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순씨천은안위경
갱정유도
갱정유도인들은 15일이나 30일 또는 100일 등 특별한 기간을 정하고 전국 각지의 명산에 마련 된 수련당에서 특별수련을 시행한다. 특별수련을 하 는 동안에는 자시(子時: 밤11시)
2025-07-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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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논총
대순진리회
대진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인 대순사상학술원이 발간하는 정기 학술지. 대순사상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종지 신조 목적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논문과 대순사상의 학문적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음.
2025-07-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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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증산교
안세찬이 창립한 증산도의 초기 이름
2025-07-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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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영모계
작산단군전
1913년 이진택이 세운 작산단군전은 근대 이후 국내 최초의 단군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진택 사후 포교활동의 거의 정지되었으며 교단조직이 거의 해체되었다. 따라서 해방 이후 단군전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주민들이 단군전의 운영을 위해 ‘단군영모계’를 결성하였다. 이는 과거의 단군전 교인들이나 마을주민들이 단군을 어느 종교단체의 신앙대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종교성을 떠나 민족적 도의심에서 숭봉해야 한다는 자각이 해방 이후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군영모계의 계원들은 성미를 거두었으며 이 기금으로 단군전의 향사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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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교
1890년 김염백이 창립했다는 단군계 신종교 대신교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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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건수도리
갱정유도
1918년부터 수도(修道)에 뜻을 두고 정성(精誠)과 선심(善心)에 바탕을 두고 정진해 오던 강대성은 1928년 기도를 하던 중 “금강산 금강암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전북 순창이 고향이었던 그는 인근 회문산 내에 승강산(勝剛山: 금강산보다 더 나은 산이라는 의미)이 있고 그곳에 금강암이라는 암자 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곳에 초가 3칸을 짓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구도수련(求道修鍊)은 초가3칸이 완성된 이듬해(1929년) 2월 20일(음)부터 시작된다. 강대성은 혼자서 수도를 한 것이 아니라 부인 문씨와 아들 용학(龍鶴)에게도 수도하는 묘방을 일러주어 함께했다. 그는 부인과 아들에게 ...
2025-07-0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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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청림교
청림교(靑林敎)의 창시자. 본명은 남한준(南韓駿) 호는 청림(靑林).
2025-07-0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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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제
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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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대종교
김좌진은 1889년 1월 24일 충남 홍성에서 형규(衡奎)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김옥균이 그의 백부이다. 3세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으며 1904년 서울로 간 형을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맡았을 때는 노비문서를 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2천 석의 농토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05년 서울로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07년 고향으로 돌아가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자기 집을 학사로 제공하였으며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운영비로 썼다. 1911년 북간도에 독립사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자금조달을 하다 발각되어 2년 6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에 ...
2025-06-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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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임무교
임무교(壬戊敎)를 창립한 김종렬(金鍾烈 1899-1966)은 1899년 8월 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종부리에서 김진국(金鎭國)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7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신앙하였고 이상호의 대법사(大法社)에도 적극 가담하여 중앙통제위원(中央統制委員) 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4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쌍룡리 자기 집에서 임무교를 창립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 사망했다. 증산 강일순을 옥황상제로 신앙하였고 특별한 독자적인 사상이나 주장은 없었다. 참고문헌 :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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