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성도사
성덕도
성덕도 대표. 성덕도의 법통은 도주 김옥재와 법주 도학수에 이어 성도사로 승계됨.
2025-07-14 01:20
28
새예루살렘순례
개신교
황해도 출신으로 간도 용정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황국주는 백일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외양을 예수와 흡사하게 꾸미며 열광적 신비주의의 양상을 나타냈다. 그는 60~70여 명의 교인들이 예수처럼 모시며 따르는 가운데 새 예루살렘을 찾아 만주 용정에서 순례를 시작하여 함경도‧강원도‧경기도를 거쳐 1931년 가을 서울에 도착했다. 이 사건을 새예루살렘순례라고 한다. 이후 전국 각 도에서 전도활동을 벌이고 1933년에는 『영계(靈界)』라는 잡지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1933년 평안도 안주노회(安州老會)로부터 (한준명(韓俊明)·유명화(劉明花) 등과 함께)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 사건은 1930년대의 개신교계 신종교 운동으로 ...
2025-07-13 22:38
28
상생상극
상생상극은 오행의 상호작용을 총칭한 것으로 상생은 木生火(목생화)·火生土(화생토)·土生金(토생금)·金生水(금생수)·水生木(수생목)이며 상극은 木剋土(목극토)·土剋水(토극수)·水剋火(수극화)·火剋金(화극금)·金剋木(금극목)이다. 후한의 장제(章帝)가 백호관(白虎觀)에 학자들을 모으고 오경(五經)의 해석 차이를 논한 내용을 정리한 『白虎通』에서 오행의 상생과 상극에 대한 원리를 분명히 밝혀놓았다. 먼저 상생에 대해서는 나무가 마찰해서 불을 나오고 나무가 타고나면 재가 되어 흙이 나오고 흙이 모인 산에서 돌이 나오고 금을 녹이면 물이 나오고 나무는 물이 있어야 살아나올 수 있다는 논리로 상생(相生)을 풀이하였다. 상극에 대해 ...
2025-07-13 22:16
28
삼화경
삼성궁
삼성궁에서는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삼화경(三化經)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대종교에서 이 세 경전을 조화경·교화경·치화경이라고 한 것에서 명칭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궁에서는 신앙 실천을 행할 때 삼법수행을 마치고 해맞이 경배를 드리는데 이때 천수 천향 천촉 고천 등의 식순을 마치고 이 경전을 독경하도록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2 01:27
28
삼신전경
삼신교
삼신교를 창립한 서상태는 교단의 주요 경전으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과 함께 『삼신전경』과 『삼신진언』 등을 주요경전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삼신교에서는 『천부경』을 조화경(造化經) 『삼일신고』를 교화경(敎化經) 『참전계경』을 치화경(治化經)이라 하여 중시하면서도 본서가 서상태에 의해 삼신(三神:환인·환웅·단군)의 뜻을 밝힌 경전으로서 중시하고 있다. 2003년 삼신신앙제단대본사의 출판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삼신전경』(서상태, 삼신신앙제단대본사, 2003)
2025-07-09 22:41
28
분봉왕
통일교회
분봉왕은 4인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메시아 보다 상위개념의 직제였으나 실질적인 인사·재정의 권한은 가지지 않는다. 문선명 총재는 해당국가의 선교목적 완수를 위해 천주평화의 왕을 대신한 분봉왕을 통하여 해당 국가를 섭리적으로 통치하는 체제를 추구하였다. 2013년 2월 22일(천력 1월 13일) 통일교회의 기원절이 선포된 이후 분봉왕 섭리는 종료되었다. 당시 통일교회는 세계회장 대륙회장 국가협회장 등을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선교행정직제와 분봉왕 국가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섭리적 총괄지도자직제를 병행하여 운영하였다. 문선명·한학자는 2004년 12월 미국 이스트가든 훈독회 참석자 가운데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평화군 16개 국가의 ...
2025-07-09 17:31
28
보천교 혁신운동
『시대일보(時代日報)』 인수 문제로 사회적 파장이 거세지자 차경석(車京石)은 신문사 인수를 포기하고 자금 지원도 중단하였다. 그리고 문제의 정점에 서 있던 이상호(李祥昊)와 이성영(李成英) 등을 파면하였다. 파면된 이상호는 동생 이성영 경성진정원장 이종익 고용환 주익 등과 함께 보천교경성진정원과 보광사 인쇄소를 점거하고 1924년 9월 15일에 ‘보천교 혁신회’를 발의하였다. 이들을 흔히 ‘혁신파’라고 부른다. 정읍의 중앙본소에서 서울의 혁신파들의 출교를 결정하면서 보천교 내에서의 보혁 갈등이 전면화 되었다. 1925년에 이상호는 보천교 혁신안 및 만주 포교의 방안 등을 차경석에게 건의하였가 거부당하자 1925년 12월 ...
2025-07-09 02:06
28
방정환
천도교
방정환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고, 7세에 보성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일제의 경제적 독점에 따라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자 굶주리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10세 때에 소년입지회(少年立 志會)를 만들어 토론 모임을 열었다. 1914년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중퇴를 하였다. 1917년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孫容嬅)와 결혼하였고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독립신문을 찍어 배부하였는데 이를 지휘했던 보성전문학교장인 윤익선이 체포되자 방정환이 이어서 발행했다가 그 역시 체포되었다. 석방된 후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문화학과 청강생으로 ...
2025-07-08 23:43
28
물심인화삼대서원
광명도
①나는 전쟁 병고 기한의 삼대 불평등인 술 고기 담배에 있음을 깨달았노라. 그러므로 인류의 행복에 광명이 되고자 한다. ②나는 입과 손과 머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생명있는 만물에 도움 될 일을 하도록 하고 또 노래 풍류로 그 정신을 새로이 하리라. ③나는 창조의 신명의 부를 받았으니 육체의 이익심을 마귀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정신에 있어 나도 남도 화락하고 풍부하고 고상히 살도록 신불엄하리라.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8 21:28
28
무극
무극은 노자 『도덕경(道德經)』에 “항상된 덕은 어긋남이 없어 무극에 돌아간다”라고 한 데서 처음 보이고 『장자(莊子)』에도 “무궁의 문에 들어가 무극에 돌아간다.”는 등의 구절에 보인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체득한 덕(德)과 맞물려 귀일하는 무위자연의 도(道)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송대에 무극은 『주역(周易)』에 등장하는 태극(太極)과 함께 거론되면서 다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주돈이(周敦頤)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표현을 통해 무극과 태극을 연결시켰다. 주자(朱子)는 이 구절을 ‘무형이유리(無形而有理)’의 뜻으로 풀이를 하면서 실제로는 태극 외에 별도의 무극은 따로 없다고 밝혔 ...
2025-07-08 00:53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