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김교헌
대종교
1868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구포에서 부친 창희(昌熙)와 모친 풍양 조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 교단에서는 무원종사(茂園宗師)로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대종교 도사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였고 대표위원이 되어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에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일본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 신민 ...
2025-06-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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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에서 1985년 1월 1일부터 발행하고 있는 월간지.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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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사창건기념일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는 상월 박준동(朴準東 1911-1974)에 의해 건립되었다. 1935년 음력 2월 현재의 구인사 범당 지점을 잡아 정지하고 음력 3월에 상량하여 소법당 외에 방 8칸 주방 2칸의 요사채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음력 5월 5일 단오에 구인사(救仁寺)로 명명하고 이날을 구인사 창건기념일로 정하였다. 2015년은 구인사 창건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참고문헌 : 대한불교천태종 홈페이지(http://www.cheontae.org/)
2025-06-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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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원
원불교
중앙 집행기관이란 교단의 행정기관을 말하며 교단의 행정조직으로서 교정(敎政)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등 원불교 중앙의 행정에 관한 일을 담당한다. 현재 원불교 교정원의 조직은 2실 7부로 나누어진다. 2실은 기획실과 정보전산실이며 7부는 교화훈련부ㆍ총무부ㆍ재정산업부ㆍ교육부ㆍ공익복지부ㆍ문화사회부ㆍ국제부이다. 교정원은 또한 행정 집행에 있어 수위단회와 감찰원과의 관계 정립을 원활히 함으로써 중앙총부의 역동적인 의결과 집행과 감찰이 조화 속에 전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위단회에서는 교단의 현안을 의결하여 교정원과 감찰원의 양원에 전달하고 교정원과 감찰원의 각 부ㆍ처ㆍ실에서는 그에 맞게 집행 감독한다. 이러한 유기 ...
2025-05-31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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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오
삼천교
삼천교(三天敎)를 창립한 고대오(高大五 1923-2005 호 蓮主)는 1923년 12월 30일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에서 부친 고운용(高雲龍)과 모친 강문길(姜文吉)의 딸로 태어났다. 19세 때 강봉유와 결혼 4남 3녀를 낳아 길렀다. 23세 때 몸에 신병을 얻어 수도를 시작한 것이 효험이 있어 건강을 되찾게 되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수도생활을 했다. 봉남교(奉南敎)의 일파에 들어가 수도와 포교를 하기도 하고 계룡산 신도안에 들어가 정진기도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38세 되던 1963년 7월 7일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병술년(1946)을 기회로 이 나라 대한에 새 운이 열렸으니 신천지 선운법(仙運法)을 ...
2025-05-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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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
태극도ㆍ대순진리회
2025-05-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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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집
나동섭
2025-05-2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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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표어
원불교
박중빈은 대각 후 당시 시국을 살펴보고 그 지도강령을 표어로 정한 것이며 이는 ‘개교의 동기’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개벽은 지금까지 있었던 우주의 질서나 세계의 질서가 크게 바뀌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박중빈은 물질을 발명하고 제조하는 ‘기술적 정신’은 개벽되어가지만 그 물질을 구하고 사용하는 ‘도덕적 정신’은 개벽되지 못하였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도덕적 정신을 개벽하여 주체성을 확립하고 기술적 정신으로 개벽된 물질문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주성을 확립하여 물질을 선용하자는 것이다.
2025-05-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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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여단군제단
한말 역학자(易學者) 이후영은 새로운 역리(易理)를 내세워 김일부(金一夫)에 비견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생활을 지배할 최고의 역리라고 주장하면서 1951년 자신의 주거지인 부여군 은산면 옥가리에 소규모의 제단을 설치하고 개천절에 제향을 올리다가 1958년에 사망하였다. 이후영의 유지를 계승한 강화(姜和)는 1964년 부소산(扶蘇山)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에 소규모의 단군제단을 설치하고 동지 약 50여 명을 규합하여 개천절 제향을 올렸으며 이후 부소산에 단군전을 세우고 역학대학(易學大學)을 만들고자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는 ‘부여’와 ‘부소산’의 이름이 단군천황의 둘째아들인 ‘부소천황(扶蘇天皇)’과 셋째아들인 ‘부 ...
2025-05-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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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일
삼천교
삼천교(三天敎)를 창립한 고대오(高大五 1923-2005 호 蓮主)는 신앙의 대상으로 태상노군과 서황모를 모셨다. 그녀는 수차에 걸쳐 태상노군으로부터 토설로 강시(降施)를 받게 되는데 이를 기념하여 강시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강시일은 지상천국대법도기념강시일(11월 17일) 장오리자갑도수기념강시일(12월 31일) 사사춘만계갑도수기념강시일(12월 17일) 일출봉구변구토구합도수법도기념강시일(1월 7일) 등이 있다. 또한 매월 본궁ㆍ지법궁ㆍ용천궁 에서 강시의례를 진행한다. 본궁강시는 매월 7일 지법궁강시는 매월 9일 용천궁강시는 매월 17일이다. 참고문헌 : 「高大五의 三天敎」(김홍철『원광』 1989년 12월호).
2025-05-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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