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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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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이종일은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15세에 상경하여 한학을 공부했으며 1873년 과거에 급제했고, 1882년 일본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다녀왔다. 1896년 독립협회가 발족되자 그 막후에서 민권의식과 민권사상을 고취시켰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경성신문》, 《제국신문》을 창간했으며, 《황성신문》, 《만세보》, 《대한민보》등에 관여했다. 이 때 필화사건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906년 손병희의 권고로 천도교에 입도한 후에는 문명개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윤치호, 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에 참여했고, 1907년 11월에는 대한협회 조직에도 참여하였다. 1912년 1894년 갑오년 ...

2025-10-0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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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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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파

정역파의 창립자인 이상룡의 별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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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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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어머니의 꿈에 옥황상제가 나타나 하얀 솜을 많이 주기에, 공경하여 품에 안는 꿈을 꾸고 이승여를 낳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어릴 때부터 세상 이치와 법도를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많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24세(1897년)에 서자암과 결혼한 후 홀로 세상이치를 궁구하더니 33세(1906년)에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대도를 자각한다. 이 때 토암(土庵)이 깨달은 대도는 ‘선후천 교역기에 타락된 인간의 도덕성을 건곤부모인 자신이 개화(開化)함으로써 큰 겁운에 싸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고, 나아가 우주의 화평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 후 자신은 금강도사라 하고 자암은 연화도사라 하면서 포덕에 ...

2025-10-0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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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성신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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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전도관에서 이 절기는 5월 셋째 주 일요일에 지켜진다. 전도관에서 이슬은 성신인 박태선을 가리킨다.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것은 이슬과 같은 감로(甘露)가 집회장에 가득 차며, 몸에 닿아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최초로 이런 ‘이슬’을 체험한 사람은 박태선이다. 그리고 전도관이 출발하기 전, 박태선의 전국적 부흥집회에서 많은 사람이 이슬을 체험했다고 증언했다. 1980년 탈 기독교 선언 이후 1981년 2월 7일경 모든 기독교 절기를 폐지하고, 1월 1일을 이슬성신절로 선포하였으나 2015년 현재는 매년 5월 셋째 주를 이슬성신절로 지키고 있다. 이 때 전도관 신앙자들은 모두 기장 신앙촌의 특별집회에 참 ...

2025-10-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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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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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천지원리교

이성재는 1921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삶의 목적과 의의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스승을 찾았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피난을 갔던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각세도 도주인 이선평의 아들 이동주를 만나 각세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세도에 입문한 후 도조 이선평을 찾아가 2년여에 걸쳐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된 그는 서울로 가서 김월정(金月正)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두 부부는 함께 각세도 신앙과 수련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선평이 사망한지 20년 되던 1975년 부인 김월정이 ...

2025-10-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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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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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임도, 각세도동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교단을 설립 후 포교가 확대되자 사관제도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사관제도는 동서남북 네 방면에 관(觀)을 두고, 자신의 10대 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네 사람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관리,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각세도 동관의 도주로 임명된 것이 이상제이다. 이상제는 동관의 도주로서 전권을 위임받아 포교활동에 주력하다가,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 ‘귀임도’로 교단명칭을 변경하고 독자적인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상제 사후 원제상 등이 후계를 이어받아 교단을 운영하였으나, 교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

2025-10-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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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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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문자적으로 볼 때, ‘의(義)’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마땅한 도리를 말함이요,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인간관계의 내용, 즉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니, ‘올바름’과 ‘정성’, 이것이 바로 의성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忠誠),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도 모두 의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 즉 건곤부모에 대한 성경(誠敬)을 말하는 것이니, 건곤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앙의 자세를 강조한다. 토암은 “선생이 소금 짐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라 해도 의심치 아니하고 믿어 행할 수 있어야 나의 제자라 할 만하다.”고 했고, “선생을 독실히 믿어 파리가 천리마에 붙어 힘들이지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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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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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최제우가 1854년 10월 나이 31세에 출가구도의 고된 역정을 마치고 정착 수련을 하기로 정하였다. 울산 처가 근처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에 3칸 초옥을 짓고 수도생활을 하던 중, 1855년 천지가 고요하고 뜰아래 살구꽃이 만발한 가운데 한 이인(異人-승려)이 앞에 나타나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 하고 전해주고 간 책이다. 그 이인은 “소생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백일기도를 하옵더니 공부를 마치는 날 자리 앞에 책 한권이 놓여 있으므로 읽어 본즉 천하의 이상한 글이라 도저히 글 뜻을 알 길이 없어 이 글을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하여 천하를 주유하되 아직 그 사람을 보지 못하였더니 오늘 선생을 뵈오매 마음에 크게 감동한 바 있 ...

2025-10-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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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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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교

→ 성화교(聖化敎)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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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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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황교

윤윤원은 1894년에 출생하여 30세 되던 때 갑자기 사경에 들어갔다가 몇일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이 사경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황황공부를 시작하여 1960년 충남 공주군 계룡면 구왕리에서 황황교를 창립했다. 윤 여인은 하늘의 지시를 받고 있는 영사(靈師) 또는 강사(降師)라 불렸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열리는 정기집회 때 그녀는 자기의 고유한 춤을 추게 되는데 그 춤의 모양이 무녀의 춤과 흡사했다고 한다. 또한 윤윤원은 점, 사주나 궁합 등에 능통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

2025-10-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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