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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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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선도부의 상급 임원

2025-07-0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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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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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보광(普光)』은 보천교 간부 이성영이 보광사를 통해서 발간한 국한문 혼용의 교양 잡지로 『보광』(창간호)(1923.10) 『보광』(제2호)(1923.12) 『보광』(제3호)(1924.1) 『보광』(제4호)(1924.3) 등 총 4회 발간되었다. 『보광』은 보천교 기관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보천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불식시키고 지면을 통해 대중에게 교리를 알리기 위해 창간되었다. 『보광』의 논조는 보천교의 사상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의식을 보여주었으며 개조론이나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보광』창간호(보광사 1923.10) 『보광』제2호(보광사 1923. ...

2025-07-09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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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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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금강대도의 제2대도주 청학 이성직(靑鶴 李成稙)은 1949년(개도77년) 17개의 경문(靈運經 明敎章 大聖師父寶誥 大聖師母寶誥 大聖師母寶誥 道聖師父寶誥 道聖師母寶誥 十聖寶誥 太上大通經 保身益化呪 樂觀呪 通心靈異經 成願經 金剛眞言 關聖帝君應合三才經 文昌帝君鎭心魔經 孚佑帝君修鍊經)을 내려 주어 이 경문을 봉독(奉讀)하며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제3대도주 월란 이일규(月鸞 李一珪)는 1984년에 덕성사부보고(德聖師父寶誥) 덕성사모보고(德聖師母寶誥)를 내려 주어 현재는 19개의 경문이 있다. 이러한 경문이 담긴 책이 『보경(寶經)』이다. ‘보경’은 금강대도의 신앙의 대상인 대․도․덕성사건곤부모와 삼성제군(관성제군․문창제 ...

2025-07-09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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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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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금강대도의 제2대 도주인 청학이 제중포덕의 한 방편으로 처음 보결을 만들었다. 1937년 처음으로 38부(符)의 보결을 주사(朱沙)로 인쇄하여 보급하였고 1941년 1949년 1951년 등 질병이나 전란 등으로 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보결을 내려 제자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보결에는 ‘대겁보제(大劫普濟)’ ‘무병장수(無病長壽)’ ‘소재멸액(消災滅厄)’ 피병란(避兵亂) 축사(逐邪)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환자는 그것을 태워 냉수에 타서 마시고 건강한 사람은 붉은 주머니에 넣어서 왼쪽 가슴에 차도록 하여 악한 질환과 흉한 겁운을 예방케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도성적편년』(금강대도)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이재헌, ...

2025-07-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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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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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법화종

대한불교법화종에서 발행한 신문.

2025-07-0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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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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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영산법화종

영산법화사출판부에서 발간하는 월간잡지로서 1958년 1월의 제1호를 시작으로 매월 발간되어 2015년 9월 현재 365호가 발행되었다. 주된 내용은 법화경 강의 법화현의 해설 자타카 조사들의 전기 등 법화신앙과 불교신행 일반에 관련된 것이다. <참고문헌> 영산법화사 홈페이지 (http://www.ysbuphwasa.org/)

2025-07-0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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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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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김종용(金宗用)이 창립한 증산계 신종교인 용화사(龍華社)가 올바른 역을 규명하기 위해 조직한 위원회.

2025-07-0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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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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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예에 의해 1899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창립된 본교의 교리는 동학사상에 기반하였지만 주문을 염송하고 천지에 예배하면서 무병 불로장수하여 신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2025-07-0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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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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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신앙대본사

배선문은 1933년 6월 27일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했다. 9세 때 초등학교에서 그림그리기 시간에 태극기를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3일간 벌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그가 입산수도하여 민족사상과 단군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단군신앙을 하게 된 이유로 어려서 할아버지한테 받은 『단기고사』를 읽은 것도 한 영향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군복무를 마친 1958년부터 5년간 입산수도한 끝에 깨침을 얻어 1962년 강원도 평창의 청학산 기슭에 ‘청학시교당’을 개설하였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선원을 개설하고 신자를 두었다. 1959년에는 두타산 무명동굴에서 ...

2025-07-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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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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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단군굴

박효달은 함경남도 신흥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종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 여러 종교를 드나들며 교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집안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신봉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데, 1942년 서울 필동에 있던 자기 집에 박혁거세 영상을 봉안하였다. 1943년에는 박혁거세 영상 옆에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단군신앙을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박효달은 민족의식의 발로로 국조인 단군을 신봉해야겠다는 신념으로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상교(尙敎)급(級)까지 올라갔고 일시적으로 삼일원(三一園)의 대덕(大德)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후 그는 일제가 신사를 만들어 참배를 강요하였던 것에 대해 국조를 모시는 단 ...

2025-07-0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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