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천도교경전
천도교
1905년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후, 천도교 교단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한 권으로 묶어서 경전을 처음으로 발간하였다. 해방 후 1952년 부산에서 백세명(白世明)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풀이하여 출판하면서 처음으로 『천도교경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6년 8월 천도교총부에서 역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재간행하면서 천덕송을 수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천도교 경전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만을 지칭한 것이었지만 1961년 4월에 『해월신사법설』과 『의암성사법설』을 경전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경전목차를 보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천종법경(天宗法經), 해월의 법설을 도종법 ...
2025-10-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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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수양원
천리교
일본 신도계 신종교인 천리교의 해방 후 명칭. 천리교는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에 의해 1838년 나라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에서 창립되었다. 천리교의 첫 한국포교는 1893년 사토미치 타로(里見治太郎)에 의해서였다. 1903년에는 서울에 천리교포교관리소가 설립되어 교선을 확장했다. 해방 후에는 왜색종교로 알려져 수세에 몰렸다. 1948년 천리교 신자들이 천경수양원을 설립, 교단 재정비에 나서는 한편, 미군정청에 교단등록을 하고 활동에 나섰다. 1952년에는 대한천리교연합회, 1956년 대한천리교총본부로 개칭하였으며, 1963년에는 재단법인 대한천리교를 설립하였으며, 김진조(金振祚)가 초대 교통(敎統)이 되었다. 신 ...
2025-10-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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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요법
봉남교
찬물요법은 ‘찬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찬물치료’, 또는 ‘물법치료’라고도 한다. 김봉남(金奉南)의 봉남교(奉南敎)에서 찬물치료와 물법치료는 혼용해 쓰면서도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구분된다. 찬물치료는 외부에서 물을 체내에 공급함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봉남이 물법의 원리를 깨달은 초통을 하고 신도들을 모아 부처님 앞에 찬물을 올리고, 아미타불·미륵존불을 염송하면서 무량주(無量呪)·칠성주(七星呪)·음부경(陰符經) 등 여러 주문을 외우고는 환자들에게 그 물을 먹였다. 봉남이 물을 먹일 때는 병자가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친다든가, 주축(呪祝)을 한다든가 안찰(按擦)·타골(打骨)·침구법(鍼灸法)까지 겸행했다. 이 ...
2025-10-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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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회운동
천도교
동학혁명 후 의암 손병희는 일본에 망명하여 동학에 대한 탄압중지와 정치혁신을 정부에게 간곡히 탄원했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할 길은 민심이 화합하고 언로가 열리며 삼전에 근거한 주권국가를 공고히 함에 있다”한 것인데 탄원의 상소는 ‘요언(妖言)’으로 해침을 당할 뿐이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개시되자 손병희는 민회를 조직하도록 지시하였다. 처음에는 민회 이름을 ‘대동회(大同會)’라 하였다가 그 해 4월 박인호와 홍병기 양인이 다시 일본에 가서 의암을 만나 “세계문명에 참여하는 표준이자 단결을 굳게 하는 표시로서 일제히 단발할 것”을 명받아 국내로 돌아와서는 7월 ‘중립회(中立會)’로 고치고 단발할 것을 각지에 ...
2025-10-0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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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사상연구
증산진법회
배용덕(裵容德)이 설립한 증산사상연구회는 강일순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1974년 3월에 서울에서 창립했고, 1975년 3월 『증산사상연구』제1집을 발행한 이래 2000년 11월 제22집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본 연구지는 국내외 종교·사상·철학·역사·과학 등 전 학문분야의 석학들을 동원하여 증산사상을 자기 전공분야의 관점에서 조명하도록 하는 편집체계를 유지하였다. 제1집에서 21집까지는 증산진법회의 배용덕이 편집 발행했고, 22집은 홍범초(洪凡草)가 편집 발행 했다. 제1집에서 21집까지의 내용 중에는 배용덕·임영창이 공저한 『증산신학개론』 상(8집)과 중·하(10집)권이 있고, 배용덕 ...
2025-10-0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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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적
도교
호는 용잠거사(龍岑居士) 또는 청학산인(靑鶴山人)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조선중기 선조연간의 인물로 추정된다. 도사(道士) 이사연(李思淵)의 제자이며, 위한조(魏漢祚)의 도통(道統)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였다. 문장에 뛰어났지만 매번 과거에 낙방하였는데, 1588년(선조 21년) 또다시 과거에 낙방하고 실의에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사연을 만나 신선술(神仙術)을 배웠다고 한다. 이사연을 따라 덕유산으로 들어가 약을 캐어 영약을 만들어 병든 이를 구제하였고, 한라산·지리산·금강산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다. 그 뒤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와 위한조 등 수련도교(修鍊道敎)에 속하는 선파(仙派) 인물 ...
2025-10-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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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학연구소
1994년 대전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간의 의식과 뇌연구를 통한 정신작용의 과학화와 동서과학의 통합적 연구를 모색하는 모임인 한국정신과학연구회가 탄생했다. 같은 해 한국정신과학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96년에 재단법인으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첨단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과학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과 뇌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을 창조,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정신과학연구소의 부설 교육원에서는 뇌기능을 분석하여 자기조절능력과 학업형성능력의 향상과 심신건강을 꾀하는 뉴로피드백 관련 제품을 판매한다.
2025-10-0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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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고택
천도교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1855년 12월 3일 이곳 고창읍 죽림리 63번지 당촌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장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았던 가옥을 말한다.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진강 만석보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봉준 장군 생가는 사적 제293호로, 고종 15년(1878)에 세워진 초가 3칸의 돌담집이다. 남향으로 동쪽부터 부엌, 큰방, 윗방, 끝방 순서로 되어 있으며, 부엌은 앞뒤로 두 짝의 널문을 달았고, 큰방과 윗방은 장지문을 통하며 연등천장 형태이다. 끝방은 곳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끝방 앞쪽은 담을 둘러 땔감을 두었다. 두 방 앞은 툇마 ...
2025-10-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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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동학(천도교)
전봉준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곤궁한 생활에 보탬을 주기 위해 훈장도 했다. 아버지는 고부군의 관리였으나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하여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곤장을 맞고 사망했다.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1892년 무렵에 최시형에 의하여 고부지방의 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그는 1893년 3월 동학의 보은취회에 참가하여 그 집회를 반봉건·반부패·반침략의 정치적 운동으로 확대시키고자 하였으나, 보은 집회가 4월 3일 해산됨에 따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이끈 동학농민혁명의 직접 불씨는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재물을 빼앗는 등 학정 때문이었다. 전봉준을 ...
2025-10-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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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근
천도교
장효근은 이종일(李鍾一)·오세창(吳世昌) 등과 함께 《제국신문(帝國新聞)(1898년)》을 창간한 당대의 대표적 언론인이다. 그는 1905년 12월 천도교에 입도하였고, 1906년 6월에는 《만세보(萬歲報)》 창간에 참여하여 국가문명의 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는 천도교가 주도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그 후신인 대한협회(大韓協會)에 참여하여 오세창·최영직 등과 함께 《대한민보(大韓民報)》를 창간하였다. 1914년 8월 민중운동으로 보성사 안에 천도교구국단을 조직하였으나 실패했고, 1919년 2월 27일에는 천도교 산하 보성사(普成社) 총무로 있으면서, 3·1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한 ...
2025-10-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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