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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수련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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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전국에 분포한 다섯 군데의 대순진리회 도장 가운데 제주도에 위치한 수도장이다. 연건평 1,708평으로 지하 1층 지상 7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989년 3월 2일 제주도수련도장 기공식을 시작으로 동년 6월 30일 영대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그해 7월 26일에 강증산 구천상제 화천치성 겸 영대봉안치성을 올렸다. 노형동은 신제주 오거리 교통의 요지로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신선)이 저울질 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선기옥형혈(璇璣玉衡穴)이다. 도장이 완공된 후 1989년 10월부터 1개 반 120명으로 짜여진 연수가 5박 6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바 있다. <참고문헌> 『대순진리회요람』(대순진리회 교무부, 1969 ...

2025-10-0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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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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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의 출신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평양에서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1897년 출생하고 신앙생활의 방황을 겪으며 살다가 43세가 되던 1939년 신앙체험 후 ‘성신의 불을 받아 난치병을 기도로써 쾌유케 하는 영통력의 소유자’로 이름을 날렸다. 황국주의 광해교회에 출석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황국주로부터 피가름 원리를 배우고, 삼각산기도원을 설립하여 기도원 운동을 통한 토착적 신앙운동의 전통을 형성했다고 평가된다. 「생의 원리」라는 저서를 통해 ‘피가름 원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타락할 때 뱀의 더러운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는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는데, 그것을 깨끗하고 성스러운 성신의 피로 정화해야 한다는 피가름 ...

2025-10-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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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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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백도교(白道敎)의 창시자 전연운이 사망하자 1923년 우광현(禹光鉉)을 교주로 삼고 경기도 가평에서 백백교를 창시하였다. 이후 교주가 되어 신도들을 현혹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여신도를 속여 간음을 했다고 한다. 범죄행각이 발각되어 수사가 착수되자 그는 피신하다가 경기도 양평의 도일봉(道一峰)에서 자살하였다. 그의 두개골은 일제 경찰에 의해 범죄형 두뇌의 표본으로 보관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인수받아 보관 해오다가 2011년 10월 25일 폐기되어 화장됐다.

2025-10-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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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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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사망(조천:朝天)한 직후,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1924년 1월에 영안현 남관(寧安縣 南關)에서 제3대 도사교로 취임하지만 1925년 6월에 한인(韓人) 취체(取締·단속)에 관한 조약인 삼시조약(三矢條約, 일명 미쓰야협약)이 체결되어 대종교는 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길림성장 겸 독군(督軍)인 장작림(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삼시조약에는 한인독립운동가의 인계와 보상금에 관한 사항 외에 부대조항에 대종교의 포교 금지 또는 해산에 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1928년 1월에 총본사 ...

2025-10-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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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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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 1890~1940, 호 龜岳)는 1890년 1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 비금면 지당리에서 태어나 1914년 보천교에 입교, 최고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1922년 증산 강일순의 탄생지인 객망리에 성전을 짓고 천인교(天人敎)라 이름하여 독립했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증산계 각 교단에 대해 대 폭압령을 내렸다. 국내에서 증산교운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자 이해 여름에 만주에 들어가 농장개설과 교인촌(敎人村) 건설을 준비하고 교인 600여 세대로 신농사(神農社)라는 조직을 하여 만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계속 일제에 쫓겨 봉천성 강평현 박인촌(博仁村), 통화성 유하현 대전자촌(大甸子 ...

2025-10-0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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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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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1915년 송도한영서원에 입학한 뒤 민족의식에 눈떴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뒤 1923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을 했고, 그로 인해 거의 3년여에 걸친 옥살이를 하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1916년 기독교 신앙의 세계로 들어갔고, 1919년 6월 4일 송봉애(宋鳳愛)와 결혼했다. 그 뒤 큰아들 영철(永哲)을 포함해 모두 오남매를 두었으나 영철을 제외한 넷은 일찍 사망했다. 이용도는 주체적 종교성에 입각해 자주적 삶을 살아가려면 기독교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서 1924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그가 본 것은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던 미국 선교사들의 친일적 행보 ...

2025-10-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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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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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음복(飮福)은, 신에게 올렸던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신이 내리는 복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유교 제례의 마지막 절차이다. 처음에는 제주(祭酒)를 나누어 마시는 것만을 음복이라 하였으나, 나중에는 술과 제찬(祭饌) 등 모든 제물(祭物)을 나누어 먹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유교의 제례에서는 제사의 종류를 막론하고 음복의 절차가 빠지지 않는다. 조선시대 국가제사에서 음복은 중요한 절차로 취급되었으며,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른 제례의 시행이 일반화되면서 민간에도 널리 확산되었다. 또 음복은 유교의례 뿐 아니라 동제(洞祭) 등 민간신앙적인 제사, 굿을 비롯한 무속의례, 불교의 재(齋), 그리고 여러 신종교의 제례에도 ...

2025-10-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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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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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윤세복의 본명은 세린(世麟)이며 188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하였다. 도호는 단애이며 교단에서는 단애종사(檀崖宗師)라고 부른다. 어려서는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고향의 신창학교와 대구의 협성중학교에서 5년간 교편을 잡다가 1906년부터 대구에서 수학(數學)을 공부했다. 1910년 12월 서울에 올라와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시교사(施敎師)가 된 후 친형인 윤세용(尹世茸)과 상의, 가산 수천 석을 정리하여 만주로 건너가 환인현에 교당을 설립하여 포교에 힘쓰는 한편, 환인현에 동창학교(東昌學校), 무송현에 백산학교(白山學校), 밀산당벽진에 대흥학교(大興學校), 영안현 동경성에 대종학원(大宗學院)을 설립·경영했다. 1 ...

2025-10-0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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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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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도인들이 월 1회 자발적으로 내는 성금. 대순진리회에서는 개인이 낼 수 있는 월성은 월 10만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음.

2025-10-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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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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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75년 이후 원불교는 새로운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문화교화를 이끌어 갈 주요 정책의 하나로 방송국 설치와 운영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989년 7월 26일 제4회 임시원의회에서는 ‘원불교방송국설립준비위원회’(위원장: 이광정)를 발족하고 원불교방송국의 설립에 대한 논의와 작업을 추진하여 왔다. 결국 1996년 원음방송추진위원회는 방송국 설립허가를 촉구하는 건의문 작성과 서명작업에 착수했으며, 원음방송의 정식 명칭을 원음방송(WONBUDDHISM BROADCASTING)으로 하고 약칭을 WBS로 표기했다. 1997년 12월 4일에는 재단법인 원음방송 설립 및 방송국 추천서 발급을 공보처에 신청했으며, 12월 15일 공보 ...

2025-10-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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