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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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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선불교에서는 불광하느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불광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근본자리에 계시며 큰 사랑과 큰 지혜와 힘으로 하늘을 만들고 온 누리를 주관하여 만물을 창조하시되 아주 작은 것도 빠트리는 것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여 감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나 생각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원래 인간은 하늘 곧 불광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연결이 끊어지면서 육체의 욕망과 감정에 빠지고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뿌리인 하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2025-07-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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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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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북두성·칠성이라고도 부른다. 민간에서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예는 거의 볼 수 없으나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은 매우 일반적이다. 아마 그것은 불교의 칠원성군(七元星君) 신앙이나 도교의 칠성신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두칠성은 하늘을 상징하고 나아가 천체 기상을 관장하는 신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운명·숙명 그리고 인간의 재수를 관장하고 농사와 관계있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도 생각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노무편 老巫篇≫에 나오는 칠원은 칠원성군 곧 칠성을 뜻하는 것으로 무속에서는 적어도 고려 말에 칠성을 신으로 모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

2025-07-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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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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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립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숙부 김봉남을 따라 기장에 숙부가 지도하는 수련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그는 물법수련을 하면서도 불교에도 흥미를 가져 범어사에서 백일수도를 마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봉남의 물법신앙까지도 불교적인 면에서 이해하였다. 1950년 김봉남이 사망하자 경상남도 김해 대동면 수안리에 이사하여 봉남의 영위를 봉안하고 있으면서 봉남교단 설치운동에 앞장섰다. 1953년 봉남교를 불교적인 면에서 포교하기로 뜻을 세우고 부산 아미동에 강기춘과 함께 용화사라는 간판을 걸고 총무직을 맡았 ...

2025-07-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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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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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무가는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고유한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줄거리를 갖추고 있다. 일명 ‘본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의 유래를 설명하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오늘날 전국 곳곳에서 전승되는 본풀이는 그 신화적 골격이 천신계(天神系) 남성과 지신계(地神系) 여성의 결합 과정과 새로운 신의 탄생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서사무가의 신화적 기능은 다산(多産)과 풍요를 관장하는 생산신으로서의 기능과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서의 기능이다. 이는 고대 국조(國祖) 신화의 기능과 일치한다. 그러나 현행 서사무가는 다른 불전설화(佛典說話)나 중국 소설 및 기타 설화나 구비문학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 많다 ...

2025-07-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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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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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에 교단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차경석의 영위봉안 건(1953) 성서간행의 건(1954) 차경석의 부인 이씨 장례비 건(1955) 교당 소유권 다툼(1958) 등으로 보천교는 신·구 양쪽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겪었다. 1962년 6월에 신·구 양쪽이 문교부에 함께 종교 단체로 등록을 하였으나 그해 7월경에 문교부에서 편찬하는 『대한연감』에 기재할 보천교의 연혁과 교리 등을 보고하면서 갈등이 재현되었다. 차경석의 차남 차용남(車龍南)이 창교주를 강일순이 아닌 차경석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일파가 구성전(舊聖殿)의 총정원(總正院)에서 나와 정화사(井華祠)라는 곳 ...

2025-07-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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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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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보성학원은 1905년 9월 이용익(李容翊 1854~1907)이 고종(高宗)의 하사금을 받아 설립한 것으로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법학(法學)과 상과(商科)의 전문학교로서 1907년부터 법률·경제를 망라한 월간 잡지 『법정학계(法政學界)』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1909년 재정난으로 이를 천도교에서 인수하여 운영함에 따라 보성소학교 등 학원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천도교의 자금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자 보성학원은 경영자 김기태(金基邰)씨를 거쳐 학교경영권이 김성수(金性洙 1891-1955)에게 돌아갔다. 《삼천리》7-8(1935년 9월 1일) 기사에 의하면 김성수에 대하여 “보성학원을 ...

2025-07-0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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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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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종은 오오모리 기요코(大森清子 1907-1967)에 의해 1952년 일본에서 정식으로 출범한 신종교이다. 교조인 오오모리 기요코는 지변존녀(智辯尊女)라고 불리는데 변재천(辯才天)의 계시를 받아 신자들의 병이나 사업 가정문제 등에 관한 예언을 행하여 나라[奈良]·와카야마[和歌山]·고베[神戸]·교토[京都] 등을 중심으로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변재천은 고대 인도의 물의 신이었으며 행운의 신 복을 전해주는 신 애정의 신 평화의 신 등의 성격을 지니는데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해져 고래로부터 불교의 수호신으로서 신앙되고 있다. 1934년 지변존녀는 변재천으로부터 “물의 마음[水の心]과 같이 하라. 물의 마음이 있는 곳에 변재 ...

2025-07-09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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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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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현은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1919년에 사망하자 전정운의 둘째아들 전용해(全龍海)와 상의하여 그의 죽음을 숨기고 암매장해 버렸다. 경찰 조사에 의해 전정예 사망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많은 신자들이 백도교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3년 우광현은 백백교로 개칭하고 전정예를 교조로 자신을 교주로 하여 새롭게 시작했다. 1924년 김공연(金公然)이 교주로 취임하였다가 1927년 차병간(車秉幹)이 다시 교주가 되면서 본부를 서울로 옮겼다. 이 당시 실질적인 교주는 전용해였다. 전용해는 간부 문봉조 등 18명과 함께 신도 346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1940년에 혐의자 모두가 체포되어 이중 12명이 사형 ...

2025-07-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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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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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초기인 1918년(원기3)부터 1년간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과 제자들이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앞 해안 갯벌을 막아 농토를 만든 공사. 소태산은 초기교단의 운영과 방언공사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금주금연과 허례폐지 등을 시행했다. 자금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1918년(원기3) 3월에 바다를 막아 언답을 만드는 방언공사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비평과 조소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제자들과 새끼를 꼬아 말뚝으로 방축선을 정하고 가래와 삽으로 캐낸 갯벌 흙을 달구지와 지게 망태기로 운반하여 1년 만에 2만6천여 평의 농토를 얻게 되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방언공사를 성공리에 마쳤으나 ...

2025-07-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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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계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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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계 신종교는 1920년 서울에서 박기홍(朴基洪)과 김용식(金龍植)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를 숭배하던 종래의 숭신단체(崇神團體)와 무당들을 모아서 조직한 관성교(關聖敎)를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관성교의 경전은 『각세진경(覺世眞經)』과 『명성경(明聖經)』이었는데, 『명성경』을 주된 경전으로 삼았다. 하지만 『명성경』이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신도는 「관성제군보서고(關聖帝君寶書誥)」를 암송하였다. 관성교의 의례는 음력 정월초하루, 5월 13일(관우 탄생일), 6월 24일(사망일) 등이 있으며, 매월 네 번의 집제(執祭)가 행해졌다. 1924년에 김용식이 관성교총본부를 만들면서 박기홍과 분리되었고, ...

2025-07-0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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