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성전

2025-10-09 15:24:54

한자명

이칭/별칭

계통구분

설립일시

창교자

주소

항목체계

집필자

정의

개설

역사

경전

한자명

帳幕聖殿



이칭/별칭

대한기독교장막성전



계통구분

기독교계



설립일시

1966년 6월 24일



창교자

유재열



주소

경기도 과천 막계리



항목체계

교단명



집필자

차옥숭



정의

장막성전은 유재열(柳在烈)을 중심으로 1966년에 과천 막계리에 세워졌던 대한기독교장막성전.



개설

유재열은 당시 18세의 나이로 기성교회를 공격하면서, 구약 (스가랴 12: 1)을 인용, 장막성전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고 역설하였다.



역사

장막성전은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에서 나온 사람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호생기도원은 김종규(본명 김용기. 1925년생)가 1965년 10월에 시작하였다. 김종규는 1964년 1월 4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속칭 사자암 아래에서 방을 빌려 집회를 시작했다. 훗날 장막성전의 교주로 ‘어린 종’이라 불리는 유재열과 부친 유인구, 모친 신종순, 그리고 ‘모세장로’라 불린 외삼촌 신종환도 그곳에 있었다. 유재열은 1949년 2월 1일 충북 청주시 북문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 S고 기계체조선수로서 일본 원정시합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방언을 받기만 하면 마음대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모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출입했다. 1965년 1월 어느 날, 유재열은 그의 친구 몇 명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향해 가는 도중 신비체험을 했다.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에 따라 학교도 그만 두고 기도생활에만 전념하여 방언, 강필, 통변, 계시의 은사 등도 받았다고 한다. 호생기도원을 나온 몇 사람들이 1966년 2월 7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유인구의 자택에 모여 다락방모임을 갖게 된다. 그리고 1966년 4월에는 유인구(영명 임마누엘)의 인도로 과천청계산 초막으로 간다. 그들은 1966년 4월 4일에 증거장막에 들어가 약 6개월간 기도를 하고 9월 24일에 하산하여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66년 6월 1일 착공하여 1966년 6월 24일까지 예배당을 지어놓고 그것을 장막성전이라 불렀으며, 그때부터 장막성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유재열은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진리의 성령(요14: 16, 15:26, 요6:7-15)이며, 영생할 알곡을 거두는 자(요4:36)요, 하나님께서 인(印)을 가지는 자로 삼으신 사자(학2:33, 말3: 1)”라고 주장했다. 그는 1966년 3월 1일부터, 1260일이 지나면 종말이 닥쳐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이 환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막성전’으로 모이라고 역설하였다. 이 말을 듣고 서울, 인천, 수원, 등지에서 사람들이, 14만 4천명이 모일 때 종말이 온다고 외쳤기 때문에, 앞 다투어 모여들었다. 1970년 통계에 따르면 장막성전에 입주한 사람은 약 8백 세대에 5,000여명이었다고 한다. 1969년 11월 1일 예언은 불발로 끝났다. 그 결과 많은 신도들이 그곳을 떠났다. 장막성전은 1980년 제5공화국 초기에 사이비종교 정화운동에 걸려 유재열이 물러나게 된다. 그는 1980년 3월 14일 장막성전의 모든 치리권을 오평호 목사에게 위임한다. 오평호 목사는 과천면 문원리에 새로 건축하고 교회의 간판을 ‘대한기독교 장로회 이삭교회’로 바꾸었다. 개신교 의례와 같고 단지 장막성전 신도들은 하나님의 계시라 여기며, 1966년부터 3월 14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경전

신구약 성경

<참고문헌>
『신천지발전사 화보』(신천지문화부, 신천지, 1997)
『사이비 이단과 신천지Ⅱ』(한창덕, 바른말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