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남북통일법회
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에서 격년으로 행하는 남북통일기원법회.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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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문
대종교
나정문은 1891년 11월 28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일도(一島).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원산농공은행에서 2년 성진척식은행에서 6년간 근무하였다. 1909년 부친 나철에 의해 대종교가 중광되었을 때 입교한 이후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되면서 총본사에서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 총무 천전건축주비회(天殿建築籌備會) 발기인 등 중책을 맡았다. 1942년 일제의 대종교 탄압을 위한 조작에 의해 발생한 임오교변으로 11월 19일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영안현서(寧安縣暑)를 거쳐 목단강경무처에 구금되어 15 ...
2025-07-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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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제
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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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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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유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1919년 전국의 유림 130여 명이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등의 독립운동지를 발간하였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이 때 모금한 자금을 1926년 나석주에게 주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1927년 상하이의 영국인 병원 ...
2025-06-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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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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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
유교
자손이 조상에게 지내는 여러 제사 중에서 돌아가신 날 곧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가 기제(忌祭)이다. 기제사(忌祭祀) 또는 기일제(忌日祭)라고도 한다. 돌아가신 지 1년째 2년째 되는 해의 기일에 시행하는 의례는 각각 소상(小祥) 대상(大祥)이라 하고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시행하는 의례를 기제라 한다. 기제의 대상은 보통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사대(四代) 조상 곧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이며 공적이 큰 조상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4대를 지나도 계속 제사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도입되면서부터 유교의례에 따른 기제의 시 ...
2025-06-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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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종루
금강대도
종의 높이가 일곱자 두치 직경이 넉자 세치 중량이 7백관이며 1982년에 준공하였다. 종머리 위에는 쌍룡이 구슬을 머금고서 호흡통을 안았고 둥근 몸 벽에는 도기(道旗)와 성시(聖詩)를 조각하였다. 성시내용은 “금종소리가 길을 잃은 객을 불러 일깨우고 옥경이 꿈꾸는 사람을 깨워 돌아오게 하네. 한번 금종을 쳐서 십방세계를 화하고 세 번 법북을 울려 중생을 건지도다(金鐘喚惺迷途客 玉磬敲回夢裏人 一打金鐘化十方 三鳴法鼓濟衆生)” 라고 되어 있다. 금종루 사방 출입계단 기둥 돌에 역시 성시가 조각되어 있는데 “세 그물에 고기가 뜀에 대나무 숲 사이에는 맑은 바람이요 꽃핀 계단에 나비들은 예가 있는 고을에 높이 날고 물고기가 천리 ...
2025-06-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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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비장경
인도교
인도교의 경전. 교조의 생애 언행 사상 교단의 약사를 기록해 놓은 문헌.
2025-06-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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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도실
원불교
원불교 최초의 교당으로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영촌마을 옥녀봉 아래에 있다. 1918년(원기3) 12월에 준공하여 박중빈과 제자들이 방언조합실로 사용했다. 1923년(원기8) 현재의 영산사무소 근처로 옮기고 영산원(靈山院)이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중빈은 대각(1916) 후 교단 건설에 착수하여 그 해 12월에 표준제자를 정하고 1917년(원기2) 저축조합을 결성한 다음 1918년(원기3) 5월 13일에 길룡리 간석지 방언공사에 착공했다. 이에 관련한 모임장소로 범현동의 이씨제각(李氏祭閣)과 강변주막 등을 이용하는 등 불편을 겪어왔는데 제도 사업을 향한 공부의 필요성이 더하면서 그 해 10월 박중빈 탄생 ...
2025-06-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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