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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서상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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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서상근파(甑山敎徐相根派)는 1945년경에 서상근(徐相根, ?~1962)이 창설하였다. 보천교의 노동단체인 기산조합장(己産組合長)을 역임 한 바 있는 서상근은 보천교를 탈퇴하고 입산수도를 한 후 신명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증산교를 포교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산위에 집을 짓고 산전을 이루어 생활하였는데 그를 도인이라고 하여 따르는 사람들이 교단을 이루었다. 서상근이 1962년 사망한 후에 김기태(金箕泰)가 계승하였는데 별스런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최근봉(崔根奉)이 금산면 청도리 동곡약방 자리를 사들여 이곳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증 ...

2025-10-0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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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단친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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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동도교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홍범초의 발의로 90여명의 각 증산교 교단 대표들이 보천교에 모여 결성했다. 회장에 박기백, 부회장에 이종호, 배동찬 등이었다. 증산교단친목회 결성 동기는 동도교가 그 조직체나 이념이 순수한 증산교단 전체를 대표하여 건전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뒤 증산교단협회로 명칭을 개칭했다. 1971년 음력 11월에 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선하여 회장에 이시발(李時潑)하고 1972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상생』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2025-10-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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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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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이창규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별칭.

2025-10-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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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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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신학이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 무관심하든지 기독교의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급급했던 것과 달리, 종교신학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간의 대화와 협력이 요청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종교 간의 공존과 상생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신학은 타종교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판단을 모두 포괄한다. 그러므로 배타주의, 포괄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의 태도가 이러한 의미의 종교신학에 포함된다. 종교신학과 종교다원주의를 혼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종교신학이 더 넓은 범주에 해당한다.

2025-10-0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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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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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운동

생태환경 파괴의 가공할만한 속도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전개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이후부터이며, 종교계의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 역시 1990년대 이후부터 조금씩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종교생태주의’는 대략 2000년대 초반에 종교계의 생태주의적 담론과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비종교계의 생태주의적 담론이나 운동과 구별되는 종교적인 성격을 띤 생태주의적 사상과 실천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주론을 형성하는 종교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서 종교생태주의의 ...

2025-10-0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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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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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81년 3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호는 우천(藕泉), 일찍이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0년 시교사(施敎師)가 되었고, 참교(參敎)와 지교(知敎)로 승질(陞秩)되면서 규칙기초위원(規則起草委員)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1914년 상교(尙敎)로 승질되었다. 1915년 대종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북간도 용정으로 이주하였으며, 1916년 총본사 부전리(副典理)로 있으면서 순명한 제1대 교주 나철의 유해 봉장(奉臧)에 조력하는 등 3년간 포교활동 및 교단 일에 종사하였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선포하자 이동녕·이시영·조성환·김동삼·조영진 등 30여 명과 같이 상해로 건너갔으며, 1 ...

2025-10-0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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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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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능화(1869~1943)가 1929년 학술지 『조선』 1월호에서부터 12월호 까지 기고 연재한 논저를 묶은 책이다.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에서 20장까지는 우리나라 역대 신사에 대한 기술을 하고 있으며, 21장에서는 만주, 몽고 등 우리나라의 주변국들의 국가 풍속을 참고로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 역사를 신사를 통해 고찰하면서, 우리민족이 천(天) 신화 계통인 천신족설(天神族說)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천신족설은 선민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일제의 신도 역사에 대항하는 의미도 가진다.

2025-10-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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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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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국(金演局)이 창립한 천진교 초기 시천교총부의 다른 이름.

2025-10-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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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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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도

정요순은 1913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소학교를 마친 후 일본인 상점에서 장사를 배워 성진과 평양 등에서 상공업을 경영하는 사업가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었고 호화스런 향락생활을 하였으며, 창씨개명 후 가족과 일본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일제에 협력하면서 부를 축적한 그는 그러나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느낀 바 있어 수도생활을 시작하였고, 농사를 지으면서 주경야독으로 신구 의약서를 연구하였다. 한편 최훈남(崔薰南)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고 유불선야회(儒佛仙耶回)를 종합한 ‘무극천권숭배설(無極天權崇拜說)’을 배우기도 했으며,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관음송엽방(觀音松葉方)’이라는 약을 먹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

2025-10-0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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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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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에는 두 가지 기도법이 있다. 하나는 주문 등으로 주력(呪力)공부하는 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 명호를 반복적으로 송하는 염불(念佛)기도가 있다. 법일예식 중에는 정근을 하는데, 염불로 정근을 한다. 즉 ‘남무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남무구품도사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7회)를 연속적으로 송한다. 모두 21회를 칭명(稱名) 염불로 정근 한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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