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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제숭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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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상태가 창립한 삼신교의 초기 교단 명칭.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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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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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강일순은 1909년 6월 24일 9년간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치고 사망했다. 증산의 사망을 증산교인들은 화천(化天)이라고 부른다. 증산은 원래 하늘나라에 있던 상제(上帝)였는데 인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가 후천선경 건설을 위한 다양한 활동(천지공사)를 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증산의 화천과 같이 증산교인들이 사망하면 화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증산의 사망일인 6월 24일은 증산의 탄강일인 9월 19일과 함께 거의 모든 증산교파에서 화천절이라 하여 가장 성대한 치성(致誠:제사)을 드린다. 치성은 음식을 진설하고 분향·초헌·배례 등 정해진 순차에 따라 진행한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 ...

2025-10-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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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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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열전」6)에 의하면, 『화랑세기』는 704(성덕왕3)년 한산주(漢山州) 도독(都督)이 된 인 김대문(金大問)이 전기 약간권과 『고승전(高僧傳)』·『악본(樂本)』·『한산기(漢山記)』 등과 함께 저술한 것이다. 또 『삼국사기』(「열전」7)에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여기서 솟아나온다”는 『화랑세기』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사기』가 찬술되던 고려 때까지는 남아 있었다고 본다. 『화랑세기』에 대한 호칭도 다양하여 ‘김대문의 세기’또는 ‘세기(世記)’라고 불렀다. 다만 『난랑비서(鸞郎碑序)』에 있는 ‘선사(仙史)’가 『화랑세기』를 가리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1989년 ...

2025-10-1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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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화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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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현화진경(玄化眞經)』은 금강대도의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土庵 李承如)가 저술한 11경 28권의 『대성경(大聖經)』 가운데 1925년(개도52년)에 다섯 번째로 반포한 경이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이 나뉘지 않았으며, 28,700여 글자로 되어있다. 1권의 서두에서는 남천포덕한 지 18년 만에 이 경이 지어진 경위를 밝히고, 그동안 시행방편(時行方便)하며 고구물석(苦口勿惜)하여 중생들을 교화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천상으로부터 중한 인연이 있었던 그 당시 독실하게 신앙했던 제자들의 이름을 망라하여 그들의 덕행을 찬하고 그들의 전생인연을 말하며 군자의 도를 행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경에서는 문장 끝에 여러 곳 ...

2025-10-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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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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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지방은 조불수호통상조약과 1899년 교민조약 이후 신교(信敎)의 자유가 허용되고 1896년 빌헬름(Bilhelm) 주교가 파견되면서 천주교 선교가 본격화되어 1902년을 정점으로 입교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한 단기적 성장의 배경에는 신심보다는 지방행정의 공백과 선교사들의 치외법권 행사에 의해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천주교로의 집단개종이 있었고, 점차 더욱 사회세력화한 천주교신자들은 해서지방의 관리 및 민간인들과 마찰을 빚었으며, 새로 선교를 시작한 개신교 측과도 충돌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관련된 분규와 소송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문제에 선교사가 개입함으로써 관청과의 분규로 확대되고 외교문제로까 ...

2025-10-1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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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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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교

기자교(箕子敎)의 부흥자.

2025-10-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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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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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계인류성도종

→ 한세계성도종 → 한님 참조.

2025-10-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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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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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본관은 청주(淸州),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龍雲), 호는 만해(萬海)·만해(卍海)이다. 1879년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10여 년 동안 한학(漢學)을 공부하다가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서 출가하였다. 하산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등을 여행하였고, 1905년 재입산하여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을 은사로 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1908년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하고 온 뒤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여 불교의 혁신을 주장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가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

2025-10-1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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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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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1981년 정훈모는 백봉으로부터 정훈모로 이어지는 단군교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서울시 방배동에서 ‘단군교종무청’을 창립하였다. 단군교종무청에서는 1983년에는 전북 무주에 교직자 양성기관인 ‘신선도원’을 설립하였고, 기관지로 『한마음회보』를 간행하였다. 한때 단군교종무청의 신도가 1만여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이며, 『한마음회보』는 계간으로 발행부수가 3,000부에 달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1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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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법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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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종은 일본 법화계에서 득도하여 활동하던 김혜선(金慧宣)을 중심으로 1939년 4월, 서울 숭인동에 법화종포교당을 설립함으로써 그 활동이 시작된다. 김혜선은 1904년 10월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으며, 소년기는 주로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보내다가 1934년경 불교에 귀의한다. 1939년 신행회, 본화회(本化會) 등을 조직하여 법화신앙운동을 펼쳤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친형인 김정운과 함께 대승불교법화회를 창설하였다. 그 후 1960년 전후로 법화계가 분열과정을 겪으면서 불입종, 일승종, 대한법화종 등으로 분파되고, 김혜선을 중심으로 한국불교법화종이 창립된다. 1946년 2월 대승불교법화종을 창종되고, 김혜선이 교령에 ...

2025-10-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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