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9건
시법공부
증산계
태극도(太極道)를 창립한 조철제(趙哲濟)는 1957년 11월 동지 치성을 마치고 모든 임원을 불러 시학공부(侍學工夫)와 시법공부법(侍法工夫法)을 제시했다. 그리고 1958년 1월 18일부터 이보다 앞서 실시한 시학공부를 마친 신도들에게 시법공부를 하게 했다. 조철제는 시법공부를 명하고 말하기를 ‘시법공부는 즉석강식(卽席降式) 이니라. 시학을 마치고 시법만 하면 누구나 도통의 진경을 얻어 선경에 참여할 수 있으리니 이는 곧 유일무이하고 외차무극(外此無極)한 태극의 진법(眞法)임이니라’ 했다. 시법공부는 시학공부를 마친 사람으로서 하되 강식(降式)을 거행하지 않고 공부인원은 시학원(侍學員)·정급(正級)·진급(進級)의 각 임 ...
2025-10-03 20:22
59
금산사미륵불
대한불교 조계종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했다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기슭에 자리한 금산사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불의 수기를 받고 중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금산사는 조선 인조 4년(1626)에 재건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금산사 내의 미륵전을 장륙전(丈六殿) 또는 용화전(龍華殿)이라 한다. 미래불인 미륵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불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륵전 내부에는 본존불(높이 11.82m)과 좌우 협시보살상(높이 8.79m) 등 미륵삼존불이 안치돼 있다. 미륵삼존불은 조선시대에 복원하면서 거대한 소조불(흙으로 조성한 불상) ...
2025-06-03 17:44
59
인도교
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 1890~1940, 호 龜岳)는 1890년 1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 비금면 지당리에서 태어나 1914년 보천교에 입교, 최고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1922년 증산 강일순의 탄생지인 객망리에 성전을 짓고 천인교(天人敎)라 이름하여 독립했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증산계 각 교단에 대해 대 폭압령을 내렸다. 국내에서 증산교운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자 이해 여름에 만주에 들어가 농장개설과 교인촌(敎人村) 건설을 준비하고 교인 600여 세대로 신농사(神農社)라는 조직을 하여 만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계속 일제에 쫓겨 봉천성 강평현 박인촌(博仁村), 통화성 유하현 대전자촌(大甸子 ...
2025-10-08 22:49
58
삼동도방
삼덕교
삼덕교(三德敎)를 창립한 허욱(許昱 1887-1939 호 南松)은 1914년 이치복(李致福)과 그의 연비 김형국으로부터 도를 받은 후 1920년 10월 도의 연원을 밝히는 연원법식(淵源法式)을 거행했다. 그 후 전라남도와 충청남북도 일대 표교에 성공하여 많은 신도를 얻음으로써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21년 도방의 조직에 착수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경북교구를 상동도방(上棟道房)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교구를 중동도방(中棟道房) 오봉산을 중심으로 한 전남교구를 하동도방(下棟道房)이라 하였는데 이를 삼동도방(三棟道房)이라 불렀다. 이 삼동도방의 조직은 포교ㆍ교화ㆍ수련 삼단의 체계를 지로사(指路師)ㆍ이회사(理 ...
2025-07-09 21:22
58
허욱
삼덕교
삼덕교(三德敎)를 창립한 허욱(許昱, 1887~1939, 자 京玉, 호 南松)은 1887년 12월 9일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오봉산 하에서 부친 허삼(許森)과 모친 나주임씨(羅州林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4년 증산교인 이치복(李致福)을 만나 증산 강일순의 이야기를 듣고 증산을 신봉하게 된다. 그리고 『영보국정정편(靈寶局定靜篇)』이라는 책을 받아 이 책에 따라 수도를 시작한지 7일 만에 각종의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그 뒤 수도를 계속하다가 1920년 10월 3일에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서상범(徐相范)의 집에서 이치복을 불러 연원법식(淵源法式)을 거행하고 삼덕교를 창립하였다. 1921년에는 포교를 위한 삼 ...
2025-10-11 22:21
57
한국적 영성
현대사회에서 ‘영성’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맥락에서 진전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일반적으로 영성을 물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물질에도 영성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만 한정할 수 없다. 또한 영성을 종교보다 덜 제도화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성을 종교의 핵심이나 최고의 이상으로 간주하여 신비주의적 경험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성은 제도종교의 독점적 산물이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현상으로만 한정할 수도 없다. 한국적 영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성들이 통합되고 실용적인 성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2025-10-11 20:48
56
단군성주교
단군성주교(檀君聖主敎)를 창립한 강승태(姜昇泰 1895-1960 호 龍剛 靈山天師)는 1895년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보천교에 들어가 수도했다. 1924년 영강(靈降)한 증산 강일순으로부터 천지대도를 전수받아 1930년에 기도(起道)하고 1931년에 통운(運通)하고 1932년에 입도(立道)하고 1934년에 개운(開運)함으로서 1936년부터 포교를 시작했다. 처음에 무극대도(無極大道)라 했다. 1937년 일황불경(日皇不敬)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구속되어 복역하다가 해방 후에 나왔다. 1953년 9월에는 북제주군 애월읍 명덕도동으로 옮겨 도명을 단군성주교로 고치고 많은 예언을 하며 교단을 이끌다가 ...
2025-07-01 22:51
56
홍범초
본명은 성렬(性烈)이고 호가 범초(凡草)이나 이름보다 필명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1959년 공주사범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건국대학 대학원에서 이학(理學)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교직 생활을 하면서 교화단체 대법사의 후신인 증산교의 교당을 설립하여 신앙 활동과 더불어 증산교관련 학술활동에 심혈을 기우렸다. 1979년 ‘증산교(대법사의 후신)’제5대 종령(宗領)에 피선, 1981년 ‘범증산교연구원’개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창립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만년에는 ‘범증산교연구원’원장으로서 월간 『천지공사』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증산교의 신앙인으로서 증산교에 관한 저술을 많이 ...
2025-10-11 22:44
53
유동열
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설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유동열(柳東說, 1877-?, 호 春郊)은 1877년 평안도 박천에서 출생했다. 1894년 일본에 건너가 성성학교(成城學校)를 거쳐,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근위사단에서 실무를 쌓았고,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에 종군하였으며,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부에 근무하다가 대한제국군에 복귀했다. 대한제국군 참령(參領)으로 승진하여 시위대 기병대장과 참모국 과장을 역임했다. 1907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산되면서 지하운동에 가담,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고, 서북학회를 통한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
2025-10-08 18:03
53
배용덕
증산진법회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부친 배운경(裵雲卿)과 모친 박운녀(朴云女)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3세 되던 1938년에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학과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이 해 10월에 이덕희(李德姬)와 결혼했다. 1946년부터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는 증산교단연합운동 부위원장을 지냈고 1971년에 결성된 증산신도친목회 부회장 1972년에 증산교단통일회 부회장 1974년에 ...
2025-07-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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