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한자명
이칭/별칭
출신지
성별
출생/사망
항목체계
정의
생애 및 활동사항
한자명
鄭廣朝
이칭/별칭
도호 현암(玄菴)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법와면 도청리
성별
남
출생/사망
1883년 8월 30일~1951년 3월 13일
항목체계
인물
정의
천도교 신파의 핵심 인물로 손병희의 사위. 3·1독립운동, 대동단사건, 임시정부에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강점 말기 천도교단을 보호하고자 친일 행각을 벌였음.
생애 및 활동사항
정광조는 8세부터 15세까지 한문을 배우고 흥화영어학교에 입학했다. 1904년 손병희의 둘째 딸과 결혼하였다. 1906년 일본으로 건너가 부립(府立) 제일중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11년 귀국했다. 1909년 대한흥학회 평의원, 1910년 12월 대종사종법원 및 외사원, 1912년 보성전문학교 교감, 1914년 청주대교구장을 역임했다. 1919년 3·1운동을 막후에서 준비했고,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후 심한 고문을 받았다. 1920년에 신숙을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조달했다. 천도교 교단 분규시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198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나, 일제 말기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어 1996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참고문헌>
《매일신보》 『독립유공자공훈록』2(국가보훈처, 1986)
『동학·천도교 인명사전』(이동초, 모시는사람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