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임예환
천도교
임예환은 24세 때 동학에 입도하여 접주, 수접주, 대접주를 역임했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평안도에서 농민군을 이끌고 혁명에 참가하였다. 1904년 의암이 주도했던 갑진개화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고, 1912년에는 천도교 도사(道師)가 되어 평양에서 포덕에 전력하였다. 1919년 2월 25일경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운동을 논의하였으며 민족대표 1인으로 참가하였다.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여 도사(1920년), 공선관장(1921년), 종법원 종법사(1922년)로 활동했고, 1940년 중화교구장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참 ...
2025-10-0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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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서석기
비석에 쓰여 있는 명칭은 ‘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이다. 임신서기석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길쭉한 형태의 점판암제(粘板巖製)로 한 면에 5줄 74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고, 내용 중에는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자주 보인다. 한자를 받아들여 우리의 표기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유일한 금석문이다. 특히, 세속 5계 중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의 표상물(表象物)이기도 하다.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도 자형과 획법, ...
2025-10-0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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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경
삼신도, 한세계인류성도종, 삼진신선도
삼신도의 김석렬,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정근철, 삼진신선도의 편일주가 함께 편찬한 경전. [내용] 본 경전은 삼신도(三神道)의 창립자인 김석렬과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인 정근철, 삼진도의 창립자인 편일주가 함께 작업하여 편찬한 경전이다. 이 책은 『천부경(天符經)』의 원리에 의거하여 개천세계(開天世界)·회천시대(佪天時代)·천지개벽(天地開闢) 등 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천세계편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의 내용을 실었고, 회천시대편에는 『정감록(鄭鑑錄)』·『격암유록(格庵遺錄)』 등을 싣고, 천지개벽편에는 후천개벽공사(後天開闢公事) 등의 이론에 대해 다루었다. <참고문헌> 『일신경』(정근철 외 편, 삼신 ...
2025-10-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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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관
모악교
모악교의 창립자인 여처자의 이칭. 인정상관이란 신법(神法)을 행한 여도인(女道人)의 우두머리라는 뜻.
2025-10-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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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도
본교의 창립자 전판철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신안(神眼)이 열리고 이보(耳報)와 구보(口報)가 열렸으며, 이후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인불대신(人佛大神)’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대부분의 병이 낫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를 도통한 ‘인불(人佛)’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에 이르고, 전판철을 ‘인불대신’으로 받들게 되자 196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교동에 교당을 신축했다. 이 교당도 당시 서울 모 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용채(趙龍采)라는 사람이 전판철로부터 중병을 치료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여 사당을 ...
2025-10-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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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대신
인불도
인불도의 창립자인 전판철은 어려서부터 앓던 지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치병의 능력이 생겼는데,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안마하면서 ‘인불대신’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환자로 하여금 이 주문을 외우게 하면 대부분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인불대신은 주문이나, 이후 전판철을 따르는 신자들은 그를 ‘인불대신’이라고 칭하게 되며,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된다. 특히 전판철의 사후에는 일시적으로 단군성조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을 ‘인불성전’이라고 고치고 전판철의 영정을 모시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전판철의 인불도」(김홍철, 『원광』, 1990년 4월호)
2025-10-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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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남
타불교
이희남은 남편 김원숙(金元淑)과 제주도 구좌면 동복리에서 살았다. 김원숙이 갑자기 정신병에 걸려 고민하던 중 제주에온 김봉남에게 물법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이로 인해 부부가 봉남의 신자가 되어 봉남을 따라 부산 영도에 가서 김원숙은 선원으로 종사하면서 물법교화를 받아 고참 교인이 되었다. 그 후 이희남의 물법시술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신자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봉남이 사망하고 이들 부부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봉남교단본부 설치에 협력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모두 흩어져 한 교파씩을 만드는 중에 그들도 나름대로 포교한 것이 수백 명의 신도를 갖는 교파가 되었다. 자기 집에 만든 법단에 봉남의 사진을 모시 ...
2025-10-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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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대천교
이영의는 오태환 등과 함께 1926년 대천교를 창립하였으며, 교주가 없는 대천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성사(제1대)가 되어 활동하였다. 다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관료로서 단군교에서 활동하였던 이영의라는 인물과 동일인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8. 1. 4.)
2025-10-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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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임
청동단군탑
이백임은 1910년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청동(靑銅)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5세에 심한 안질에 걸려 실명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천리교(天理敎) 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 고베[神戶]에 있는 천리교 지부에 가서 기도치료를 받아 완치한 후 천리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20세에 일본에서 결혼하여 생활하면서 불교로 개종하기까지 20년간 천리교 신앙생활을 하였다. 불교로 개종한 것은 아들의 신병 때문인데, 그녀가 36세 때 큰아들이 일어설 수 없는 병이 생겼고, ‘아들의 병이 조상의 지은 죄 때문에 생긴것이니 속죄기도하라’는 한 여승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일본인 공동묘지를 ...
2025-10-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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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신종교학
이능화(1869∼1943)의 자는 자현(子賢)이고, 호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홍문관교리와 이조참의,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지낸 개화파 이원긍(李源兢, 1849~1919)의 아들이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20여 세에 한양에 왔다. 당시 어지러운 내외정세를 알고 국제문물에 접하기 위하여 불어·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에 전력하였다. 1895년 관립법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897년 졸업도 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불어를 가르쳤다. 1906년 10월 관립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1909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서 새로운 학제가 시행될 때 ...
2025-10-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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