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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심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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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 신앙의 출발점은 부처님과 하날님의 관계를 어떻게 규명하느냐는 것인데 불(佛)과 천(天)이 하나라는 것을 핵심적인 교리로 한 것이 바로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이다. 수운교 신앙은 1860년 득도 시에 체험했던 초기동학의 시천주(侍天主)신앙이 그 후 불교적 요소와의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 불천(佛天)의 묘법이 합일하는 신앙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불천묘법의 통일은 유불선의 실질적인 결실인 동시에 시천주한 사람이 갖게 되는 신앙의 열매로 풀이된다. 이런 불천묘법의 사상에서 나온 핵심 용어가 바로 ‘불천심일원’이다. 후에 이를 수운교의 종지로 명문화한 것은 1970년판에 나온 『수운교경전』이 처음이다. 초기에는 ...

2025-07-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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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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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불조요경》은 1965년(원기50) 원불교 정화사에서 편찬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각 경마다 의역과 한문 원본이 실려 있다. 《불조요경》에 실린 경론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대승경전류 둘은 인과경전류 셋은 수행상 필요한 선(禪)관련 논서류이다. 현재 사용하는 《불조요경》에 수록된 경론은 다음과 같다. 《금강경》 《반야심경》 《사십이장경》 《현자오복덕경》 《업보차별경》 《수심결》 〈목우십도송〉 〈휴휴암좌선문〉이 수록되어 있다. 《불조요경》 결집의 의의는 박중빈이 자신의 대각을 불법에 연원했고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새 회상을 열고자했던 의지가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중빈은 불교의 수많은 경론들을 모 ...

2025-07-0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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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승심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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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각종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이곳은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회당 손규상이 열반한 곳이다. 1963년 초에 건강의 이상함을 감지한 손규상은 육자진언의 염송과 함께 병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불승심인당에서 마지막 생을 마친다. 열반 하루 전인 10월 15일 “옛날은 의발이요 이제는 심인법 스승이 되어서 양운 무 약불 서남”이라는 유교를 남기고 10월 16일 10시 30분에 열반한다. 세납 62세였다. 손규상의 열반 후 제자들은 종조의 위덕을 기리기 위해 종조열반비을 이곳에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진각종사 회당대종사의 깨달음」(권기현, 『대각사상』11집, 2008) 대한불교진각종 홈페이지(http://www.jingak. ...

2025-07-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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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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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봉령각은 1929년에 건립되었으나 1939년 화재로 소실되어 1947년에 재건된 남향의 목조 건물이다. 봉령각은 도솔천 법회당과 더불어 수운교의 삼단(三壇)중 하나이다. 좌우 퇴칸을 제외하고 정면 5칸의 목조기와 건물로 벽체는 긋기단청의 조촐한 맛을 부연개판이나 서까래부리 퇴보 등에서는 화려한 단청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내부 중앙에는 1937년에 봉안된 아미타불 목조입상을 좌측에는 성덕군(나옹불사)을 우측에는 순덕군(수운천사출룡자)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마루 동쪽에는 신중단을 모시고 있다. 봉령각은 초기에 교주가 정양처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공부도량이라 하여 지혜발원의 상징으로써 영적인 감응을 많이 받았던 기도처였다. ...

2025-07-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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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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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통일교회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들을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復歸)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진행하는데 이것을 복귀섭리(復歸攝理)라고 한다. 복귀섭리는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는 재창조(再創造) 섭리이므로 창조가 하나님이 세운 원리(原理)에 따라 진행되듯이 복귀섭리도 하나님이 세운 원리에 의해 진행된다. 이러한 복귀섭리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원리를 복귀원리라고 한다. 복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탕감(蕩減)복귀원리이다.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했을 때 다시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탕감이라고 하 ...

2025-07-09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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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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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에서 백지혈인의 성사를 기념하는 경축일. 소태산 박중빈이 제자 9인과 함께 창생을 구원할 서원을 세우고 기도를 올리던 가운데 1919년(원기4) 8월 21일(음 7. 26)에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결과 백지(白指)로 찍을 종이에 혈인(血印)이 나타난 사건을 기념하는 경축일이다. 소태산은 기도의 정성에 천지신명이 감응한 증거라고 하면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리지 힘쓰라’고 했다(《대종경》 서품14). 이를 원불교에서는 ‘법인성사(法認聖事)’라 하며 이 날을 기념하는 법인절을 제정했다. 초기에 음력으로 법인절을 삼았다가 최근에는 양 ...

2025-07-0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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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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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덕협회

국제도덕협회(일관도)에서는 도(道)가 전해지는 도전(道傳)의 시기를 청양기(靑陽期) 홍양기(紅陽期) 백양기(白陽期) 흑양기(黑陽期)의 4기로 구분한다. 청양기는 석가모니불이 나오기 이전에 1500년간의 시기이며 홍양기는 석가모니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3000년의 시기로서 제18대 궁장조사(弓長祖師)에 이르러 끝났다. 백양기는 홍양기 이후의 18000년간인데 미륵불이 천불(天佛)을 관장하고 도운(道運)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18대 궁장조사가 한국에 도를 전하게 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국제도덕협회(일관도)에서는 이 땅에 미륵불이 출세하여 3천 명의 도통군자(道通君子)를 출생시켜 온 세상을 영도할 수 있게 하 ...

2025-07-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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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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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백봉은 성명과 신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는 태백산(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여 단군신명의 묵시를 받았으며 백두산 석실에 비전되어 오던 단군의 교전 『삼일신고』와 『단군실기』 등을 얻게 됨으로써 신도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1904년부터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백전(伯佺)을 비롯하여 두일백 정숭모 등 13명이 백두산 대숭전 고경각에서 모여 백봉의 교지를 받들어 단군교를 포명하였으며 이 포명식에 참석한 13명 외 20명 등 총 33명이 단군의 성역인 만주 몽고 일본 등으로 포교를 떠났다고 한다. 백봉의 단군교에 연원하여 이후 나철이 ...

2025-07-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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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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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교

박성호는 1919년에 천도교에 입도하였다가, 1922년 수운교로 옮겨 중요 간부가 되었다. 1932년에 수운교에서 나와 수운교별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종교 활동을 했다. 1934년에 본부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교명을 대동교라 고치고 활동하다 1966년에 사망했다.

2025-07-0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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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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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교월평교회

박금수(朴金洙)와 함께 1967년 증산계 신종교 동도교월평교회(東道敎月坪敎會)를 창립한 인물.

2025-07-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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