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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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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920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천도교 내 지하 독립운동 조직인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윤치소, 의친왕, 권동진 등과 필운학당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명문가 출신인 윤치소의 조카와 결혼했다. 1883년 동학에 입도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2차 봉기과정에서 부상하기 시작, 경기·충청·강원을 망라한 20여 개가 넘는 포를 아우르는 북접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이후 손병희가 일본에 망명하던 시기 박인호 등과 함께 교단 운영에 참여하였고, 1905년 12월 천도교가 창건되는 과정에 ...

2025-10-0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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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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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교

이원영은 189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석용(李錫庸)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자 어려서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심한 가운데 불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는 중에 김일부의 정역원리에 선후천 교역으로 새 세계가 개벽된다는 것과 오음주송(五音呪頌)의 신비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뒤 마음이 끌린 바 있어 입신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낫고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모이게 되어 하나의 교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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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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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령회

이담은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하였으며, 1958년 이 단체의 명칭을 단군숭령회로 바꾸고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단군숭령회의 목적은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앙양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1961년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걸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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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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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학회

이기의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해학(海鶴), 자는 백증(伯曾). 전북 만경 출생. 실학을 연구하여 유형원과 정약용을 계승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가 김개남의 반대로 자택으로 돌아왔으며,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할 당시는 한국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나철과 미국에 가려 하였으나 일본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나철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돌아간 후, 이 일로 체포되어 7년의 유배형을 받게 된다. 석방된 후 서울로 돌아와 『호남학보』를 발행하면서 민중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단단학회에서는 이기가 석방된 후 단군숭봉과 아울 ...

2025-10-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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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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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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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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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문자적으로 볼 때, ‘의(義)’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마땅한 도리를 말함이요,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인간관계의 내용, 즉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니, ‘올바름’과 ‘정성’, 이것이 바로 의성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忠誠),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도 모두 의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 즉 건곤부모에 대한 성경(誠敬)을 말하는 것이니, 건곤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앙의 자세를 강조한다. 토암은 “선생이 소금 짐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라 해도 의심치 아니하고 믿어 행할 수 있어야 나의 제자라 할 만하다.”고 했고, “선생을 독실히 믿어 파리가 천리마에 붙어 힘들이지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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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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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한울을 체험하여 깨달음을 이룬 뒤 널리 창생을 구하고자 동학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영남 사대부들과 관아의 탄압을 받아 1861년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으로 피신하였다. 은적암의 본래 명칭은 덕밀암(德密庵)이었는데, 수운이 이곳을 은적암이라 고쳐 불렀다. 선국사 대웅전 뒤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은적암 터 가는 길, 덕밀암 터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은적암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접주 심노환(沈魯 煥)의 도소였다는 이유로 관병에게 불태워지고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수운은 여기서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칼노래(劍訣),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몽중노소 ...

2025-10-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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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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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중앙대종교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과 함께 ‘윷판의 원리’라는 이론을 제창하면서 ‘대종교’를 창립하였다. ‘윷판의 원리’란, 윷말판의 점수배열이 외부 도형에 20점, 내부 십자형에 9점으로 모두 29점인데, 그들은 이 말판 29점의 배열이 곧 『정역』의 기본원리라는 것이다. 곧 복희씨(伏羲氏)의 선천팔괘는 ‘하도(河圖)’에 의해 만들어졌고, 문왕(文王)의 후천팔괘는 ‘낙서(洛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김항의 정역팔괘도는 이 윷판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상역과 김영곤은 윷말판의 비법과 영가무도의 비력(秘力)만이 구세의 법이며, 후천선계에 나아가는 비력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포교하였다. ...

2025-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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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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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

→ 손정우 참조.

2025-10-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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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방각단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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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유야각, 무법대

원방각단군탑은 계월주와 김구연이 만나 서로 월주와 일주의 관계를 맺은 후 충청북도 영동에 있는 각세도남관에 들어가 세운 탑 양태의 단군사묘이다. 근대 이후 나타난 단군신앙의 양태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단군사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단군사묘는 대부분 묘각(廟閣)의 형태로 되어 있으면서도 굴(窟)·축단(築壇)·탑비(塔碑)·조상(彫像)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탑을 쌓아 제단으로 사용하는 사묘는 청동단군전의 원방각형 개천탑과 계월주와 김구연이 세운 원방각단군탑 등이 있으며, 사묘의 양태는 아니나 삼성궁의 돌탑도 유사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 ...

2025-10-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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