 받았다며 각자 다른 교당을 짓고 교법도 달리 포교하였는데 이들 교파를 증산교고사모파라고 한다. 고민환(高旻煥, 1887~1966)은 500석 지기의 부호로 군산 은적사에서 승려생활을 했었다. 사욕이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고판례를 만나 성포(聖圃)라는 호를 받고, 고부인은 그에게 도장의 모든 일을 맡겼다. 훗날 강일순과 고판 ...
2025-10-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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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보천교
이중성은 1897년 음력 4월 29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에서 부친 이치삼(李致三)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14년에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20세인 1916년부터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중성은 주로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임무를 맡았는데, 이 때문에 그가 보천교와 접촉하였다고 한다. 1928년 봄에 차경석을 만난 이중성은 보천교의 외무를 주관하는 수호사장(修好司長)을 맡기도 하였으나, 보천교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도 생활을 하였다. 1946년에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편술을 마친 그는 1958년 11월에 타계하였다. 『천지개벽경』은 1992년 ...
2025-10-0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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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신앙체계
증산계
증산교본부ㆍ증산법종교ㆍ삼덕교 등 증산계 10여개 교파에서 단군-수운-증산을 하나로 이어 계통을 대는 신앙체계를 형성 하고 있다. 원래 증산교의 기본사상은 증산이 하늘에서 내려온 상제(上帝)라 본다. 그러기 때문에 증산의 절대 유일 신앙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8.15 해방 후 우리 국조 단군을 신앙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고 또『대순전경』등에 ‘이 시대는 원시반본(原始返本) 하는 시대라 혈통 줄이 바로 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는 가르침에 따라 우리 시조신과의 연맥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국조신인 단군이 천부(天符)와 인삼개(印三個)로 홍익인간과 제세이화 ...
2025-07-0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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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교
천도교 청년회 간부로 있던 이찬영(李贊榮)이 해방 후에 민족신앙 통일운동에 뜻을 두고 창건사(創建社)·동학연합회(東學聯合會)·동학영우회(東學靈友會)·동학회(東學會) 등을 조직하여 동학교인의 결속을 도모한바 있었다. 4.19혁명 이후에는 대전문화관에서 동학계·증산계 등 14개 교단을 모아 민족신앙연맹(民族信仰聯盟)을 조직하였다. 그런데 5.16 후 발표된 정부의 국산종교통합계획에 따라 증산교본부(대법사) · 보화교 · 수운교 등 12개 교단이 1961년 9월 대전문화원에서 종교연합체 동도교를 결성하여 서울 종로구 견지동 시천교에 본부를 두고 문교부에 등록하였다. 이 단체는 공식적으로는 단일종교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 ...
2025-07-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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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오동정파
증산교오동정파를 창립한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은 1890년 2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서 태어났다. 지술(地術)을 잘 아는 김태수가 증산 강일순을 믿고 태을주를 읽어야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1915년 보천교에 입교했다. 보천교에 입교한 후 1916년부터 손바래기에서 강일순의 부인인 정부인을 3년간 모셨고, 강일순의 생전 제자들인 김형렬·김갑칠·박공우·김자현·안내성 등과 친교를 맺으며 증산의 사상을 배웠다. 1918년 순천에서 안내성을 만나 함께 포교하다가 1924년에 안내성을 따라 김제군 금산면 쌍용리 장승백이로 갔다. 그곳에서 2년동안 200여명에게 포교하여 그들은 모두 안내성을 따르도록 했다. ...
2025-10-0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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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
미륵불교
김형렬(金亨烈 1862-1932)의 호는 태운(太雲)이다. 1862년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현 김제군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여 일찍이 한문사숙 선생을 지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서울을 향하여 진군할 때 청주 근처에서 강일순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1902년 4월에 도를 이룬 강일순을 다시 만나 그의 첫번째 종도가 되었다. 그 뒤부터 강일순은 형렬의 집에 머무르며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면서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주어 신명의 회산(會散)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 후 강일순이 사망할 때까지 그를 성심껏 시종하였으며 딸을 강일순에게 수부(首婦)로 ...
2025-06-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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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법종금강도
홍로성전에는 천하전(天廈殿) ․ 지하전(地廈殿) ․ 인하전(人廈殿)이 있는데 천하전에 증산부부 공자부부 이마두(利瑪竇)부부를 모시고 있다. 지하전과 인하전에도 이들의 위패가 형태를 달리 하여 모셔져 있다. 이 외에도 신명단(神明壇)에는 많은 신명 신장들의 위패와 천공단(天公壇)위패 칠성단위패 산왕단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상은 대체로 증산사상을 그대로 잇고 있으나 특히 제주도가 증산사상을 꽃피우게 될 선택된 장소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2025-07-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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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공부
증산계
태극도(太極道)를 창립한 조철제(趙哲濟)는 1957년 11월 동지 치성을 마치고 모든 임원을 불러 ‘내가 이제 50년공부(五十年工夫)를 종필(終畢)할 도수’라 말하고, ‘남은 일은 도인들의 진법(眞法)공부라 내가 50년 공부로서 얻은 공부법이니 유일무이한 진법(眞法)이요 진법(陣法)이며 천지대학(天地大學)이요 청학(靑學)이라’하며, 수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학공부(侍學工夫)와 시법공부법(侍法工夫法)을 제시했다. 그는 이해 11월에 도인들의 수도공부의 설석(設席)을 명령하고 공부는 시학·시법으로 구분케 하고 각 공부반은 36명으로 하며, 시학은 5일마다 시강식(初降式)을 올리고, 15일마다 합강식(合降式)을 올리며, 4 ...
2025-10-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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