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한자명
발생시기
관련인물/교단명
항목체계
집필자
정의
내용
한자명
白白敎事件
발생시기
1928년~1937년
관련인물/교단명
전용해/백백교
항목체계
역사/사건
집필자
허남진
정의
1928년부터 1937년까지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그의 제자 문봉조 등이 10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80여회에 걸쳐 3백여 명의 남녀노소 신도들을 살육했다는 사건.
내용
백백교(白白敎)는 동학에 근원을 둔 것으로 전정운(全廷芸)의 백도교(白道敎)의 분파로 탄생되었다. 1899년경 동학군 전정운이 금강산에 들어가 4년 동안 수도하여 도통하고 그의 부친이 살았던 함경남도 문천군 운림면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화한 것이 시작이였다. 신도가 늘어나자 1912년에 그는 강원도 금화군 근동면 수태리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교명을 백도교로 하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1919년에 전정운이 사망하자 분열이 일어났다. 1923년 전용주는 이희룡을 교주로 내세워 인천교를 세우고 우광현(禹光鉉)은 교명을 백백교로 바꾸고 전정운을 교조로 그리고 자신을 교주로 하는 새 교단을 창설하였다. 1924년 우광현이 교주직을 사임하고 김공연(金公然)이 취임하였다가 1927년에는 차병간(車秉幹)이 교주가 되면서 본부를 서울로 옮겼다. 그 때까지 실질적인 교단업무는 전용해가 맡아왔다. 뒤늦게 1930년 강원도 김화경찰서에 의해 전교주 전정운이 오성산에 그의 애첩을 생매장한 사건이 폭로되어 백도교 간부들이 검거되기도 했다 . 백백교 사건은 1935년 7월 강원도 금화 사건이 들추어짐으로 해서 1937년 2월 21일 백백교주 전용해의 자살을 끝으로 세상에 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백백교 사건은 어린이를 포함한 340명에 달하는 교도를 살해하고 부녀자를 간음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백백교의 간부 12명이 사형에 처해지고 2명이 무기형을 받았는데 그 죄목으로 살인 사체유기 보안법위반 사기 범인은폐 강제외설죄 등이 적용되었다. 백백교는 전용해가 행방불명 후 1937년 용문산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등 와해되었다. 이는 일제 하 신종교에 의해 저질러진 가장 대규모의 집단살해사건이다. 1930년대 백백교 사건은 일제하 신종교에 의해 저질러진 신종교의 사회적 일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서 신종교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를 악화시켜 해방 후 신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사회적 대응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총독부는 이 사건이 전국에 충격적인 화제로 등장하자 신종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면서 특히 민족의식이 있는 종교단체를 대상으로 그들을 해체시키는 구실로 삼았다.
<참고문헌>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31)
「백백교사건(白白敎事件)」(탁명환, 『현대종교』, 1982.11.12.)
『한국 신종교 조사연구 보고서』(한국종교연구회, 199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