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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티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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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티즘(Occultism)은 오컬트에 관한 연구를 말한다. 오컬티즘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물리적 영역 이외의 초자연 영역에 대한 탐구를 하는 형이상학적인 과학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의 영적 발전과 관련된 영성주의 또는 영성(靈 性·Spirituality)과 관련이 더 깊다. 가끔 심령주의(心靈主義·Spiritualism)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전혀 다른 분야이다. 심령주의는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신이나 혹은 천사 혹은 다른 차원의 초월적 존재들과 교통하는 것을 말한다. 동양의 오컬티즘은 중국의 역학 체계, 도교 체계, 인도의 아유르베다와 요가체계 그리고 티베트의 탄트리즘 체계 등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서 ...

2025-10-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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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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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계

일부계의 교단에서 영가무도의 수련을 행할 때 오음주를 주송하면서 춤을 춘다. 오음주는 음·아·어·이·우의 다섯 글자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영가무도의 오음을 중국 음악의 다섯 가지 소리인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발성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며, 또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오행과 비(脾)·폐(肺)·간(肝)·심(心)·신(腎)의 오장(五臟)의 조화를 일으키는 음율로 보기도 한다. 오음주의 유래에 대해 이강오는 1860년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가 21자의 주송을 펴낸 것과 같이 남학(南學)을 창도한 이운규가 펴낸 5자 주송을 김항이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그 논리적·사료적 근거 ...

2025-10-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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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위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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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

조철제(趙哲濟, 1895-1958, 호 鼎山)가 창립한 태극도(太極道)의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 甑山: 無極主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와 옥황상제(玉皇上帝: 鼎山: 無極道主玉皇趙聖上帝) 이다. 이 두 상제를 이도이위일체(以道二位一體)로 본다. 조철제는 1925년 증산 강일순의 존호를 신격으로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라 하고 인격으로는 강성증산상제(姜聖甑山上帝)라 했다. 그리고 증산을 신앙의 주 대상으로 하였다. 태극도 시절인 1955년 조철제는 영대(靈臺)를 차리면서 증산을 구천상제로 중앙에 모시고 그 옆에 옥황상제와 여타 신위를 봉안했다. 그런데 조철제는 이해에 신도들로부터 ...

2025-10-0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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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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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안희제는 1885년 8월 4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백산(白山)이다. 1905년 경성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양정의숙 경제과로 전학하여 1908년 졸업했다. 1907년 부산 동래의 구포에 구명(龜明)학교와 의령군 의령면에 의신(宜新)학교를 설립하였고, 1908년에는 고향인 의령군 입산리에 창남학교를 설립했으며, 1909년에는 구명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1909년 10월, 윤세복(尹世復)·서상일(徐相日)·신성모(申性模)·남형우(南亨祐)·박중화(朴重華) 등과 비밀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봄에는 북간도 ...

2025-10-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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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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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일명 대흥리에서 1925년 1월 16일에 건축공사를 시작한 보천교 중앙본소의 대성전은 1929년 3월 15일에 준공하였다. 십일전(十一殿)에서 십(十)은 역학에서 보는 음의 최종수이며 일(一)은 양의 시초가 되는 수이다. 그러므로 십일(十一)이라는 수는 음양의 시종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음양이 순환하여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조화의 본체로서의 태극(太極)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일전을 태극전(太極殿)이라고도 하고, 방장산을 등지고 북쪽을 바라보는 까닭에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도 한다. 십일전 안에 ‘삼광영(三光影)’을 봉안하는 데, 본존의 삼광영이 곧 태극의 본체를 ...

2025-10-0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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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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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각세도서관

각세도의 도주인 이선평은 교단을 창립한 후 교세의 확대와 더불어 사관제도를 운영하여 교단조직을 정비하게 된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위로 두었으며, 각 관에는 자신의 10대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4명을 선발하여 도주로 임명하였다. 당시 각세도 서관의 도주로 임명된 것이 신태제이다. 그러나 1956년 이선평 사후 신태제는 서관을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자적인 교파를 형성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다가 조화정부(造化政府) 사건의 조작혐의를 받아 구속된 후,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 ...

2025-10-0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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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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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25세 때에는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26세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어 크게 활약하였다. 1905년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었다. 1910년 4월, 국권의 피탈이 확실시되자 애국지사들과 협의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에는 윤세복의 초청으로 서간도 환인현 홍도천에 머물며 동창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이때 국사 교재로 『조선사』를 집필하였다. 1919년 2월에 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

2025-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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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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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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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내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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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한국 신종교들은 기본적으로 유교, 불교, 무속에서 제시하는 전통적인 내세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음양론(陰陽論)에 입각한 유교의 귀신관을 수용하는 한편으로,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민간신앙의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 강증산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에 대해 “서교(西敎)는 신명 박대가 심함으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조상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의 문제가 여러 신종교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신종교가 보이는 특징은 내세 자체보다는 현세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며 현실의 삶을 충실히 할 것을 권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각은 동학의 해월(海月)이 제시한 제사의 ...

2025-10-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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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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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수덕회는 원불교 초기 시대부터 있던 전무출신 친목회인 ‘상애회(相愛會)’의 전통을 이었다. 1955년 1월 10일 개최된 교무연합회의에서 당시 종법사인 정산종사의 수덕회 조직을 촉구하는 유시를 받들어 발기하게 되었고, 동년 4월 25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초대회장에 박광전을 선출했다. 정산은 전무출신의 친목 단체로 수덕회를 조직하도록 하면서, “대의는 물같이 합하고 예절은 구슬같이 분명하라”고 당부했다(『정산종사법어』 경륜편28). 수덕회는 전무출신 상호간 정의를 건네고 의리를 지키며 가족적인 친분을 두텁게 하여 애경상문 등 공동체 생활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이공전 작사, 김동진 작곡으로 1977년에 발표된 수덕회가 ...

2025-10-0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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