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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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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해월 최시형의 노력으로 동학 세력이 커지자 관아의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에 서인주(徐仁周) 서병학(徐丙鶴)이 도인들의 공주집회를 주도하여 충청관찰사 조병식에게 소장을 제출했다. 해월 최시형이 상주에 이거하자 그들은 최시형에게 나라에 상소할 것을 청하였다. 해월은 시기를 보던 중 1892년 10월 27일 입의문(立義文)을 지어 각지에 편유(遍諭)하고 도인에게 발문하여 삼례에 모이게 하니 집결한 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에 동학지도부는 전주 관찰사 이경식(李耕植)에게 소장을 보내 교조의 억울함과 관리의 탐학 금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경식은 11월 초 “동학은 조정에서 금하는 바”라 하여 거부하고 다만 “관속배들의 ...

2025-07-0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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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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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사구기는 서방경신(西方庚辛) 사구금풍(四九金風)이 유불선 삼도(儒佛仙 三道)를 상생(相生)의 이치로써 중앙무기(中央戊己) 오십토(五十土)에 합방(合方)하여 서방경신(西方庚申)사구금(四九金)에 결실하는 의미로 이루어졌다. 또한 서방경신 사구금의 방위만 표시된 것이 아니라 건곤간손의 괘가 배열되어있다. 또한 오행의 상생상극이 법리에 맞게 이루어졌으며 자연의 운행원리인 음양의 배합으로도 이루어진 것으로 금강대도의 상징을 표현했다. 금강대도의 행사시에 ‘도기에 대한 경례’로써 그 예를 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사구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한다. 사구기에 대한 맹세문은 “나는 신성(神聖)한 사구기(四九旗) 앞에 의(義)와 성(誠)을 ...

2025-07-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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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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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조선 단학은 자생설과 전래설이 있다. 조선 중엽의 한무외(韓無畏)는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에서 단학의 원류가 중국이며 신라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 조여적(趙如籍)의 ≪청학집 靑鶴集≫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 등도 모두 이 설을 따른다. 이규경 역시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도교선서진경변증설’에서 최치원이 당 의 유학시절 환반(還反)의 학설을 배워 온 것을 우리나라 단학의 시조로 삼는다. 이에 반해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단군이 최초의 선도인이며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 역시 신선도에 있다고 한다. 단군시대의 신선사상 고구려와 신라의 선도 고려의 국선 조선의 단학은 시대에 따라 달리 표현된 것으로 보고 ...

2025-07-09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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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을교이동옥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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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을교이동옥파(戊乙敎李東玉派)는 이동옥((李東玉) 1894-?)이 1959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사 근방에서 창교 했다. 무을교를 창립한 김계주(金桂朱)가 1950년 세상을 떠나고 그 후계자로 김홍현이 대표가 되자 김계주의 수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동옥은 운리동을 떠났다. 이동옥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에서 1894년에 태어나 1946년에 무을교에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하였으나 김계주가 세상을 떠나자 1951년 금산사 뒤 비장골에 집을 짓고 수도에 전념하면서 운리동을 왕래하였는데 김홍현이 운리동을 대표하게 되자 그는 이곳을 떠나 자기를 따르는 수십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무을교의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립해 나갔다 ...

2025-07-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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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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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1895년 청일 전쟁의 승리 이후 한반도를 독점하려던 일본은 러시아 주도의 삼국 간섭으로 계획이 저지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영일동맹(英日同盟)과 미국의 지원을 발판으로 1904년 선제공격으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대한제국 정부는 미리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 2월 9일 인천항의 러시아 함대를 격침시키고 한반도를 군사거점으로 삼았다. 일본군은 1905년 1월 뤼순 항을 함락하고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퇴하여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를 단독 점령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열강의 개입으로 영국은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을 맺는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 러일전쟁의 결과 한반도는 제국주의 열강의 승인 ...

2025-07-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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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교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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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종은 1987년 2월 이설호와 최공덕 등의 주도로 창종된 불교종단이다. 석가모니의 수기로 후천세에 재신하여 말법오탁중생을 교화하고 지상극락을 창조하는 미륵불의 혜명을 받들어 십선지 보살도를 행함을 기본교리로 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미륵정토삼부경(彌勒淨土三部經)』,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이다. 1987년 2월 이설호와 최공덕이 대구시 신암동에 임시 총무원을 두고 창종 발기 대회를 개최하여, 이듬해 10월 초대 종정에 이설호를 추대하고, 11월에 초대 총무원장에 최공덕이 취임하였다. 1990년 2월 기관지 『대구불교저널』을 창간하였다. 1992년 3월 이설호가 입적하고, 1993년 3월 총무원 ...

2025-07-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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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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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룡과 그의 아내 김판례가 1946년 대전 보문산에서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

2025-07-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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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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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유래에 대해서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임금 13년에 후단군조 사절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과 단군실기를 임금께 드렸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이암(李嵒)이 저술했다고 하는 『단군세기』에서는 『단군실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의 강세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을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근대기 백봉(白峯)이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고 단군신명으로부터 묵시를 받은 후 백두산 석실에서 『신단실기』와 『단군실기』를 얻었으며 이후 제자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

2025-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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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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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사회단체의 보천교 박멸운동에 이어 내부의 혁신운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차경석이 1926년 2월에 60방주 전원을 해직하고 대신에 전국의 교인 조직을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이라는 이름으로 양분하였다. 당시에 북선을 ‘선북교인연합회’라 하고 그 책임자를 임치삼(林致三)으로 남선은 ‘보천교남선총무소’라 하고 그 책임자를 김정곤(金正坤)으로 임명하였다. 남·북선 체제는 같은 해 5월경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폐지되었다. 1927년 6월에 60방주제가 부활되었다. 참고문헌 :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민중과 유토피아』( ...

2025-07-0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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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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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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