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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진경십육자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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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이선평이 처음 수행을 시작하였을 때 허공에 나타났다고 하는 대보송(大寶頌) ‘천하대보정진무외(天下大寶正眞無外) 무궁조화각재자기(無窮造化各在自己)’과 그가 깨달음을 얻을 당시에 나타났다고 하는 원각주(圓覺呪) ‘원각천지무궁조화(圓覺天地無窮造化) 해탈사멸영귀영계(解脫死滅永歸靈界)’ 등이 모두 16글자로 되어 있다. 각세도계 분파에서는 이 16자 주문을 도조(道祖)와 동격으로 보면서 중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5-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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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전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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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고 제자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여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선평의 생존 당시부터 각세도는 각 관을 중심으로 분란이 있었으며 당시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천인교’를 만들어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선평에 의해 천암(天庵)이라는 도호를 받은 장명성(張名聲)이 남도주로 바뀌게 된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남도주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장명성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여 독자적인 교단 ...

2025-05-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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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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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은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법계도(法界圖), 해인사의 연기설화, 『임진록』, 『정감록』, 『격암유록』, 정만인 스님 이야기 등에 나타난다. 한국 신종교에서 해인은 세상을 구원할 보물, 한국적 이상사회 건설의 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한국 신종교에서 해인은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의미보다는 세상을 구원할 신이한 힘을 지닌 실체적인 보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해인에 대한 신앙은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국토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대순전경』에는 “잘 믿는 자에게 해인을 전해주리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증산계 신종교에서는 의통과 해인을 동일 범주로 보고 해인이 의통에 ...

2025-10-1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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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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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구한말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을 구천상제로 신앙하는 종교가 형성된 가운데, 1925년 무극도를 창설한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 1895~1958) 도주(道主)로부터 정해진 종지(宗旨)의 하나이다. 조철제는 강일순으로부터 그 천부의 종통계시를 받고 종단을 창설하였다고 했으며, 강일순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고 교리체계로서 종지와 신조, 목적을 정하였다. 해방이후 태극도, 대순진리회 등의 종단으로 이어지면서 이와 같은 종지는 강일순의 ‘대순하신 진리’그 자체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강일순을 신앙하는 수많은 한국 신종교 종단에서는 대체로 이 용어를 교리의 종지(宗旨)로 삼아서 대외 ...

2025-10-1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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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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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다종교 상황에서 갈등과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대화와 화합이 필요하다는 인식 위에 6개 종단의 협의기구로 ‘한국종교연구협회’가 결성되었다. 1966년에 ‘한국종교인협회’로, 1972년에 ‘한국종교인협의회’로 개칭하였으며, 198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초기에는 한국종교인들의 공통과제를 검토, 협의하여 실천하기 위해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의 관련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협력과 상호이해를 도모하였으나, 1999년에 천주교가 탈퇴하고 개신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2015년 현재 회장은 유경석(세계평화가정연합)이며 참여 종단은 금강대도, 대종교, 성균관, 원불교, 한국불교태고 ...

2025-10-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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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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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교(太乙敎)라는 간판으로 증산교 활동을 한 교파는 여러 개가 있다. ①고판례(高判禮)가 1911년에 세운 교파. 고판례가 교단을 창설할 때 교명을 제시한 바는 없지만 신도들이 태을주(太乙呪)를 읽는 교단이라는 뜻에서 세간에서 태을교라 불렀다. 이 교파는 뒤에 선도교(仙道敎)라 하였다. ②신현철(申鉉喆)이 1921년에 세운 교파. 신현철은 보천교(普天敎) 간부로 있다가 교금 유출사건으로 차경석(車京石)과 마찰이 생겨 서울에서 태을교를 세워 차경석과 대결하였으나 곧 소멸되었다. ③이 외에 1914년에 선도(仙道)를 세운 안내성(安乃成)도 일시 태을교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고, 1914년부터 독자적으로 포교활동을 했던 ...

2025-10-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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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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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裵容德, 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2년부터 증산교단연합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73년에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 4동 자택에 ‘증산진법회’라는 교단을 창립했다. 1974년에는 ‘증산사상연구회(甑山思想硏究會)’를 발족시켜 사상강연회와 학술지를 매년 발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현대적 해설을 시도했다. 여기에 발표자로 동원된 학자들은 한국종교 ...

2025-10-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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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유해쟁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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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의 조철제(趙哲濟)는 1921년 8월 선돌부인과 강순임 등을 데리고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강일순의 초빈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통사동으로 옮겨가 공부방 상좌에 안치한 다음 조석으로 치성을 올렸다. 이 무렵 문공신은 조철제가 강일순의 유골을 가지고 만주로 가려한다는 소문을 듣고 강일순이 재세 시에 자기에게 ‘내 뼈가 조선을 떠나면 안 되리라’라고 한 말을 상기하고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22년 1월 23일 자기 심복 김정우로 하여금 장정 20여명을 거느리고 유골이 있는 통사동 제각을 습격하여 거기 있던 사람들을 구타하고 유골과 현금 등을 빼앗아 갔다. 조철제는 강일순의 유골 중에 왼쪽 ...

2025-10-0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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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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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는 1913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하였고, 연세대 국어국문과,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충남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0년 충남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었는데, 4·19혁명 직후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이병도가 주재한 교수회의에서 민선으로 선출된 첫 총장이었다. 이정호는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에 근거해 훈민정음 창제원리가 역학에 기반한 것임을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김항의 정역사상을 연구하여 음양의 대립이 아닌 조화를 강조하는 세계관이 근대 한국철학으로 등장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주요저서로 『국문 영문 해설역주 훈민정음』·『훈민정음의 구조원리』·『정역연구』 등이 있다. 『정역 ...

2025-10-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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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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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새일교단

새일교단의 창시자 이유성은 1915년 11월 4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정식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19세 무렵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전도사가 되었다. 1949년 4월 22일 월남하였으며, 1954년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1956년 자퇴하였다. 1958년 3월 하늘로부터 생수가 내려와 몸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한 달간 하늘로부터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받아 적게 되었다고 한다. 1964년 9월 24일 계룡산 신도안에 수도원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5월 15일 완공하였다. 한편 1964년 9월 24일 기도를 하던 중 하늘로부터 우레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뢰자라는 이름을 받았다 ...

2025-10-0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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