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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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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

자아도(自我道)를 창립한 안두승(安斗承, 1906-1985)은 1906년 10월 11일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한학과 한의학을 익혀 일찍이 한의업에 종사했다. 그의 의술은 일가를 이루어 토혈증(吐血症) 설암(舌癌) 등 다른 의사나 양방(洋方)에서 치료 불가능한 난치병을 많이 치료했다. 그는 일찍이 도에 뜻을 두었는데 1947년 물법교를 창립한 김봉남(金奉南)의 일행이 정읍군 입암면 접지리 용화사에서 물법포교를 하는 것을 보고 그의 심법과 시술법(施術法)에 감복되어 마침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봉남은 안두승에게 이 지방의 포교를 위촉하고 경상남도 지방으로 떠났다. 그런데 김봉남이 이곳을 떠난 지 2년 ...

2025-10-0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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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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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신탄』은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분열된 후 이만희가 독자적인 종교 조직을 시작할 때, 제작한 신천지의 교리서이다. 주요 내용은 동방의 해 돋는 한국에 재림주가 오며, 지상천국의 중심은 동방의 신천지라는 것,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부활하고, 신천지 신앙을 통해 육신 영생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만희가 주장하는 핵심 교리가 『신탄』에 포함되어 있지만, 2015년 현재 여기에 대한 신천지의 입장은 『신탄』의 저자가 이만희의 원고를 받아 자기 생각을 더 해 만들었기 때문에 이만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2025-10-0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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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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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의 전도관과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종교적 정체성을 형성한 이만희가 1975년 유재열이 투옥되자 고향 청도에 낙향했다가, 1980년대 서울근교 안양으로 올라와서 경기도 안양시에 신천지안양교회를 세우고 얼마 후 과천으로 옮겨 1984년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세웠다.

2025-10-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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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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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25세 때에는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26세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어 크게 활약하였다. 1905년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었다. 1910년 4월, 국권의 피탈이 확실시되자 애국지사들과 협의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에는 윤세복의 초청으로 서간도 환인현 홍도천에 머물며 동창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이때 국사 교재로 『조선사』를 집필하였다. 1919년 2월에 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

2025-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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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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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대부분의 신종교가 주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신앙내용의 구성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 많은 한국 신종교들이 주문종교적인 특성을 갖는다. 신종교 주문은 대략 기본주문과 일반주문으로 나누어지는데, 기본주문이 창교자의 도각과정에서 나오거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일반주문은 특정대상을 정해 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주문 속에는 그 종교의 사상과 실천 의례 등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주송수련’(呪頌修鍊)을 통해 심령이 맑아지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며 인격의 전환을 이루는가 하면 개안, 치병, 제마 등의 능력을 갖기도 한다. 또 후천개벽을 주창하고 있는 신종교는 공히 주문 또한 새로운 ...

2025-10-0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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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전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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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종교는 사회 속에서 발생하고 기능하며 또한 변화해가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사회속에서 배태되고 발생해서 성장하고, 또 자기 역할을 다하면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일생(life cycle)이다. 종교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자기 전통을 분명하게 확립한 종교들은 그 종교가 발생 이후 다음과 같은 네 단계의 일생을 거친다. 첫째는 창시자의 종교체험을 기반으로 종교가 형성되는 발생단계이다. 이 단계는 교조의 카리즈마가 종교의 모든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다. 따라서 창시자의 카리즈마 유형에 따라 종교의 신앙형식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새로 형성된 종교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 ...

2025-10-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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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내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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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한국 신종교들은 기본적으로 유교, 불교, 무속에서 제시하는 전통적인 내세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음양론(陰陽論)에 입각한 유교의 귀신관을 수용하는 한편으로,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민간신앙의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 강증산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에 대해 “서교(西敎)는 신명 박대가 심함으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조상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의 문제가 여러 신종교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신종교가 보이는 특징은 내세 자체보다는 현세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며 현실의 삶을 충실히 할 것을 권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각은 동학의 해월(海月)이 제시한 제사의 ...

2025-10-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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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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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 운동’(new spirituality movement)은 일본의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島薗進)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그는 20세기 후반부터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특정한 의례나 교리 체계 및 수행 방식을 따르지 않고 결합방식이 느슨하며 리더십 또한 불분명하면서도 초월적이고 신비적이며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흐름이 확산되는 현상을 ‘신영성 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후에 ‘신영성 운동’보다는 ‘신영성 운동=문화’ 또는 ‘신영성 문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신영성 운동이 기존의 문화 환경과 긴장관계를 나타내면서 전개되지만, ...

2025-10-0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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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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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 신문화운동은 유교적 봉건성 비판과 인내천주의를 종지로 하는 신문화 건설의 문화운동으로 이는 1905년 인민주권의 새로운 국가수립을 위한 갑진문명개화운동의 맥을 잇는다. 1919년 9월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설립과 1920년 4월 천도교청년회로의 개편을 거치면서 천도교 청년조직은 신문화운동을 전개하였고, 이후 천도교청년회의 지회를 토대로 1923년 천도교청년당을 창건하여 천도교 신문화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조기간은 그의 『천도교청년당소사(1935)』에서 “천도교의 인내천 운동은 신문화 창조운동이요 지상천국건설은 후천신문화 건설운동”이라 명명하였다.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청년회는 1920년 4월부터 김기전, 이돈 ...

2025-10-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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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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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윤주성이 무격으로 하여금 단군 및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대덕을 존숭케 하려고 신사봉축회(神社奉祝會)를 창립하였다고 한다. 그 후 교명을 신사교풍사(神社矯風社)라고 바꾸었고, 1922년에는 신리교 교정회(矯正會)라 하다가 1923년 신리종교로 개칭하였다. 개칭 당시 교도수가 5천여 명 이었다고 하지만 이렇다 할 활동 없이 재정곤란에 빠져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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